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이다 보니 위로 언니와 오빠가 여럿이다. 언니들은 고향 부산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그 당시는 간절했거나 끔찍한 일들도 십 년, 이십 년 세월이 지나면 그냥 우스갯소리가 되어 버린다. 바람 핀 남편을 길들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언니의 투신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린 죽음에의 선택이었다.
한국의 남자들 70%는 외도경험이 있다고 통계에 조사되었다. 2명 중의 1명이 아니라 3명중의 2명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특별한 성직자나 병골, 또는 유교집안이나 바른생활의 가치관이 아닌 평범한 남편들은 꼭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도,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자연스럽게 외도를 한다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형부 중의 하나가 한창 중년시절 사업이 잘 될때 잠시 외도를 했다. 고향친구를 만나 함께 한동안 다녔던 모양이었다. 언니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여고를 졸업하자 마자 대학진학대신 열애에 빠져 형부 하나만 보고 살았으니 충격이 더 컸다.
일부러 외도를 눈치채려고 해서 바람핀 것을 알았던 것도 아니었다. 늦으면 일 때문이거니, 외박을 하면 출장을 갔거니 그러다가 우연히 회사에 보약과 옷을 챙겨주러 들렀다가 눈치 없는 경리직원이 "사장님은 사모님과 점심 먹으러 나갔는데요!" 하는 바람에 부지불식간에 알았던 것이었다.
별로 싸운다는 것을 모르고 자란 언니인지라, 니죽고 나죽자 식의 멱살잡이 부부싸움은 엄두도 못내고, 그냥 우울증 비슷하게 혼자 속을 끙끙 앓다가 죽음을 택했다. 아파트 5층에서 아래로 투신을 한 것이었다. 그 때는 복수한다는 심정과 살맛이 없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랬을 것이다.
투신을 한 언니는 기적처럼 아파트 밑에 있던 소나무의 가지에 한번 부딪치고, 다시 그 아래 향나무에 부딪친 후 땅으로 떨어졌다. 바로 떨어졌더라면 즉사했을텐데 나무 두 개가 완충역할을 해서 두 팔과 두 다리가 골절되는 것으로 그치고 오장육부는 말짱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고 그 후 형부의 외도는 말끔히 정리되었다.
두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언니를 만나러 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친정엄마가 다른 언니가 번갈아 말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것아! 잘못은 네 서방이 했는데 니가 왜 죽을라고 했냐?""생각을 많이 했어! 하도 많이 하다보니 아무것도 생각 안나고 모두 시시해졌어! 내가 죽을 팔자면 정말 죽어 바람 핀 남편이 자유롭게 될 것이고, 살 팔자면 그냥 살아나겠지 싶었어! ""칼자루는 네가 지고 있는데 왜 네가 그러니? 바보 아이가?""아냐? 바보 아이다. 아래에 나무 있는 것 보고 그리로 투신했다 아이가?"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언니는 팔, 다리가 고통스러워 밤을 지새다시피 한다. 그러나 크게 혼쭐이 난 형부는 기가 죽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 때문인지 그 때부터 언니와 세 아이들의 충실한 머슴처럼 되어버렸다.
눈 뜬 새벽마다 함께 달리고 주말이면 산에 가면서 신혼보다 더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일까? 살면서 두고 두고 우리는 틈이 나면 그 당시엔 끔찍했던 기적같은 그 때의 일을 떠올린다. 언니는 영웅담을 이야기하듯이 실감나게 흉내도 낸다. 결과가 좋으면 아무리 끔찍한 일들도 하나의 과정과 에피소드로 녹아버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때 친정엄마는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부러진 딸을 쳐다보며 참 마음 아파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