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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총 천마도/국보 제207호/신라 5~6세기/53.0~75.0cm
천마총 천마도/국보 제207호/신라 5~6세기/53.0~75.0cm ⓒ 국립경주박물관소장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이 전시는 9월 29일에 시작, 오는 11월 8일까지 열린다. 무엇보다 오랜 복원 과정을 거치고 공개되는 <천마도>(국보 제207호)가 참 궁금했기 때문이다.

<천마도>는 1973년에 발굴된 '경주 황남동 155분'에서 발견됐다.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으로 부르게 되었다. '무령왕릉'처럼 누가 묻혔는지를 알면 그 이름을 붙여 부르지만, 모를 경우 그 고분의 열쇠가 되는 대표 유물 이름을 고분 이름에 붙이게 된다. '호우총'은 '광개토대왕호우', '은령총'은 손잡이에 작은 방울(은령)이 달린 칼이 고분에서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이 천마도를 두고 이견이 있지만, 장니에 그려진 것이란다. 말이 진흙길을 재빠르게 달려갈 때 말 탄 사람의 발에 진흙이 튀는 것을 막고자 말의 배 부분에 대는 장식이 장니(障泥)란다. 이 천마들은 천마총 이후에 조성된 또 다른 고분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신라 회화사에 중요한 자료란다. 아마도 신라인들은 천마가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무사히 실어 날라주리라 소원하며 천마를 그려 고인과 함께 묻었으리라.

내가 천마도를 보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성분이 많아 잘 썩지 않고 습기에 강하다. 때문에 옛사람들은 오랫동안 보관해야 하는 문서를 자작나무에 쓰기도 했단다. 이 자작나무 껍질에 연애편지를 쓰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도 있다. 그렇다면 1천 5백 년의 우리조상들도 이미 자작나무 껍질의 오랜 수명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신기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줄을 선 사람들. 몽유도원도를 보려면 5~6시간은 기다려야? 전시실에 입장 후 다시 2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10월 7일 오후 1시무렵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줄을 선 사람들. 몽유도원도를 보려면 5~6시간은 기다려야? 전시실에 입장 후 다시 2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10월 7일 오후 1시무렵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김현자

1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올해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되는 해'라 관람료는 무료다. 매표소에서 표를 받으며 "하루 평균 몇 사람이나 관람하러 오는가?" 물었더니 그 직원은 "오늘 같은 평일에는 6~7천명? 주말과 휴일에는…" 그녀가 주말과 휴일 관락객수를 찾으려는 눈치인데, 그때 내 뒤에 섰던 사람이 물었다. "몽유도원도를 보려면 얼마나 걸린대요?"

"3시간 30분 넘게 기다려 봤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 이정도 인파라면 5~6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던데요"

헉? 6시간이나? 무엇보다 천마도가 보고 싶었지만, 이왕이면 몽유도원도도 보고 싶어 오후 일정을 미루고 달려간 터였다. 그런데 6시간이나 기다려야 볼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시실 입구에는 대체나 무척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 몇 갈래로 줄을 서 있었다. 일단 나도 꼬리를 잡고 줄을 섰다. 내 뒤에는 아가씨 둘이 섰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 여러 갈래로 서 있었지만 눈으로 여러 차례 어림짐작, 2~3시간을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왕 온 거, 좀 지루하겠지만 기다렸다가 보고 가자 싶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몽유도원도를 보자고 온 사람들이야? 오늘 꼭 천마도를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걸리는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박물관 관계자는 "5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관람은 9시까지란다. 그는 덧붙였다. 한 번에 12명 정도가 둘러서서 1분 30초 정도를 보는데 밀쳐내도 그림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 후레쉬 터트리며 사진 찍는 사람 등으로 전시장은 난리라고. 조금 있다 다른 직원이 덧붙였다. 


"몽유도원도 말고 귀중한 다른 유물들도 많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몽유도원도 때문에 거의 묻히고 있어요. 참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 김현자

'아쉽지만 몽유도원도는 접고 천마도는 내일 아침에 다시 일찍 와서 볼까? 오늘은 다른 전시들을 보고…' 박물관 측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란다. 내 뒤로도 그새 많은 사람들이 서 있어서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5~6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망설임은 시시각각 계속됐다.

그렇게 10분가량? 줄 옆에 세워둔 작은 안내문 하나가 보였다. 전시실에 입장 후 몽유도원도 관람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몽유도원도를 보려면 줄을 서고 여민해락, 즉 다른 유물들을 보려면 바로 입장하라는.

이 안내문을 보는 순간 참 많은 사람들이 참 많은 시간을 기다려 보는 유물인 만큼 나도 기다렸다가 볼까? 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13년만의 귀향이고 그날 못 보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고 해도 내게 몽유도원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마도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줄에서 빠져나와 성큼성큼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까지 몽유도원도를 보려는 줄은 이어지고 있어서 전시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때문에 다른 유물들을 관람하기 쉽지 않았다. 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유물들을 봤다. 전시실에서 처음 만난 유물은 1909년 11월 1일에 '국민들과 함께 즐긴다'고 선포하며 왕족 등 일부 사람들만 보던 제실박물관 문을 열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순종황제 어진.


제실 박물관의 개관 당시에는 조선 왕실에 전해 내려오는 서화류, 도자기, 금속공예품, 가마와 깃발 등 약 68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었다. 개관 이후부터는 고려시대 분묘에서 나온 뛰어난 고려 도자기와 금속품, 옥석류, 통일신라 불상과 조선시대 공예품을 집중 구입하여 1912년에는 1만 2000점의 소장품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중에는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같은 중요한 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흩어져 있는 유물을 제대로 모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볼 수 있는 중요유물의 행방도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중에서

 우리나라 초기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으로 사용된 창경궁 환경전(왼쪽)과 명전전 및 명정전 내부 전시 모습
우리나라 초기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으로 사용된 창경궁 환경전(왼쪽)과 명전전 및 명정전 내부 전시 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에서

유물들은 1909년 11월 1일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제실박물관' 관련 자료들을 시작으로 그동안 우리 박물관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시 흐름을 따라 유물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의 역사와 유물 역사를 쉽게 알 수 있으련만,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몇몇 유물들은 보지 못했고, 벽에 붙여진 설명들을 거의 읽지 못해 아쉬웠다.

전시된 유물들은 우리 박물관 역사를 알 수 있는 것들, 몽유도원도처럼 외국에서 전시를 위해 빌려온 유물들, 천마도처럼 발굴과 복원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들, 간송 전형필 선생이 당시 돈 1만 1천 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처럼 특별한 일화와 감동이 스며있는 것들, 그리고 몇 몇 컬렉터들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기증한 것 등이었다.

국보 제60호 청자사자유개향로, 국보 제124호 한송사석조보살좌상, 국보 제88호 금관총 출토유물들, 국보 제452호 청자구형주자, 국보 제143호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들, 국보 제155호 무령왕릉 출토유물들, 국보 제193호 봉수유리병,국보 제127호 금동관음보살, 보물 제1060호 백자철화끈무늬병(일명 넥타이병), 보물 제 904호 손기정 옹의 그리스 청동투구, 보물 제1373호 동제천문도….

이렇게 중요한 유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있나 싶었다. 이제껏 다녀본 전시 중 가장 많은 보물들을 만난 것이다. 국보와 보물들뿐이랴. 얼마 전 <명품의 탄생>이란 책에서 특별한 일화와 만난 '노송영지도'나 '송도기행첩' 등 볼만한 유물들이 참 많았다. 이들 유물들을 만나며 한참을 가도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서있는 줄은 끝이 없다. 그들이 서있는 어느 지점에 '1시간 30분소요 지점'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오우~! 드디어 천마도! 전시실 어느 귀퉁이에 조각조각 그림을 맞춘 60센티쯤의 천마도가 펼쳐져 있었다. 천마도 제작 추정은 5~6세기. 1500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들이 자작나무 껍질에 그렸다는 천마도의 감동에 휩싸여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천마도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사실 좀 많았다. 덕분에 난 제법 오랫동안 그동안 참 궁금해 했었던 천마도와 만날 수 있었다. 설렘과 함께.

'1500년전의 신라인들, 영원한 사랑을 꿈꿨나? 1500년전 그때, 어떻게 이처럼 자작나무에 천마를 그려 먼저 가는 이의 넋을 위로하고자 할 수 있었을까?'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져 있었는데 오랜 세월 땅속에 있었던 것이라 얇은 나무껍질을 한 번에 수습하기에는 유물이 훼손될 우려가 매우 컸다. 조사자들은 색이 바래고 갑자기 풍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빛과 공기를 차단하고 지속적으로 경화 처리를 한 다음 얇은 함석을 유물보다 크게 잘라 밑으로 밀어 넣어 유물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수습된 천마도는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온습도  관리가 제대로 되는 별도의 안전한 보관장에 넣어 응급보존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조심스레 조각난 파편들을 세척하여 하나씩 맞추는 오랜 작업을 한 끝에 1997년 제한적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근래에는 천마도가 아닌 다른 도상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촬영한 적외선 사진은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중에서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줄을 선 오후 4시 무렵의 관람객들(위)과 오후 6시 무렵의 관람객들(아래) 전시실에 불이 켜졌다.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줄을 선 오후 4시 무렵의 관람객들(위)과 오후 6시 무렵의 관람객들(아래) 전시실에 불이 켜졌다. ⓒ 김현자

2009년은 박물관 개관 100주년의 해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박물관의 시작은 창경궁에 제실박물관이 1909년 11월 1일 일반인들에게 소장품을 공개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박물관은 별도의 건물을 짓지 않고 창경궁 안에 있는 환경전, 명정전과 양화당을 비롯하여 부속 전각 7개 동을 일부 개조하여 전시실로 활용하였다.

…1909년 11월 1일 제실박물관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는 것은 결국 왕족이나 관리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궁궐인 창경궁이 일반 국민들도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순종황제가 제실박물관을 '국민들과 함께 즐기겠다'는 의도에는 일반 백성을 근대적 국민으로 인식하여, 국민들과 함께 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600여개에 이른다.

아쉬움과 함께 천마도와 헤어졌다. 이제 남은 유물은 몇 점, 그러나 몽유도원도 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전시 마지막 공간까지 이렇게 몇 시간짜리 줄이 있는 이유는 몽유도원도를 가장 깊숙한 곳에 전시했기 때문이다. 별도로 전시했으면 다른 유물들이 묻히지 않고 좋았겠다 싶었다.

애초 몽유도원도를 보려고 앞사람과 간격도 거의 없이 줄을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유물들을 힘들게 보면서, '모두 본 다음 다시 한 번 보리라'던 마음을 접고 전시실을 나와 도록(2만 8천원)을 한 권 사는 것으로 자꾸 아쉬워지는 마음을 접었다.

어느새 3시 48분. 그래도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 몇 갈래로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상설전시관에 가서 '한글창제 563돌 기념전'과 '관음신앙과 정병전'을 여유 있게 봤다. 좋아하는 분청과 청자 백자들도 맘껏 봤다. 마음 한편에는 시간이 좀 늦어지고 그만큼 사람들이 줄어들면 조금만 기다려도 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계산도 하면서.

그러나 왠걸! 6시도 이미 지나 주변은 어둑어둑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잇고 있지 않은가!

'저들은 왜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하는 걸까? 내가 천마도를 보며 설렜던 그 마음? 아님 남들도 보니까? 13년 만에 공개되는 거라? 워낙 유명해서?…. 저 많은 사람들 중 10분의 1만이라도 평소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 관심을 둔다면 좋지 않을까? 우리 유물 전체를 통틀어 몽유도원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

"남들도 보니까 본다"는 한 여대생의 말도 떠올랐다. "모사품만 보다가 진품을 보니 황홀하다"고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 앞에서 낯선 내게 그 감동을 말하던 어떤 할아버지도 떠올랐다. 이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어둑어둑해지는 박물관을 나섰다. 헐레벌떡 뛰어와 줄 속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스치면서. (전시는 11월 8일까지/무료/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

덧붙이는 글 |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0월 7일에 갔으며 이 글은 10월 9일에 썼습니다.



#천마도#몽유도원도#제실박물관#이왕가박물관#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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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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