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박채란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다소 엉뚱하게 시작한다. 반에서 은근히 따를 당하는 하빈이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여고생을 부른다. 그래놓고 말하기를, 자신은 저쪽 세계에서 온 '천사'이자 안전요원으로 이제부터 목요일마다 만나 질문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은 대답을 하겠다고 한다.

정말 엉뚱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그렇듯, 세 명의 아이들도 그녀의 말을 무시하려 한다. 그러자 하빈이는 "너희들 부모님과 담임선생님한테 그 계획을 얘기"하겠다고 말한다. 세 명의 아이들은 당황한다. 하빈이의 협박 아닌 협박이 먹힌 셈이다. 도대체 어떤 계획이기에 그런 것일까?

세 명의 아이들은 각자 마음속에 상처가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여장부로 통하는 태정이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예쁜 외모로 인기 많은 새롬이가 자신을 차 버린 남자친구 때문에,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선주는 죽은 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것은 그녀들의 마음속에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영원할 것만 같은 기나긴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고통이 너무 힘겨워서였을까. 그녀들은 '모의'를 했다. '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진짜로 죽으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태정이가 자살하려고 하는 순간 선주가 태정이의 아빠를 데려와 그것을 말리게 한다. 또는 새롬이가 자살하려는 순간 다른 아이가 전 남자친구를 데려와 그것을 말리게 하려고 한다.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복수다. 한편으로는 집착이고 또한 고통 때문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 때문에 죽을 뻔 했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면,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하며 잘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런 모의를 한 것이다.

이 작전이 제대로 성공하려면 실감나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면 실패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를 만큼, 자살의 직전까지 가는 위험천만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빈이라는 아이가, 그것도 천사라고 주장하는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그 계획을 폭로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들이 하빈이의 협박에 꼼짝못하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빈이의 뜻대로, 그녀들은 목요일에 사이프러스에서 만난다. 하빈이가 시킨 대로 그녀들은 천사나 저쪽 세계에 대한 것들을 묻고 하빈이가 대답한다. 그런 와중에도, 세 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전을 조금씩 진전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태정이가 첫 번째로 그 작전을 실행한다. 목을 매 죽으려고 하는 순간에, 아빠를 부르려는 작전이었다. 과연 그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조금은 엉뚱하게 시작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녀들의 사연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위험한 계획을 세우는 그녀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누구라도 좀 나서서 말려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소설 속의 그녀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자살을 꾸미는 그녀들도 불안하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말려주는 사람이 없다. 또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통이 계속된다는 걸 알고 있다. 마지못해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엉뚱한, 따를 당하던 하빈이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정말 천사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려주기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천사라고 말하는 하빈이는 그녀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정말 천사가 맞기는 한 것일까?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끝까지, 그것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에 순진무구한 하빈이의 '말'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대해서, 특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녀는 천사일지 모르겠다. 덕분에 이렇게 환하게 웃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시작은 엉뚱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마음을 파고드는 따뜻함과 기분 좋은 웃음으로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사이프러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제법 긴 여운을 만들어내고 있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박채란 지음, 사계절(2009)


#청소년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