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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클럽회원들이 기차마을인 곡성역을 방문했다.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클럽회원들이 기차마을인 곡성역을 방문했다. ⓒ 오문수

 

가을 하늘이 무척이나 높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잎새며 청명한 가을 공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수에 젖게 한다. 이럴때면 무더웠던 지난 여름과 혼란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한다.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클럽회원 40여명이 지리산 자락을 감아 도는 섬진강 주변의 친환경 농업과 자연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마을인 곡성을 찾았다. 회원들이 먼저 찾은 곳은 박사농부 이동현씨가 운영하는 미실란이다. 이씨는 곡성읍 장선리에 있는 폐교를 사서 미실란 회사를 설립하고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다.

 

그는 원래 순천대학교 농학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농생물학석사와 일본 큐슈대학교 생물자원 관리학박사를 이수했다. 아이들이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농촌에 살 것을 결심하고 폐교를 사서 친환경농업을 시작했다.

 

 친환경농법으로 발아현미를 생산하는 미실란 직원들이 희망제작소호프메이커스클럽회원들을 위해 작은 들판 음악제를 열었다
친환경농법으로 발아현미를 생산하는 미실란 직원들이 희망제작소호프메이커스클럽회원들을 위해 작은 들판 음악제를 열었다 ⓒ 오문수
 
 
 곡성 기차마을의 음악분수
곡성 기차마을의 음악분수 ⓒ 오문수

 곡성 송정리에 있는 심청마을 숙소
곡성 송정리에 있는 심청마을 숙소 ⓒ 오문수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아름답게 꽃피우자는 뜻으로 '자연환경, 사람건강, 그리고 친환경 먹거리'를 지켜가는 참 일꾼과 아름답고 풍요로운 농촌의 희망모델이 될 것을 바란다. 이젠 농사도 과학적 경영이 뒤따라야 한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자 선택에서부터 논관리, 수확, 건조, 도정 및 보관과 가공에 이르기까지 제품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데이터화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미래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발아미(현미, 녹미, 흑향미)란 일반 현미에 적정한 수분과 온도 산소를 공급해 1~5mm 정도의 싹을 틔운 쌀로 현미의 영양과 기능을 극대화 시키면서 현미의 단점을 극복한 제품입니다. 현미에는 비타민, 당질, 단백질, 지방질, 광물질, 식이섬유 등 거의 모든 영양소가 들어있는데, 발아가 되면 이런 영양소가 몇 배에서 수백 배로 증가되며, 전에 없던 새로운 성분(아라비녹시린, 감마오리자놀, 엽록소, SOD효소, 미네랄 등)이 생겨 현미보다 탁월한 효과가 있는 기능성 식품이 됩니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을 지키며 세상의 조그마한 등불이 되고자 애쓰는 직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2009미실란 추수감사제와 작은 들판음악제'를 열었다. 쌀쌀한 가을밤 날씨를 우려해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워둔 가운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냄새는 잊혔던 시골의 정취에 빠져 들게 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구수한 사투리와 '얼쑤'하는 추임새가 곁들인 남도창에 회원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막걸리와 발아 현미로 만든 떡 안주에 어우러진 직원들의 힙합댄스는 참가자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만들었다.

 

음악제와 막걸리에 밤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던 일행은 축제가 끝나자  심청설화가 서려있는 송정마을로 이동해 여장을 풀었다. 송정마을은 심청설화와 관련이 깊은 동네다.  딸 홍장이 중국으로 팔려가 황후가 되어 장님 아버지인 원량이 눈을 뜨게 된다는 설화는 심청전을 낳았다.

 

송정은 일명 쇠쟁이라 불린다. 옛날 철광석 산지라서 쇠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종사해 그렇게 불렸을걸로 추측된다. 당시 섬진강을 따라 쇠쟁이 마을까지와 철광석을 사갔던 중국배에 팔려간 원홍장 설화가 이 마을에 서려있다.

 

뒤풀이 얘기며 살아가는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일행은 새벽 한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6시에 기상 7시에 태안사로 출발하는 강행군이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때 혜철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곡성 죽곡면에 소재한 태안사. 한국전쟁 중 불타 복원됐다
곡성 죽곡면에 소재한 태안사. 한국전쟁 중 불타 복원됐다 ⓒ 오문수
 
 김종권 섬진강문화학교를 방문해 독도사진전을 둘러보는 일행들
김종권 섬진강문화학교를 방문해 독도사진전을 둘러보는 일행들 ⓒ 오문수

 김정헌(왼쪽) 공주미대교수와 장태복 사장
김정헌(왼쪽) 공주미대교수와 장태복 사장 ⓒ 오문수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렸으며 우리나라 불교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이다.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려 꽤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던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온당으로 삼았다.

 

입구에는 한국전쟁당시 곡성 사수를 목표로 인민군과 격전 끝에 장렬히 전사한 48명의 경찰 영혼을 달래기 위한 충혼탑이 있다. 당시 접전 중에 본당 건물들이 소실되고 일주문만 남았으나 복원됐다.

 

태안사를 구경한 일행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섬진강문화학교를 찾았다. 독도사진 전문가인 김종권씨는 이 학교의 교장으로 개 8마리가 학생의 전부다. 그는 독도사진을 찍다 바람에 날려 절벽에서 추락했으나 3일 만에 구조돼 고향이 가까운 이곳에 정착해 사진교실을 열고 혼자 살고 있다.

 

다시 미실란으로 돌아온 일행을 반긴 사람은 조형래 곡성군수다.

 

"곡성이 나갈 길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동현 사장은 갑갑할 정도로 원칙을 지킵니다. 환경 친화적 농업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남자 감시원을 배치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면 고발해 달라고 했지만 온정주의와 인간관계에 얽혀있는 남자들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 있는 여성 감시원을 임명했더니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벼베기 체험에 나선 일행들
벼베기 체험에 나선 일행들 ⓒ 오문수
 재래식  방법인 홀태를 이용해 탈곡하는 일행들
재래식 방법인 홀태를 이용해 탈곡하는 일행들 ⓒ 오문수

 

곡성읍에 있는 해미식당의 늦은 아침은 일행에게 구미를 돋웠다. 특히 섬진강에서 잡은 다슬기에 묵은지를 곁들여 끓인 우거지국이 너무 맛있어 세 그릇을 비운 사람도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벼베기를 해본 적이 없다. 소화기내과 의사인 백현욱씨는 난생처음 벼베기를 한다며 가르쳐준 대로 시도했지만 어설픈 모습은 어쩔 수 없다.

 

"벼베기 해보셨어요? 주사 놓는 것보다 어렵죠?"

"아니요. 난생 처음입니다. 주사는 내 전공이니까 문제없는데. 나한테 베인 벼는 불쌍하죠. 벼를 벤 게 아니라 썰었죠."

 

미실란에서는 종자를 보전하기 위해 홀태를 이용해 벼를 탈곡한다. 요새는 너무 힘들고 인건비도 안 나와서 계통식 탈곡기를 샀다. 하지만 오늘은 농촌체험의 날이다. 묵혀뒀던 홀태를 꺼내 벼를 탈곡하는 체험을 하는 연구원들은 재미있다는 얘기다.

 

또한 옛날식 떡치기 시범을 보이는 데 아무리 떡을 쳐도 고무처럼 통통 튀기만 한다. 한참만에 나타난 이웃동네 아주머니가 "아이고! 멥쌀로 떡을 치니 떡이 쳐지겠어요?" 난감해진 이동현 사장은 "서투른 농사지식 때문에 만날 혼이 납니다. 하지만 꾸지람을 들으며 농사꾼으로 거듭납니다"라고 말한다.

 

김정헌 공주미대교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장으로 임기가 3년 보장됐는데 현 정권에서 강제 퇴임 당했다. 문화의 의미와 심경을 묻자 "문화란 지혜로운 삶을 유지하는 삶의 양식입니다. 내가 재직했을 때는 11명의 위원들이 자유롭게 선출해 임명됐죠. 당시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지명제가 돼 획일적인 기구가 됐다고 합니다"

 

핸드폰 줄과 같은 작은 전선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인 장태복씨는 백로 사진 전문가이다. 40년동안 사진을 찍은 이유를 물었다.

 

"그냥 좋아서요. 백로가 새끼를 돌보는 걸 보면 사람 같아요. 더울 땐 날개로 부쳐주고 날개를 펴서 햇빛을 가려줍니다. 비올 때는 우산이 되어 주고 새끼 먹이를 주는데 사진 찍느라고 눈을 마주치면 안 주고 기다리다가 토해버립니다. 고개를 돌려 눈길을 피해주면 그때서야 먹이를 줍니다. 한 번은 농부가 백로둥지가 있는 줄 모르고 갈아 엎어버렸는데 그 옆 논의 모를 발로 밟고 뽑아 버리는 해코지를 했어요."

 

"좋은 물은 향기가 없지만 풀은 상처를 입으면 향기를 풍기는 법이다. 물처럼 유유자적 흐르면서도 시련이 왔을 때는 인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황태영 대신증권 지점장은 수필을 쓰며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는 7월에  '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레일바이크를 타며 즐거워하는 일행들. 오른쪽 뒤가 박원순 변호사
레일바이크를 타며 즐거워하는 일행들. 오른쪽 뒤가 박원순 변호사 ⓒ 오문수

"서울에 상상할 수 없도록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봤어요. 헌데 밥 한 끼 안사는 걸 보며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아쉽습니다. 로마의 메디치가가 그 많은 돈을 자손들에게만 물려줬다면 오늘날 이태리가 저렇게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겠습니까? 현재의 이태리는 이들의 공헌으로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일행은 오색 발아현미로 지은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연잎에 싼 연잎밥을 한 주먹씩 받아들고 곡성을 떠났다. 한의사 전은영씨는 "시금치 맛과 향이 다른 시금치와 달라요. 음식은 생명력입니다. 깨끗한 친환경 음식을 먹으니 너무 맛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긍정적 사고로 우리사회에 등불이 되고 한걸음 한걸음 희망의 나눔과 기부를 실천해가는 회원들 얼굴이 가을 하늘만큼 높아만 간다. 아름다운 꿈과 부푼 희망을 안고 서울로 떠나는 이들 뒤에서 맑고 깨끗한 섬진강 은빛 모래가 빛난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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