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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하우스 앞 정원에서 볕을 쬐고 있는 햇 고추. 같은 고추였던 재료지만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쓰임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코지하우스 앞 정원에서 볕을 쬐고 있는 햇 고추. 같은 고추였던 재료지만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쓰임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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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쯤 헤이리 인근에 작은 밭을 가지고 계신 분이 모티프원의 현관문을 열고 한 웅큼 야채를 내밀었습니다. 상추, 쌈케일, 적잎치커리, 적근대 등 아침에 밭에 들렀다가 따오신 싱싱한 쌈용 야채였습니다.

채식만을 하시는 어머니를 닮은 탓인지 삼겹살을 굽지 않아도 이 쌈용 야채와 고추장만으로도 저에겐 훌륭한 밥상이 됩니다. 저는 야채를 씻고 밥을 한 그릇 퍼서 식탁을 차렸습니다. 수저를 들고서야 고추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냉장고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날 제 옆집인 밤나무집에서 이 고추장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무엇이든 남들에게 아낌없이 퍼주기를 좋아하는 타오네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받기만 했던 송구스러운 마음을 덜기 위한 빚갚음의 뜻도 있어 한 끼 밥을 사는 외식으로는 합당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처가 휴가인 날, 수산시장에 직접 가서 몇 가지 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때 회를 뜨고 남은 생선뼈를 매운탕용으로 싸준 것이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처는 며칠간 딸들과 함께 지내야 할 형편으로 집을 떠나기 전 저를 위해 그것을 재료로 매운탕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고춧가루가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밤나무집에서 준 고추장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처는 부랴부랴 한 동네의 오현광물박물관 댁으로 가서 고춧가루를 얻어왔습니다.

저는 같은 고추를 재료로 한 것이라도 주방에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함께 상비되어야한다는 인식을 그때야 했습니다.

일전에 취재 건으로 뵈었던 강미승 작가(<내 삶을 1℃ 높이는 매직 키워드 101>, <여행, 색에 물들다>의 저자)께서 오셨습니다. 점심을 하고 3시간 정도 느리게 함께 헤이리를 걸었습니다.

최근 삼십 수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가 아닌, 홀로인 공간으로 독립했다고 했습니다. 애초 의도는 원룸형태인 그 공간을 가능하면 비워두고 직접 그린 그림을 걸거나 찍은 사진에게 빈 벽들을 내주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생활이라도 냉장고가 필수임을 알았습니다.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전자레인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장欌은 하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강 작가는 어떻게 해서든 장을 비롯한 더 이상의 세간을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도 강 작가의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자유여행자들을 보세요. 배낭 하나로 몇 개월을 살아냅니다. 사실 자신이 생존하는데 자신의 등짐 하나보다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배낭 하나보다는 좀 더 호화롭게 살고 싶다면 작은 모토홈(캠핑카)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사실 기타는 뱀이 늘씬한 다리를 가진 것에 불과해요. 그 원룸에 사족蛇足을 달기보다 차라리 강 작가의 작품들로 채우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지인들을 불러 '오픈스튜디오'를 하세요. 그것이 오히려 개성적인 마인드를 실천하는 쿨한 강미승적이지 않나요?"

모티프원의 캠핑 트레일러, 에어스트림 밤비2. 단지 17피트에 불과합니다.
 모티프원의 캠핑 트레일러, 에어스트림 밤비2. 단지 17피트에 불과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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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스트림 밤비2의 내부. 불과 5m 남짓한 길이에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들이 콤팩트하게 장착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데 이보다 더 많은 세간들은 군더더기다 싶습니다.
 에어스트림 밤비2의 내부. 불과 5m 남짓한 길이에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들이 콤팩트하게 장착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데 이보다 더 많은 세간들은 군더더기다 싶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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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금 생각하니 꼭 고춧가루 매운탕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고추장매운탕도 충분히 매력적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을 꼽아보니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가지 않고도 한 달을 넘게 잘 살았습니다. 이 둘을 가진 이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다 가질 필요도 없는 듯 싶습니다. 저는 이웃들이 갖지 않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진 상쾌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강미승작가의 모자를 주목하시라. 햇볕아래에서는 모자였다가 앉으면 손에 들렸던 소지품을 넣는 바구니가 됩니다. 물건을 줄이는 방법은 원래의 기능에 부가적인 쓰임을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강미승작가의 모자를 주목하시라. 햇볕아래에서는 모자였다가 앉으면 손에 들렸던 소지품을 넣는 바구니가 됩니다. 물건을 줄이는 방법은 원래의 기능에 부가적인 쓰임을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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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이란 금연하는 것만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명제이지만 '단순한 삶'의 실현은 금연보다도 더 몸과 마음에 이로운 것이 분명합니다. Simplify your life!

이정규선생님께서 내오신 에스프레소 한 잔. 이 앙증맞은 단순함이 더 아릅답습니다.
 이정규선생님께서 내오신 에스프레소 한 잔. 이 앙증맞은 단순함이 더 아릅답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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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강미승, #모티프원, #캠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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