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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의 주인공 이름은 '동화'다. 예쁜 이름이지만,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은 결코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일곱 살 동화를 시골집에 맡기고 서울로 떠난다. 아버지는 '백 밤'이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그 뒷모습을 보건대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갑자기 동화를 맡은 할머니는 그녀를 귀여워해주는가? 야속하게도, 매몰차다. 아들이 미워서 화풀이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혹은 동화의 이름을 부른 뒤에 할아버지가 쓰러져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동화를 차갑게 대한다.

 

춘자 고모도 마찬가지다. 공장에서 일하는 춘자도 동화에게 다정하지 않다. 일이 피곤해서 그런 건지 남을 돌 볼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춘자의 입에서는 욕설이 나오고 행동도 거칠기만 하다. 그 가운데서 동화는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엄마를 욕한다. "미친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바람나서 도망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화가 그런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할지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모욕한다. 동화는 할머니가 시킨 마늘 까는 일을 하면서 그런 말들을 가슴 속에 묻어둔다. 그것들이 쌓일수록 동화는 조금씩 변해간다. 조금씩 더, 독해지는 것이다.

 

최근에 등장한 성장소설들은 대부분 착했다. 혹은 유쾌했다. 어떤 문제 때문에 주인공이 방황을 하더라도 그것은 극단적이거나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주인공에게 찾아온 시련이 유쾌함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성장소설은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른들 사이에서도 두루 읽히고 있었다.

 

그런데 김숨의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은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 있다. 착하다는 생각은커녕 어느 한부분도 유쾌하지가 않다. 대신에 무엇이 있는가. 적나라함이 있다. 이 세상의 어떤 현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있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가난하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오는 그곳은 '침체'됐다. 가난을 타개할 만한 방법이 없다. 여자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다가 곧바로 돈을 벌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하는 일이 공장에 가는 것이다. 은행원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렵다. 공장에서 일하며 손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곤 남몰래 가슴 졸일 뿐이다.

 

남자 아이들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것은 없다.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히 공부를 할 형편도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도심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들이 된다. 돈 없고 빽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들이다.

 

어른들은 어떤가. 간질쟁이 장대 아저씨나 문둥이 아버지를 둔 방앗간 집 색시나 열여덞에 아기를 낳은 정희 언니 등 동화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비슷하다. 그들 또한 실패한 사람들이다. 매몰찬 할머니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춘자 고모도 똑같다. 돈 없고 빽 없는 그들은 "죄인"이다. 성공하지 못했으니, 죄인인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동화는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상처투성이고 좌절로 범벅된 삶들을 본다. 또한 그럴수록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강해진다. 강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처음에는 독해지는 것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화는 계속 그렇게 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좌절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좌절을 보면서 동화는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함부로 "더러운 자와 깨끗한 자를, 악학 자와 선한 자를 나눌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포용할 줄 알게 된다. 죄인들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했던 성장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분위기부터 말을 건네는 방식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데, 그것만큼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반갑다. 착하거나 유쾌한 것으로는 알려줄 수 없는, 어쩌면 인생을 견디는데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기에 그런 것이리라.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김숨 지음, 문학과지성사(2009)


#김숨#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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