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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임진강 수위 상승으로 인한 민간인 실종 사태 등 남북관계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임진강 수위 상승으로 인한 민간인 실종 사태 등 남북관계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 남소연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분위기가 거세서 걱정이다."

 

북측의 무단방류와 남측의 대응실패로 경기도 연천군에서 6명이 사망한 '임진강 사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업무를 담당하는 한 핵심 당국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지난 6일에 사건이 벌어진 직후 정부 대응은 '차분'한 편이었다. 청와대도 북측의 수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

 

7일 통일부가 북측에 유감표명과 함께 해명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보내면서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것도, 진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북측에 방류일정에 대한 사전통보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북측이 사과는 없이 "강 상류의 수위 상승 때문에 긴급 방류했다"는 답신 전통문을 보내오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8일자 <조선일보> 등 조간신문들이 북한에 대한 비판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일부 석간신문은 수자원공사, 연천군, 합참의 늑장대응과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기능 부재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후안무치한 북'이라며 '조지고' 나왔다.

 

이날 오후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오늘 석간에서 여러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질문이 많을 것 같다"고 서두를 꺼내, 언론비판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북측이 이례적으로 6시간 만에 답변통지문을 보내고 이후로는 방류계획을 사전에 통보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측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정부는 갑자기 방향 바꾸기 어렵다"

 

정부, 좁게 보면 통일부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언론은 상황에 따라 방향을 확 틀어버릴 수도 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정부 당국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북을 검토하는 등 북미 양자대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계속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으로만 끌고 가기는 어렵다. 정부는 이미 6자회담 이전에 북미 양자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더욱이 북측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12.1조치 해제를 약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 고위 특사조문단을 보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대화의지를 천명한 터였다.

 

김성환 수석이 북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던 8일 재발방지를 위한 남북간 협의문제와 관련해 "언제 어떻게 협의할 것인지 계획을 만들고 있으며, 협의제안 시점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임진강 사건 이후'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정부가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북측에 사과를 요구하는 논평을 내면서도, 이를 전통문으로 북측에 보내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도통 사과라는 것을 모르는 북한의 고질적 태도와는 별개로, 현인택 장관의 "북한이 의도를 갖고 (황강댐을) 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발언은, 그것이 설령 실언이라 해도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악재'임이 분명하다.

 

현 장관은 9일 국회답변에서 "북한의 방류가 실수냐, 고의냐"는 송영선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처럼 예민한 상황에서 대북정책 담당 장관의 이런 발언은, 우리 정부가 북측이 악의적으로 황강댐을 방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는 '북측이 수공을 한 것'이라는 주장과 연결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국가정보원 등 대북정보 수집부서들과 협의를 거친 '정보판단'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질문이 '실수냐, 고의냐'였기 때문에 실수인 것 같다고 할 수는 없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현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북한이 이번에 무단 방류를 했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에 (이는) 사고나 실수에 의한 방류가 아니라 북한의 의도적 방류를 확인한 것"이라며 "의도적 방류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는 여전히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자신의 발언을 주워 담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도 현 장관 발언에 대해 "북한이 대남 통지문에서 자신들이 방류를 했다고 했기 때문에, 방류라는 행위 자체가 의도적이라는 이야기였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수공' 여부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다른 통일부 간부들 역시 "질문이 '실수냐, 고의냐'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수인 것 같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라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선량한 이웃이 아니다"라는 현 장관의 평소 강경대북관이 이런 발언을 튀어나오게 한 배경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나 국방부는 여전히 북한의 의도에 대해 특별하게 확인된 징후는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 장관의 발언에 대해 임진강 필승교 무인자동경보시스템 미작동, 연천군청의 근무 소홀, 청와대 늑장 보고 등 정부의 총체적인 대응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의도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으나, 이 또한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판은 커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 있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에 선 것임을 의미한다. 이후 이번과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한 '공유하천에 대한 피해 예방과 공동 이용 제도화를 위한 남북간 협의' 역시 남북관계가 좋아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수공이라는 입장을 취하거나 실효성도 없는 국제사회를 통한 배상요구 등에 동조해 이번 사건이 '제2의 금강산 피격사건'으로 굳어질 경우, 모처럼 만들어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는 황강댐이 방류한 물과 함께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현인택#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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