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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에 나서지 않고 자율협의에 치중해 상인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9월3일 대전 중소기업청 앞에서 상인들이 '친기업적 사업조정지침 철회요구서'를 제출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에 나서지 않고 자율협의에 치중해 상인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9월3일 대전 중소기업청 앞에서 상인들이 '친기업적 사업조정지침 철회요구서'를 제출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 자영업자살리기국민운동본부

대형마트 및 SSM 규제에 대해 그동안 정부는 일관되게 'NO'를 표명해 왔다. 김종호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 과장은 지난 3월18일 <지역경제와 유통산업균형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대형마트 규제는 소비자 선택권, WTO 서비스협정, 헌법상 영업의 자유 등을 고려할 때 도입하기 어렵다. 규제보다는 중소유통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논리 역시 비슷하다. 각 수퍼 관계자들은 "대형마트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점포 수 및 영업방침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 상생협약

 

SSM 논란이 사회 이슈로 불거지면서, 정부는 전향적인 법 개정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신고만 하면 SSM 출점이 가능한 현행법에 등록절차를 추가하겠다는 식이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지난 9월11일 중소기업살리기 전국네트워크와의 간담회에서도 "법 개정을 검토 중이지만, 그 방향은 등록제를 강화하는 방안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상인들은 "현행 '신고제'의 연장선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정부는 갑자기 '대형마트와 지역소상공인 간의 상생협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상호 협의에 따른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품목 조정  등이다. 정부는 부산 용호시장, 김해 킴스마트의 사례를 들어 이를 홍보해왔다. 여론을 '간보고' 있는 기업도 여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상생협약이 실효성도 진정성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용호시장의 상생협약은 사업조정신청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었고, 10개월간 진행되었음에도 상인의 83.2%가 협약 내용을 몰랐다. 더구나 협약 후에도 인근 점포의 89.1%가 매출이 떨어지는 등 실효성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이 상인들에게 "이후 용호시장 사례를 홍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최근 경기도 남양주시가 홍보한 GS수퍼 남양주 퇴계원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GS수퍼 퇴계원점은 영업시간 및 품목조정 등 상생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GS 관계자는 "상생협약에 관해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으며 퇴계원점에서만 해당하는 사항이다"고 했다. 더구나 GS수퍼 퇴계원점은 사업조정신청대상으로 '조정을 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입장이었다. 조정신청을 낸 주변 상인은 "아직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최근 수퍼가 SSM 가맹점으로 전환하는 데 지원한다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오점교 중랑구묵2동대책위원회 대표는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통상 체인점 개설에 10억 원이 든다. 묵2동에만 수퍼가 40개인데 그 많은 수퍼들을 어떻게 지원할거냐. 일부만 지원한다면 그 기준은 또 어떻게 할 거냐. 결국 상인 간 분란만 일으킬 것이다"

 

상생하려면 우선 '생존'해야

 

 

 과도한 출점으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지만 대기업의 '양보'의지는 불확실하다. 지난6월27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소형점포를 연내 4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과도한 출점으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지만 대기업의 '양보'의지는 불확실하다. 지난6월27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소형점포를 연내 4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 동아일보

상인과 시민사회,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행법상 사업조정신청제도를 이용하더라도, 조정기간이 끝나면 '상생협약'은 물거품이 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각 기업이 출점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조정협의도 각 매장별로 따로 진행한다는 점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다. 신규철 대형마트규제와소상공인살리기 인천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대기업 유통업체가 SSM 출점을 중단한 상태라면 협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출점을 시도하면서 상생하자 하면, 도둑이 칼을 들이밀고 악수하자고 하는 꼴이다. 이미 자영업 기반 자체가 약해서 SSM 이 들어오면 그 주변 상권은 6개월 안에 다 무너진다. 더구나 일시정지권고를 무시하고 영업하는 곳이 전국에 9곳이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성 있게 상생을 논하겠나.

 

더구나 지금 기업들이 제시하는 협약 내용은 합리적인 기준도 실효성도 없다. 선진 마케팅 기법을 전수한다지만 그건 이미 중소기업청 시장지원센터에서도 하고 우리도 자구책 마련하는 부분이다. 품목제한도 가장 피해 큰 1차 농축산식품에 대해서는 안 한다. 최근 경북 포항에 이뤄졌다는 협약도 '일단 들어온 거 인정한다. 앞으로는 안 들어오겠다'는 거다. 이런 게 무슨 상생협약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신 위원장은 "'상생'을 위한 최우선 조건은 중소상인들이 '생존' 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확보하는 것. 그러기 위해 유통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진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의 지역상권은 작은데다 과잉팽창 되어있기까지 하다. 여기에 대자본이 밀고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해외에서도 대형마트는 자영업이 덜 발달된 신도시나 주택가 외곽에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대기업이 먼저 다른 시장을 모색하고, 지역상인의 생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대형마트#SSM#자영업#지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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