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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이미 3건 6편의 중복게재 사실이 확인된 정 후보자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자기 논문의 일부 내용을 다른 논문에 그대로 추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정 후보자를 둘러싼 윤리성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글을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에 이중으로 싣거나 자기 논문의 일부를 다른 논문에 실으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모두 '논문 자기표절'에 해당된다.

 1988년 <국제문제연구소논문집 12>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논문 '미국의 통상압력' 중 일부.
1988년 <국제문제연구소논문집 12>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논문 '미국의 통상압력' 중 일부. ⓒ 오마이뉴스

 1991년 6월 <기술과 벤처>지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중 일부.
1991년 6월 <기술과 벤처>지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중 일부. ⓒ 오마이뉴스

3년 전에 발표한 논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와

정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교 교수 시절인 지난 1988년 서울대부설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국제문제연구소논문집 12>에 '미국의 통상압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 후보자는 이 논문에서 1980년대 보험시장 개방, 외국인의 지적 소유권 보호, 외국산 담배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등이 이루어진 것은 미국의 통상압력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통상압력의 실상과 배경, 대책을 서술하고 있다.

정 후보자는 3년 뒤인 1991년 6월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기술과 벤처>지에 20쪽 분량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는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서 설립한 금융기구다.

이 논문의 4장 '금융국제화' 부분의 '1.최신 한국금융산업 국제화 논의의 배경'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제무역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두 종류의 흐름이 교착된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각국은 한편으로는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보호무역 정책을 쓰고 있다. 따라서 국제무역의 흐름은 어떤 경제이론의 바탕 위에서 서 있다기보다는 정치적인 상호교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각국은 자원파동과 국제불황을 맞아 국제수지 개선 및 고용유지 등과 같은 거시 목표의 추구를 위하여 점차 수입제한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국제무역질서가 보다 관리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중략)

둘째, 미국 행정부가 보다 역점을 두고 있는 서비스 및 농산물 부문에서의 시장개방이다. 미국은 소위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보, 통신분야의 기술혁신을 통하여 금융, 보험, 운수, 통신, 광고 등 서비스분야에서 단연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또한 미국의 서비스산업은 미국 국민 총생산의 70%, 그리고 고용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구조면에서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후략)"

그런데 이 대목들은 3년 전 발표한 '미국의 통상압력'이라는 논문의 1장에 해당하는 '미국 무역정책의 변화와 대한 통상압력'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논문 자기표절'을 한 셈이다.

 1991년 10월 발간된 '인촌 김성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문집'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서두.
1991년 10월 발간된 '인촌 김성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문집'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서두. ⓒ 오마이뉴스

 1991년 6월 <기술과 벤처>지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서두.
1991년 6월 <기술과 벤처>지에 실린 정운찬 후보자의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 서두. ⓒ 오마이뉴스

한 문단 추가하고 한글을 한자로 바꾸고

정 후보자의 '논문 자기표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라는 논문의 전반부(1장부터 3장까지)가 <2천년대를 향한 한국의 선택>(인촌 김성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문집, 1991년 10월 발간)에 실린 정 후보자의 또다른 논문과 거의 같다.

1991년 6월 <기술과 벤처>지와 같은 해 10월 '인촌 김성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문집'에 실린 논문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의 서두는 각각 이렇게 서술돼 있다. 

"한국금융은 현재 내우외환에 크게 시달리고 있다. 우선 대내적으로 볼 때 금융의 객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자산 및 부채는 여러 가지 금융수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나마 존재하는 금융자산 및 부채도 대부분 정부가 단기적 필요에 따라 무계획적으로 창출한 것이어서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또한 금융자산 및 부채의 생산비용이 너무 높고 금융시장의 주요 가격변수인 이자율수준이 시장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자율의 구조가 심히 왜곡되어 있다." (<기술과 벤처>, 1991년 6월)

"오늘날 우리는 '不確實性의 時代'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韓國經濟는 유례없이 심대한 轉換期를 맞고 있다. 따라서 어떤 차원에서든지 2000년대 한국경제의 미래상을 조망하는 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2000년대 한국금융에 대한 섣부른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2000년대를 눈앞에 둔 한국금융의 현실을 진단하고 한국금융산업 발전의 기본방향과 당면과제에 관한 나의 管見을 개진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해 韓國金融은 현재 內憂外患에 크게 시달리고 있다. 우선 對內的으로 볼 때 金融의 客體라고 할 수 있는 金融資産 및 負債는 여러 가지 금융수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나마 존재하는 金融資産 및 負債도 대부분 정부가 단기적 필요에 따라 무계획적으로 창출한 것이어서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또한 금융자산 및 부채의 생산비용이 너무 높고 금융시장의 주요 가격변수인 利子率水準이 시장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利子率의 構造가 심히 왜곡되어 있다." (<2천년대를 향한 한국의 선택>, 1991년 10월)

한글을 한자로 바꾸고, 서두 부분에 한 문단 추가한 걸 빼면 똑같은 글이다. 다만 전자의 논문은 뒷부분에 9쪽 분량의 '국제금융화' 내용을 추가해 후자의 논문보다 길다.  

월간지 글을 논문으로 옮기고, 논문 일부를 월간지 기고글로

흥미로운 사실은 정 후보자가 이들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한 정기간행물에 거의 비슷한 글을 기고했다는 점이다. 월간 <말> 1991년 4월호에는 그의 '시장개방과 한국의 금융구조'라는 글이 실렸는데 이는 '한국금융의 현실과 당위' 논문의 1·2장과 거의 같다.

또한 월간 <말> 1992년 10월호에 기고한 글 '금융개방과 흔들리는 한국의 은행'의 일부는 앞서 <기술과 벤처>지에 발표한 정 후보자의 논문 후반부와 거의 똑같다.

"이 절에서는 이와 같이 국내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선진국의 개방압력에 의해서 전개된 한국 금융시장 개방의 현황을 주로 은행업을 중심으로 개관하기로 한다. 시장개방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파악될 수 있는데 하나는 시장진입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범위의 측면이다. 먼저 시장진입의 측면을 살펴보면, 1967년에 미국의 체이스맨하탄 은행이 서울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국내 은행시장이 외국은행에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중략)

먼저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자금조달 측면을 보면, 총자금 조달 중 본점 차입을 통한 외환조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서는 원화자금조달이 크게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후략)" (<기술과 벤처>, 1991년 6월)

"우리나라의 금융개발 현황을 은행업을 중심으로 개관하여 보자. 은행개방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파악될 수 있는데 하나는 산업개방(외국은행의 국내 진입)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개방(업무별 시장점유율)의 측면이다. 먼저 은행산업 개방의 측면을 살펴보면, 1967년에 미국의 체이스맨하탄 은행이 서울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국내 은행산업이 외국은행에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중략)

우선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자금조달 측면을 보면, 총자금조달 중 본점 차입을 통한 외화조달이 아직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서는 원화자금 조달이 크게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후략)" (월간 <말>, 1992년 10월)


#정운찬#국무총리 인사청문회#논문 자기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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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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