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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중에 시원하기로 으뜸인 배를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는 농장에 다녀왔습니다. 맛좋은 배는 전북 전주, 전남 나주, 경북 상주 등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산에서도 시원하고 당도가 높은 배를 재배한다니까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다녀온 배 농장은 서해안 고속도로 군산 휴게소 뒷산 중턱(나포면 서포리)에 자리한 '성제농장'인데요. '주말농장'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과수원은 생각보다 넓었고, 공기가 맑아 배를 먹지 않았어도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아삭아삭 씹히면서 시원한 맛을 내는 배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던 과일이라 사연도 많은데요. 배 재배농장이 하나도 없던 군산에 20군데가 넘게 있다니,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면서 교과서에서 배웠던 과일생산지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개발과 재배농법 발전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과수원에 들어서니까 농장은 물론, 주인이 거주하는 고물 컨테이너박스 앞에까지 잡초가 무성했는데요. 진한 풀냄새와 오리 떼가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었고, 배가 주렁주렁 매달린 배나무 아래에는 'ㅇㅇㅇ 가족'이라고 쓴 팻말들이 박혀 있어 주말농장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가족 이름이 적힌 팻말이 얼추 1백 개가 넘는 것 같았는데요.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와서 배가 익어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집에서 준비해온 김밥도 먹고, 금방 딴 배를 시식하면서 즐겁게 보내는 가족들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의 농장주인

 

농장주인(조재영)은 잠도 자고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고물 컨테이너박스에서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어딘가로 전화해가면서 뭔가 따지는 것을 보니까, 주말농장 회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들어가도 열띤 논쟁은 그치지 않았는데요. 달력에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메모해놓은 일정표와 간단한 음식과 차를 끓일 수 있는 주방 조리대에서 주인의 바쁜 생활과 검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확기를 앞두고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바람에 재료가 바닥나, 제날짜에 배 상사를 공급하기 어려우니까 현금결제를 해달라는 박스공장 사장과 지금까지 해왔던 관행을 요구하는 농장주인의 입씨름을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의 농장 주인은 40대로 보이는 박스공장 사장과 줄다리기 격론을 벌이면서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는데요. 예순여덟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합의가 웬만하게 이루어지고 환하게 웃으면서 서류에 도장을 찍더군요.   

 

농장 주인과의 대화

 

 

박스공장 사장이 돌아가고 농장주인과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요. '군산 친환경 배 연구회 회장'으로 배 작목을 맡고 있어서, 자신의 농장 관리는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밖에 못한다며 친환경 재배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배 농장은 언제 시작했는지요?

"선대로부터 농사를 지어먹던 땅이었는데 직장에 다니느라 외지에 나가 있다가 15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1천 그루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줄이다 보니까 지금은 5백 그루쯤 됩니다. 아내와 함께하는데 힘들어요."  

 

올 작황은 작년에 비해 어떤 편인가요?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은 편이지요. 그런데 날이 흐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많아서 그런지 지난번 첫 출하 때 맛보니까 당도는 전만 못해요. 추석을 앞두고 따는 배는 앞으로 날씨 변화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그루에 배가 몇 개씩 열리고, 보통 배는 무게가 얼마나 나가나요?

"보기에는 엉성하게 달린 것 같아 우습지만, 막상 따고 보면 그게 아닙니다. 많이 열리는 나무는 1백 개가 넘으니까요. 그리고 보통 700g-800g 정도가 되면 상품으로 출하하는데, 2kg가 넘는 배도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배는 어떻게 따는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배는 껍질이 연하고 물이 많은 과일이라서 힘주어 잡으면 상처가 나서 배 즙이 빠져나가니까 애인 손 만지듯 살포시 감싸고 위로 꺾으면서 조심조심 따야 합니다.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들어오면서 보니까 배나무 밑에 잡초들이 많던데 괜찮은지요?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제초제는 잡초만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정자까지 죽이는 무서운 독약이니까요. 지금은 모르지만, 후손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걱정이지요." 

 

 

청둥오리들 사이에 거위가 몇 마리 끼어 있던데 키우는 거냐고 물었더니 농장을 지켜준다고 해서 궁금증이 더해졌는데요. 거위는 처음 보는 동물이 자기 구역에 들어오면 강한 적대심을 품고 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경보장치'보다 정확하다고 하더군요. 고개가 끄떡여지고 웃음도 나왔습니다. 

   

주말농장 회원은 소중한 판촉요원

 

주말 농장은 2001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고, 한 그루를 기준으로 1년에 10만 원씩 받는다고 합니다. 150명이 넘는 회원의 배나무는 주인이 관리해주면서 작황이 아무리 나빠도 1년에 15kg들이 네 박스는 보장해준다고 하더군요.  

 

네 박스 넘게 열리면 회원이 모두 가져가는데, 손해 보는 장사를 한다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지만, 농장 회원들의 자랑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거래량이 많아져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배꽃이 피는 4월 이전에 신청하는 사람과 배꽃이 지고 신청하는 사람과는 회비에 차등을 두어야 함에도 같이 받으면서 배꽃이 피는 시기에는 친목을 위한 단합대회를 여는데 회원들 반응이 무척 좋다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마침 퇴근길에 들른 주말농장 회원들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들은 익어가는 과일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특히 아이들이 기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10만 원을 들고 어디 놀러 가기도 애매한데 봄부터 가을까지 다닐 수 있으니까 좋고, 주인이 네 박스를 보장해주니까 마음 놓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아저씨는 주인과 가까운 사이라서 농장을 처음 시작할 때 배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지금은 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만 봐도 부자 된 기분이라면서 웃었습니다. 그는 과수원에서 가져간 배는 집에서 먹기도 하고 선물도 한다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군산에 배 농장이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구나!' 하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많은 땀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유익한 현장체험학습이 된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친환경재배#주말농장#성제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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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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