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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들이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들이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화영

가을걷이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농민 50여 명이 잔뜩 뿔이 나 7일 오전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을 찾았다. 언뜻 봐도 연세가 80을 족히 넘은 듯한 어르신부터 40대 후반의 중년까지 여름철 농사일에 검게 그을린 모습에 손에는 피켓이 들려 있다.

이들의 방문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덕정리와 음성읍 덕생지역 일대 50만㎡ 규모로 이전을 추진하는 육군의 낙하훈련장(특전사 전술강하 훈련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알리려는 기자회견을 위해서다.

이 지역 주민들의 힘겨운 싸움은 지난해 11월 육군이 낙하훈련장을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이곳으로 이전을 추진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마을주민들의 '절대불가' 방침에도 해당 군부대 측은 지난 6일 음성군청에 환경영향평가를 의뢰하는 등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민 없이 군대가 있을 수 있나?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하훈련장 이전 반대 기자회견장에서 장해상 투쟁위원장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하훈련장 이전 반대 기자회견장에서 장해상 투쟁위원장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육군이 낙하훈련장으로 점찍은 지역의 10개 마을 주민 1000여 명은 '덕생지역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11월 음성군청 앞에서 주민의 50%인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육군은 이렇다 할 이유도 밝히지 않고 괴산 칠성에서 이곳으로 낙하훈련장을 옮기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함은 물론 주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며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을 파괴하고 민심을 혼란에 빠트리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충분한 토론과 검증 노력 없이 진행되는 낙하훈련장 이전 결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며 "우리를 땅만 파먹는 농사꾼이라고 무시한 처사"라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국군의 존재이유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 보위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며 "이는 바꾸어 말하면 국민 없이 국군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낙하산 훈련장을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는 육군의 의지를 보면서 국군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해상 덕생지역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장
장해상 덕생지역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장 ⓒ 이화영
장해상(57)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장은 "훈련장이 마을에서 불과 0.4∼1㎞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훈련으로 인한 축산농가의 소음피해와 산림훼손에 따른 자연생태계 파괴, 군사보호시설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 주민 피해가 자명하다"고 못 박았다.

또한 "낙하산 훈련장 인근에 위치한 남신초등학교 덕생분교와 크리스천 아카데미 스쿨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도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역주민의 정서와 민의를 저버린 정부와 육군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난다"며 "지역이 화합하고 발전하도록 지원하기는커녕 쌀값 폭락 등으로 가뜩이나 힘겨운 농심에 고통과 갈등의 대못을 박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의 군대인 줄 알았는데... 육군 신뢰할 수 없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낙하훈련장 이전 반대 구호가 적힌 핏켓을 들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낙하훈련장 이전 반대 구호가 적힌 핏켓을 들고 있다. ⓒ 이화영

투쟁위 관계자들은 "낙하훈련장 이전이 추진되면서 생전 오지도 않던 해당 부대 군인들이 봉사활동 명목으로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며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던 군인들은 얼마 못가 지역의 동향을 파악하고 마을주민을 이간시키는 '세작'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3월 국방부 관계자 3명이 배석한 가운데 국회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만났던 일화를 꺼내며 "육군이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개미눈물만큼 한 봉사활동을 무척 많은 봉사활동을 한 것처럼 상부에 허위보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 3명, 브로커 2명, 괴산경찰서 정보과장 등 6명을 모아 놓고 한 설명회를 마치 많은 주민이 참여한 설명회로 부풀렸고 주민들이 원하고 있는 양 거짓보고 했다"고 발끈했다.

또한 "김 의원의 '지역이기주의 아닌가, 피해 심하면 덜한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어떤가, 화합차원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군부대 측에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지난 4월 경 홍보물을 만들어 지역 주민에게 돌렸다"고 전했다.

 곽태규 덕생지역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회 부위원장
곽태규 덕생지역 낙하훈련장 반대 투쟁위원회 부위원장 ⓒ 이화영
곽태규 투쟁위 부위원장은 군부대 측에서 제작한 홍보물을 들고 김 의원을 찾아가 보여주자 대노하고 육군 고위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자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한 인위적인 추진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곽 부위원장은 이어 "군부대 관계자에게 처음에 설정한 좌표(DT)가 덕생지역으로 옮겨진 이유를 묻자 '우리가 좌표를 잘못 봤다'고 해명했다"며 "전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좌표를 잘못 봤다면 실제상황이라면 우리는 다 죽었다"고 한숨 내쉬었다. 이어 "상황이 이런데 우리가 어찌 군을 신뢰할 수 있냐"며 따졌다.

한 주민은 "군부대 관계자들이 찾아와 '좋은 말할 때 내주면 제대로 땅값주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수용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또한 "군부대 측에서 마을 아이들 학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해 '어떻게 지원 하겠냐'고 물었더니 '직원들의 월급에서 십시일반 모아서 지원하겠다'고 했다"며 "그 직원들은 무슨 죄를 지어 나라를 지키는데 헌신하고도 임금을 빼앗겨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육군이 개인의 재산은 물론 가족 뒷조사까지 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해상(오른쪽 첫번째) 투쟁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해상(오른쪽 첫번째) 투쟁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화영

어경선 투쟁의 부위원장은 "내가 집에 없을 때 노모께서 자신을 군이라고 밝힌 전화를 받았는데 '장교 되려는 손자가 어느 학교에 다니냐'는 등 인적사항 물어 군청에서 장학금 주는 줄 알고 모두 가르쳐 줬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군부대 측의 뒷조사였다"고 흥분했다.

투쟁위 한 관계자는 "군부대 측에서 '잘 협조해 주면 군대 간 아들 좋은 곳으로 빼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며 "군부대에서 사찰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 아들이 어느 부대에 근무하는지 알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투쟁위 관계자들은 군부대 측의 가족 사찰에 이어 재산까지 뒷조사한 문제를 제기했다. 군부대 관계자가 "장해상 위원장은 이곳에 땅도 없는데 어떻게 위원장을 맡을 수 있느냐?"고 했는데 이는 개인의 재산을 뒷조사한 분명한 증거라고 밝혔다.

육군이 낙하훈련장을 이전하려는 땅의 규모는 50만㎡ 정도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종중 땅 21만㎡, 삼생리 마을 땅 20만㎡, 마을주민과 외지인이 각각 4만5천㎡를 소유하고 있다. 투쟁위 관계자들은 땅 소유주들과 접촉한 결과 대부분이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장 위원장은 "낙하훈련장 이전 과정에 최소한의 민의도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군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군부대 관계자는 8일 전화통화에서 낙하훈련장 이전과 관련해 "기존 낙하훈련장은 목장주가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해 2007년까지 11년간 무상으로 사용해 왔다"며 "매입하려 했지만 재산권이 아들에게 넘어가 매입이 불가능하게 됐고, 절대 지역주민의 반대에 의해 쫓겨나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과 올해 8월 주민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참여율이 저조로 무산됐다"며 "주민들이 들으려 하지 않아 편지나 홍보물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알렸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훈련장 여건이 열악해 지난 11년 동안 훈련 과정에서 사망자 4명, 중경상자가 100여명이 발생했다"면서 "2007년부터 훈련을 위해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로 이동해 훈련하면서 연간 4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지출과 교통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 군부대 관계자는 주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사찰' 의혹과 관련해 "인적사항 조사나 재산조회 등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했을 리 없지만 파악해 보겠다"면서 "군인의 보직이동은 무작위로 돌리기 때문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 기자회견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 기자회견 ⓒ 이화영

투쟁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음성읍 주민은 물론 군내 모든 단체들과 출향 인사 등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23일과 30일 음성군의회와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음성군지부가 각각 낙하훈련장 이전 철회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육군은 지난 8월 이 일대에 대한 군사시설 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고 충북도에 농지전용 협의 의견을 제출했다. 지난 6일에는 음성군 측에 음성읍 삼생 1~3리와 원남면 삼용2리 등 4개소를 대상으로 C-130 수송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달라고 요청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해상 투쟁위원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해상 투쟁위원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이화영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7일 충북 음성군청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낙하훈련장 이전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화영


 낙하훈련장 조성 인근 현황도
낙하훈련장 조성 인근 현황도 ⓒ 이화영


#낙하훈련장#음성군#덕생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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