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쥐뿔도 없는 것들이 눈만 높아가지고. 대통령 하나 뽑아놨다고 세상 변하디? 잃어버린 10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10년이 될 판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안 변하면 말짱 꽝이라고. 중앙정치 바뀐다고 세상 바뀔 것 같아? 천만의 말씀!"

 

청명한 가을하늘에 대고 환경운동가 출신 전직 기초의원이 반쯤 육두문자를 섞어 답답증을 쏟아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모임들이 정치 공학적 접근은 하고 있으나, 정작 진보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보자는 정치운동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는 토로였다.

 

수도권에서 인구 100만 밀집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라면 진보진영의 유명인사가 들러붙어 치러볼 만한 선거인데 아무도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는 질타였다. 진보적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는 모범 도시를 만들면 전파는 삽시간에 이뤄질 거라고 그는 점쳤다. 물론 쉬운 싸움은 아니라고 했다. 질까봐 겁나서 못 나오나? 그럴 수도 있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밑바닥 귀환론

 

지난 16일 늦은 밤,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주변에 위치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회의실은 후끈 달아올랐다. 참여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친노 인사들과 시민운동가들은 이날 지방선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재밌는 제안도 터져 나왔다.

 

"유명한 사람들 다 지방선거 출마해야 한다. 그래야만 2008년 촛불의 시민정치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구로구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고양시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관악구에서 모두 출마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선거 투표율도 높이자. 풀뿌리운동가들이 동반 당선되는 효과도 누리자. 이러면 한나라당도 따라올 것이다."

 

박승옥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전직 장관 등 고위급 관료들이 기초의원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며 "기초의원에 주목해야 기초단체 문제가 의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 새로운 '정치적 충격'이 필요하다고 일격을 가한 셈이다. 늘 하던 타령으로는 신선감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이기도 했다. 그의 이 말에 친노 인사들은 동의했다. 

 

김용익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은 "거물들과 운동가들이 '지방의원 패키지 출마'를 한다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명숙 전 총리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그들이 작은 노무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대중적 기대 때문이기에, 중요한 사람들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새로운 진보정치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도 "정치적 자원과 시민운동이 서로 결합해 지방자치단체라는 공간에서 진보정치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뭔가를 해보자는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며 "시민운동과 참여정부가 과거를 평가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에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 장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명 정치인도 지방선거에서는 낙선의 쓴맛 볼 것"

 

그러나 시민운동 측에서는 박 대표의 주장은 현실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반론했다. 첫 번째 문제는 과연 어느 유명인사가 지방의원에 출마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상징적으로 한두 군데 도전할 수 있겠지만, 과연 대중이 그 같은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돌아이 취급 받거나, 정치 쇼를 하고 있다는 비난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기초의원부터 새롭게 '하방'하겠다는 유력 정치권 인사가 있다면 모를까, 이 같은 제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설령, 선거에 당선된다 해도 해당 유명 정치인이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된다는 우려도 터졌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유명 인사들이 기초의원선거에 대거 출마하는 상징적 시도는 좋다"면서도 "기본적인 전략방침은 문제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지역운동가들이 출마하도록 유명 인사들은 지원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하 위원장은 "박원순 변호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도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경쟁력 있는 후보가 아닐 수 있다"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풀뿌리 지역운동가들이 의회에 출마하도록 적극 지원하는 방침이 옳다"고 강조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점쳤다.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큰 승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묻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나 친노신당 등이 개발담론을 가지고 또 지방선거에 임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길이라고 우려했다.

 

상층부만 생각하다 지방을 다 놓쳤다

 

따라서 어떤 담론으로 지방선거에 나설지도 중요한 점으로 지적됐다. 유권자라면 누구나 현실정치에 답답증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풀 뚜렷한 대안이 안 보인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진보운동에 새로운 동력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김창호 전 처장은 "민주주의의 민주화와 진보의 자유주의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정치체제의 민주화, ▲ 사회경제적 민주주의(투명성, 절차적 정당성, 인권, 환경, 평화), ▲생활세계적 민주주의(분배, 생태, 삶의 질, 문화적 다양성, 지속가능발전, 참여, 균형발전)로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 폴라니의 지적처럼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상층부만 생각하다가 지역을 다 놓쳤다"며 "중앙의 민주적 성과를 지방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적 가치를 지역으로 확산해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시민공동체운동과 정치권의 감동 있는 연대'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태그:#2010 지방선거, #풀뿌리 지역운동가, #한명숙, #유시민, #이해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