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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스트'는 사랑이나 미움, 기쁨이나 슬픔 같은 인간의 체취가 완전히 제거된 존재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물질적 측면일 뿐이며, 그는 오직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17쪽)

 

 경제학에는 인간을 매우 합리적인 동물로 묘사한다. 인간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의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경제학적인 인간이 가져야 하는 특성인 것이다.

 

경제학은 또한 인간을 매우 이기적인 동물로 묘사한다. 인간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이런 이기심이 만들어낸 산물들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심도 물론 경제학적 인간이 가져야 하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36.5℃ 인간의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을 가진 '호모 이코노미스트'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 부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즉, 정말로 인간은 모든 판단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정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가? 라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고전경제학 이론의 타당성 여부를 합리적, 이기적과 같은 기본가정에서부터 다시금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 이준구 교수는 이를 위해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식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의 잣대를 적용하여 우리의 경제학적 활동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행태경제학에 빠졌다고 독자에게 고백한다. 그는 이 이론을 접하면서 좀 더 새로운 눈으로서 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도 아직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과 함께 같이 한번 공부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휴리스틱'을 들어보았는가?

 

우리는 경험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접했던 상황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착각이 발생한다. 인간은 이처럼 경험에 따른 판단에 매우 의존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계산해보지 않고 경험을 토대로 해서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이런 '휴리스틱'을 가지고 판단을 했을 때의 장점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는 통찰력을 발휘해서 일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휴리스틱'의 단점은 이런 판단을 거친 결과가 아쉽게도 100%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예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이런 '휴리스틱'을 많이 이용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취업시장인 것 같다.

 

물론 기업들이 각각 제시하는 것들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고 다양하게 하기 위해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테스트 도구들을 많이 개발해내고 있지만, 그런 지원 자격을 만족하는 인재가 그들이 원하는 인재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도구들 거의 대부분이 '휴리스틱'에 의거한 것들이므로 그들이 원하는 인재가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각 기업들에게는 인재를 장기간 보면서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러 잣대를 만들어내서 솎아내는 작업을 거쳐 인재를 선별하는 작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솎아낸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는 과거에도 같은 도구로 인재를 뽑아왔던 기억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휴리스틱'을 발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고, 자신의 기준점에 의존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일례가 되는 상황이며, 우리들은 각자 이와 같은 '휴리스틱'을 하나씩 소유하면서 사물을 판단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이처럼 글을 쓴다. 그러나 우리들도 정확하게 합리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닻 내림 효과'라고 들어보았는가?

 

이 책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인간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을 우리들에게 소개시켜준다. 분명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속임수에 속진 않겠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왜 속는지도 모르면서 비합리적인 경제활동을 벌인다.

 

닻 내림 효과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아무 상관없는 숫자를 보고서도 우리의 판단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숫자를 보고 그 숫자를 우리들의 결정에 있어서의 기준점으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믿기 힘들겠다면 이 책을 펼쳐보아라.

 

공정성에 관한 고찰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가?'에 대한 물음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몫나누기 게임', '싫으면 말고 게임', '독재자 게임' 등과 같이 인간의 이기심을 시험하는 여러 가지 실험장치를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만약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그 실험의 결과는 상대방에 대한 몫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이기적이라는 잣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이기적'이라기보다는 '공정성'에 더욱 가까운 결과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기심보다 공정성을 더욱 중시한다는 사실은 내 경험으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는 어머니께서 게를 샀다면서 웃음을 띈 얼굴로 말씀하셨다.

 

"오늘 시장에 갔다가 트럭에서 파는 게를 봤는데, 세 마리에 얼마하는 것을 세 마리는 안 산다고 해서 싸게 네 마리를 사서 친구랑 두 마리씩 나눠서 가지고 사왔다."

 

나는 안그래도 싸게 파는 게 값을 왜 그렇게 깎았냐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그렇게 파시는 분 가격 깎아서 뭐하실려구요, 경제도 가뜩이나 안좋은데 그냥 사주시지…."

 

이것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해 본다면 판매자는 게를 싼 값에라도 네 마리를 파는 것이 아예 팔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기 때문에 어머니께 순순히 싼 값에 게를 네 마리 팔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도 역시 원래 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구매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냥 사주시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이런 일화를 통해서 본다면 판매자인 아저씨와 구매자인 어머니는 '호모 이코노미스트'에 근접한 사람이고, 나는 상당히 비합리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도 "그냥 살 걸…"이라고 수긍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기심에 의거한 판단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이론으로 봤을 때, 어머니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구매당사자나 판매당사자가 될  때는 이런 이기심의 발현이 가장 극대화하여 일어나고,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이기심보다는 공정성이 우선적으로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흘러갔을 때, 공정성이 더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테스트 같은 경우를 판단해보자면 테스트에서 이기심이 공정성보다 더 약하게 나타난 것은 바로 그 결과가 실제로 자신의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테스트라는 막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기심이 잘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식시장

 

이 책은 주식투자 공략 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략법의 전제 역시 주식시장은 비합리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공간이므로, 그 틈을 공략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세부적인 투자스킬을 상세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비합리적임을 인정한다면 기회(가치주 전략, 모멘텀 전략)는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즉, 합리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효율시장이론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비합리적인 결정을 많이 하는 투자자-가격이 떨어지면 만회하고자 계속 들고 있고, 오르면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재빨리 팔아버리는 것-들에 의해서 분명히 틈이 보인다는 그의 지론이었다.

 

<36.5℃ 인간의 경제학>

 

전작 <쿠오 바디스의 한국경제>를 읽을 당시 그는 서문에서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마음 아파했던 글을 썼었던 것 같다. 출판사나 언론에서도 원고제안이 잘 들어오지 않는 꽉 막힌 교수 중의 하나였다고 나직이 서운한 감을 내비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는 직접 홈페이지도 운영하면서 학생, 독자와 소통을 시작했는데, 이번에 펴낸 이 책을 보니 그는 아예 더 넓은 소통의 영역으로 빠져들기로 작정한 듯싶다.

 

소통. 그리고 함께 공부하자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책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고전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호모 이코노미스트' 즉,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을 부정한다. 특히, 'F폭격기의 추억'이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휴리스틱' 때문이라고 푸념하는, 재미있는 글도 있다.

 

이준구 교수는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36.5℃의 체온을 가진 따뜻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할 수 있는 휴리스틱을 숨겨둔 비합리적인 인간이며, 모든 정보를 다 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제한적 합리적인 인간이며, 이기심보다는 공정성을 더 고려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 책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 학생의 설문결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번에 도모노 노리오가 쓴 <행동 경제학>을 구입하고 나서, 지레 겁먹고 펼쳐들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때의 겁이 지금의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입문서로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인간이 왜 경제학적 인간이 아닌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9)


태그:#36.5℃ 인간의 경제학, #이준구, #랜덤하우스,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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