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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후보자 논문에는 각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옮길 경우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반드시 각주를 달아 출처를 표시해야 하는 것이 논문세계의 문법이다. 그런데 정 후보자의 논문에서 각주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논문 자기표절'의 가능성이 크다는 걸 뜻한다.

 

<오마이뉴스> 자체 취재 결과, 정 후보자의 '논문 자기표절'은 <오마이뉴스> 등 언론에서 밝혀낸 4건을 제외하고도 3건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을 한 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한 사례도 있었다.

 

 

잡지에 기고한 글을 일본어와 영문으로 재탕

 

정 후보자는 98년 12월 계간 <당대비평>에 '한국 자본주의 전환을 위한 제언'이라는 특별기고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IMF 체제 등 한국경제위기의 장·단기적 원인을 분석하면서 재벌개혁 등을 강하게 주문했다.

 

그런데 몇 개월 뒤인 1999년 2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에 똑같은 제목의 글이 일본어로 실렸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이중게재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불확실성으로 꽉 차 있다. 1997년 말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위기를 맞은 후, IMF 구제금융으로 당면한 외환위기는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후략)"(<당대비평>, 98년 12월)

 

"韓國 經濟は 不確實性にちていゐ. 一九九七年 末, かつて經驗したことのい經濟危機に

直面した後, IMF(國際通貨基金) 救濟金融により当座の外貨危機はどうか乘り越えた.(후략)"(한국국제교류재단, 99년 2월)

 

또한 정 후보자는 2000년 1월 한국금융학회에서 발행하는 <금융학회지>에 'The East Asian Economic Crisis: What Is and What Ought To be done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Case of Korea'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88년 12월 <당대비평>에 실린 글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정 후보자는 "이 글은 1998년 3월 20일 Korean Financial Society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 발표한 'IMF 차관과 거시경제정책',  98년 <당대비평> 가을-겨울호에 발표한 '한국 자본주의를 위한 제언'에 바탕을 두었다"고 출처를 밝혔다.

 

 

제목 바꾸고, 일부 핵심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

 

이러한 이중게재는 명백하게 '논문 자기표절'에 해당한다. 또다른 논문 자기표절인 '갖다 붙이기' 사례도 발견됐다. 전혀 다른 제목의 논문에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일종의 '논문 짜깁기'다.   

 

정 후보자는 1990년 9월 계간 <사상> 가을호에 '경제민주화, 잘 돼가고 있는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독과점과 재벌문제 등을 적극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담긴 글이다.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정부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성장일변도 정책을 포기하는 동시에 재벌을 어떤 모습으로든지 정리하여야 하며, 대기업 집단은 문어발식으로 획득한 기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문업종에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1990년 11월 철학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철학과 현실>에 거의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렸다. 다만 제목은 '자발적 협력체제가 허물어졌다'로 바뀌었다.

 

"과거에 압축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인은 사라지고 있는 데 반해 새로운 성장요인은 배양되지 않았다. (중략) 우리나라의 주거문제는 심각하다는 말로 표현이 불충분한 단계에 들어섰으며, 몇가지 통계숫자만으로도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중략)

 

서민층, 특히 빈곤층은 주거환경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집없이 세들어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열심히 저축하면 조그마나마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꿈이 산산조각나는 것이다. (후략)"(<사상>, 1990년 9월)

 

"과거에 급속한 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인은 마모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성장요인은 배양되지 못하고 있다. (중략)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는 심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불충분한 단계에 들어섰다. 몇가지 통계를 소개하면, (중략)

 

서민층, 특히 빈곤층은 주거 환경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집없이 세들어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열심히 저축하면 조그마한 자기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꿈이 산산조각나고 있음이다. (후략)"(<철학과 현실> , 1990년 11월)

 

공동저작 논문을 토론회 발제문으로 재탕

 

이전에 발표한 논문을 토론회 발제문으로 재탕한 사례도 있다. 정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경제논집> 제 46권(2007년 12월)에 '미래성장동력으로서의 창조적 인적 자본과 이를 위한 교육개혁'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는 같은 과의 김세직 교수가 공동저자로 올라와 있다. 저자들은 "본 연구는 서울대 경제학부 학술투자사업 연구지원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똑같은 내용의 글을 분량만 줄인 채 한 토론회의 발표문으로 제출했다. 지난 4월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주최한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 추진을 위한 제3차 대토론회'에서 똑같은 제목의 글을 발표한 것.

 

"1960년대 이래 외환위기 이전까지 30년 이상을 한국경제는 성장률이 연 평균 8%대에 이르는 역사상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1997년 말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1998년에는 성장률이 -6.9%까지 하락하였다. (중략)

 

그나마 5%대의 성장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잃는 반면 새로운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되어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고 경제성장은 더욱 둔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후략)"(<경제논집>, 2007년 12월)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래 30년 이상을 평균 8%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성장률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5% 내외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5%대의 성장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조선,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도 국제경쟁력을 잃거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후략)"('미래형 교육과정 개편 추진을 위한 제3차 대토론회', 2009년 4월)

 

특히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을 본인의 단독 발표문으로 제출한 점은 학문윤리상 상당히 심각한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한편 최재성 민주당 의원실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소장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 후보자가 발표한 KCI(국내전문학술지)급 논문은 총 9건에 그쳤다. SCI(국제전문학술지)급 논문은 IMF에서 발행하는 <금융과 개발>(FINANCE AND DEVELOPMENT)에 발표한 1편에 불과했다. 


태그:#정운찬,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논문 자기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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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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