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그동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해서 남다른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학문적인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주 언론에 나와서 경제적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어서 매우 정의감이 강한 분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국무총리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접해서도 오래간만에 소신 있는 참 좋은 분을 발탁했다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여러 평판의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사람이 어찌 완전무결하게 흠 없이 살아올 수 있겠는가? 털게 되면, 누구나 다 나름대로 약점의 먼지를 안고 있지 않겠는가? 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병역의무 이행에 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처럼 내 스스로 믿었다가 제 가슴 치는 격한 배신감을 금치 못하는 바다. 한때 대통령 후보자로의 천거설도 있었기 때문에 설마 병역 문제로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는 아닐 것이라 여겨와 실망이 더 컸다.
물론 정운찬 후보께서 병역을 기피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진 않았으리라 믿고 싶지만, 어떻든 결과적으로 그는 남들은 다 가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사실 필자가 월남파병 되었던 65년 당시와 그 이후의 우리 사회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배경이 좋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의 자제분들 중에서 군복무를 하지 않은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니 그런 여건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지독히 먹고 끈질기게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기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던 그런 시대였다.
군의관과 기관원과만 잘 결탁하면 신체검사 불합격 판정을 받아 아주 손쉽게 병역을 기피했다. 이런 신체검사 관련 병무 관련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누차에 걸쳐 세상에 밝혀진 바 있다. 작금에도 신체검사 제도의 약점이나 운영상의 허술함을 이용한 방법의 병역기피 사실이 보도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분들 어느 누구에게든 물어봐도 다 나름대로의 그럴 듯한 설명의 이유들을 가지고 당당히 말한다. 전혀 고의가 아니고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며 강변한다. 그러나 입영 신체검사 시는 결격사유가 있어 군 입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 후의 사회생활에는 건강상 아무 지장 없이 지내온 분들 대부분은 분명 떳떳치 못한 자신만이 아는 양심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 여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직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최고 봉사 직인 국무총리나 장관 등은 지식이나 과거 경력도 중요하지만 자기희생의 최고수준의 봉사 경험이 있는 책임감 강한 분들 중에서 선발함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군대생활이야말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희생적 봉사 업무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군복무를 필한 분들 중에서 선발함이 좋지 않겠는가?
군 입대 문제는 젊은이들의 생애계획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다. 솔직히 누구나 피하고 싶은 심정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국방의 의무를 누가 봐도 요령껏 적당히 피했으리라 의심 받을 만한 사람들 중에서 지금 나라의 중책들을 맡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일까? 군대를 우습게 봐서일까? 왜 하필이면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분들 중에서 정부 고위직에 발탁하고 있는 것인지? 대한민국에는 그렇게도 인재가 없단 말인가?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 고위직 공직 인사를 결정 할 때에는 지금도 전후방에서 모든 불리함을 무릅쓰고 묵묵히 땀 흘려 봉사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의 입장을 한번쯤은 생각해 주기를 당부한다. 지휘관들이 늘 강조하는 "사기 진작!"이라는 말이 공염불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배려 있기 바란다.
병역문제에 있어서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니냐?"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 "출세하려면 군대 가지 말아야 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어찌 사기가 높아질 수 있겠는가? 전투에 임하여 목숨을 던지려 하겠는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모든 공직자 중 남성은 기본적으로 군필자로 한다면, 이는 운영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복무 점수 가산제도처럼 위헌의 소지도 없으면서 국군통수권자가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 줄 수 있는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병역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고지고식 정직하게 군을 필한 병장출신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을 차제에 그런 신나는 결단이 내려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덧붙이는 글 | (평화재향군인회 표명렬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