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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에 불편합니다. 놀이터 옆에 주차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아파트 모퉁이에 주차되어 있는 차, 유리창에 내가 직접 붙여 놓은 글이다.

주차선이 없는, 주차지역이 아닌 곳에 며칠간 계속 주차를 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통행에 많은 불편을 느꼈다. 그래서 쪽지를 남긴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도 또 그 자리에 주차를 한 것이 아닌가.

 

화가 나서 차 안에 메모되어 있는 전화번호로 당장 전화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 출근시간에 그 차 운전자하고 맞닥뜨렸다.

 

"안녕하십니까? 301동에 사는 사람입니다. 자주 이곳에 주차를 하시는데. 많이 불편합니다. 저쪽에 주차장을 이용하셨으면 합니다."

 

"예, 알았어요."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는 검은 연기를 남기고 획 가버렸다. 황당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전에 그 자리에 또 다른 차가 주차를 한다. 그렇지만 그냥 지나친다. 몇 년 사이에 내가 변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

 

 

화단에 한쪽 바퀴를 걸쳐서 계속 주차하는 차가 있으면 관리실에 전화해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화단 경계석에 앉아 시끄럽게 얘기하는 애들이 있으면 창문을 닫고 만다. 부딪히려 하지 않는다. 아니 피한다.

 

예전에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고교생 3명을 불러 크게 나무랐던 용기(?) 기백은 나이가 들면서 나한테 찾을 수 없다.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잘못된 것을 나무라시던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멋있게 보였었는데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인 '행동하는 양심'의 다는 아니지만, 내 양심과 생각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 그 실천 정도가 덜 적극적이다.

 

 

'이 차는 몇 년간 방치되어 있습니다. 주차 공간 확보뿐만 아니라 미관상 보기 흉합니다.

차주께서는 더불어 사는 우리 아파트가 되도록 협조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차에 쪽지를 붙였다. 작은 실천을 다시 시작한 날이다. 내용을 컴퓨터에서 출력을 해 차에 테이프로 붙일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행정적인 절차를 밟는 방법도 있다. 구청 교통팀에 접수하는 것이다. 접수를 하면 담당 직원이 현장을 방문하여 차량번호를 확인하고 차량소유자에게 통보한다. 이때 소유자가 계속 방치하면 강제 폐차를 할 수 있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그런데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 몇몇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다. 조금만 이웃 주민에게 배려를 한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밤이면 아파트 베란다 가까이에 와 있는 풀벌레의 가을노래가 크게 들린다. 신종플루로 많이 움츠리고 있는 우리 곁에 코스모스 메밀꽃 개미벌취 억새 단풍 낙엽 등은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서면서 가을은 소리 없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유롭고 넉넉한 황금빛 들녘처럼 우리네 마음도 자연을 닮아 다른 사람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또 주차장에 주저앉아가는 차가 치워진다면 나와 아파트 주민들에게 그나마 아주 작은 추석선물이 될 것 같다.


태그:#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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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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