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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과 진보의 미래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과 진보의 미래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한 인사 중 최고의 인사다."

 

참여정부 첫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를 두고 한 말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68학번인 이정우 교수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2년 후배다. 그러나 동숭동 캠퍼스 시절엔 서로 교류가 없었고, 정 후보자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 두 사람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1999~2000년경, 두 사람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 김대환 인하대 교수, 이종오 명지대 교수 등 진보적인 학자들과 어울려 매달 한 차례씩 세미나를 열었다. 거창하게 이름을 붙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정치·경제·사회 등 전공을 넘나들며 연구하고 토론을 즐겼다.

 

이후 이종오 교수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대학 동기동창인 김대환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정운찬 후보자는 끝내 참여정부의 입각 제의를 고사했다.  

 

"그런데 왜 이명박 정부에 들어갔을까? 아쉽고 안타깝다"

 

이정우 교수는 지난 8일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여의도 국민일보사 1층 메트로홀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세 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주제는 '참여정부 경제정책과 진보의 미래'. 이 교수의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가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케인스 이론을 신봉하는 것으로 안다. 정운찬 지명자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연단에 앉아있던 이정우 교수는 "정운찬 전 총장에 대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며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쏟아냈다.

 

"(정운찬 후보자와) 저는 오래 전부터 가까이 지냈다. 한때 진보적인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모임을 했는데, 그 때도 같이 했다. (정 후보자는) 훌륭한 경제학자다. 실력도 있고, 인품도 훌륭하다."

 

이 교수는 잠시 말문을 닫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런데 왜 이명박 정부에 들어갔을까? 아쉽고 안타깝다"며 "거기 들어가기에는 (정 후보자가) 너무 아깝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러나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한 인사 중 최고의 인사"라며 "늘 강부자(강남 땅 부자)만 등용했는데, 정 전 총장은 중고등학교 때 점심식사를 먹은 적이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정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가서 잘 할지 걱정"이라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아야 대성공이다. 정책을 성공하고 국민들에게 박수 받으면 호랑이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석자들이 참여정부 경제정책과 진보의 미래에 관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석자들이 참여정부 경제정책과 진보의 미래에 관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이 교수는 "저는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살아나오는 사람은 못 봤다"며 "잡아먹히든지, 호랑이에 동화되는 것은 많이 봤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어 "좀 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국민을 위해서 (정 후보자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벌써부터 '정운찬 총리'의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 대운하를 할지 모른다. (이 대통령은) 자기 임기 때는 안 한다는 것 아니냐"며 "(이명박 정부가) 조금의 양식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의 복지를 줄이는 대신, 강에다가 20조~30조의 돈을 쏟아 부어서 시멘트로 덮고 식수까지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이 4대강 개발을 포기하지 못 한다면, 정운찬 총리라도 나서야 한다"며 "아니면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내게 물어봤다면 당연히 말렸을 것"

 

강연이 끝나고, 이정우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에게 "정 후보자가 (지명 수락을 하기) 전에 아무런 언질이 없었느냐"고 묻자, "전혀 없었다.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에게만 상의를 한 것으로 안다"며 "만약 내게 (총리 지명 수락에 대해서) 물어봤다면 당연히 말렸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중도개혁 노선이고, 케인스주의자인 정 전 총장은 시장만능주의와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와는 철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운찬 후보자는 생각이 다르다. 정 후보자는 지난 3일 총리 지명 직후에 연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을 잘 보필해서 강한 경제의 나라, 보다 통합된 사회로 만든다는 것이 목표다.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한 건 사실이지만, 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최근에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대통령과 나는 경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차이가 없다. 대통령도 나도 경쟁을 중시하고 촉진하되 경쟁에 뒤처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철학이 다르지만 절충점을 찾아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대통령과의 경제철학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정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동화될지 주목된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노무현 시민학교#이명박 정부#4대강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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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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