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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저는 정말 '불가사리'한 게 요즘 한국의 아저씨들입니다."

김인철은 한자숙어를 요상하게 바꾸어 쓰고는 했다. 그는 불가사의를 '불가사리'라고 바꿔 말했다. 전에는 호시탐탐을 '호시침침'으로, 흥미진진을 '흥미율율'로 말할 때도 있었다.

조수경은 웃음부터 터트리며 물었다.

"뭐가 불가사리한데?"
"위수령이라니요?"

김인철에 의하면 독재정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들을 쉽게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히 독재정치의 유물이라고 했다. 그렇게 독재정치에 당할 만큼 당한 아저씨들이, 심지어는 지식인 아저씨들마저도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학대 즉 마조히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아저씨들은 박정희 집권 220개월(18년) 중 105개월을 계엄령, 위수령, 비상령 치하에서 살았습니다. 학대가 연쇄살인범을 만드는 이치나 독재가 왜곡된 인간을 만드는 이치나 같다고 봅니다."

김인철은 선언하듯이 말했다. 이어진 그의 말에 의하면, 박정희 통치 기간에 검거· 투옥된 사람이 1만4000명을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라면 계엄령이나 위수령 같은 조치들을 북한의 군사 위협보다 더 무서워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수경은 화제를 사건으로 돌리기 위해 김인철도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말을 했다.

"군부대가 협조하여 전국 하천에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더군."

6·15 일주일 전인 6월 7일을 기점으로 데프콘3가 발동되었다. 데프콘3는 적의 도발 징후가 보일 때 내리는 비상령으로서 전군의 외출· 외박이 중지되는 정도의 비교적 온건한 조치였다. 데프콘은 5에서 1까지 있는데 번호가 낮을수록 위급한 상황이었다. 한국군에는 6·25 이후 지금까지 경계 강화 태세인 데프콘4가 상시적으로 발령되어 있던 터였다. 그러니 이번 조치는 평시보다 한 단계를 강화한 셈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은 엉뚱한 곳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6월 15일까지 금강산 관광여행과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과 보수언론은 남북 교류의 일시 중단을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터였다. 정부는 야당과 언론의 집요하고 드센 요구에 굴복한 셈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국민 여론조사를 해 본 후에 내려진 고육지책의 결정이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격앙된 표현으로 남한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유감을 표시했다. 

6월 14일 모든 신문과 방송은 뉴스 시간의 전부를 예고된 범행으로 장식했다. 그동안 그들은 전 국민이 일심 단결하여 범죄가 발을 못 붙이도록 하자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일부 신문들은 정부가 위수령 발동을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방송사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전국의 하천 상공에 헬리콥터를 띄웠다. "타타타타!" 하는 헬기 음향을 배경으로 핼맷을 쓴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화면에 나타났다.

"여기는 굽이굽이 7백리 물길 낙동강입니다. 반세기 전 우리는 공산군을 맞아 바로 이곳에 최후의 저지선을 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군과 경찰은 다시 한 번 이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나섰습니다. 예비군과 해병전우회의 늠름한 모습도 보입니다. 아직은 정체가 불분명한 범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의 철통같은 방어망을 결코 뚫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YBC 뉴스 OOO입니다."

강이 없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기상(機上) 뉴스는 모든 도에 있는 강물 위에서 대동소이한 멘트를 반복하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각 주요 도시의 시민 반응을 방송했다. 시민들은 주먹을 불끈불끈 쥐며 불온 세력 퇴치를 다짐했다. 이어서 경찰청장과의 화상 인터뷰가 나왔다.

"한때 경찰에서는 범행이 범인의 예고대로 성공하리라고 보셨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경험이 일천한 한 수사관의 개인적인 추정이었습니다."

경찰청장은 직위를 걸고 범죄를 막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조수경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뗐다. 그녀를 비롯한 범죄분석팀 전원은 철야 비상근무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범죄의 성사 여부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조수경은 팀원들과 피자로 늦은 저녁을 때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피자를 오물거리던 조수경은 불현듯 컴퓨터 앞으로 가서 메일을 점검해 보았다. 직감대로 아브라함이 보낸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메일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 한반도 지도를 보십시오. 한국 경찰로서는 경비가 불가능한 강이 많습니다.

'아!' 하는 탄식이 조수경의 입에서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그녀가 모니터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갑자기 팀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청장이 서 있었다. 조수경은 대표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찰청장의 옆에는 용 부장이 있었다. 방 안을 둘러본 경찰청장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용 부장도 따라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 조수경이 큰 소리로 용 부장을 불렀다.

"부장님!"

용 부장과 경찰청장이 몸을 돌려 조수경을 보았다.

"범행은 일어납니다."

용 부장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고 경찰청장은 조수경을 이윽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이상한 눈길로 조수경을 보고 있었다.

마침내 6월 15일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날은 정말 허무하다고 할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다. 일반 범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 동안 인내하고 협조해 준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모처럼 경찰도 언론의 칭찬을 받았다. 각 당에서는 국민의 총화단결이 거둔 승리라는 식의 논평을 발표했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여야의 논평 내용이 비슷했다.

범죄 방어에 성공한 경찰청장은 애써 득의를 감추며 이제 범인 검거에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범인 체포에 걸린 현상금 10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이번처럼만 믿고 협조해 주시면 우리 경찰이 무슨 일이든 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신문에서는 마치 북한의 남침 기도를 분쇄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조센일보>에서는 남북 교류를 중단한 것이 효과를 냈을 것이라는 추정 기사를 내 보냈고, 상당수 국민들은 그것을 그럴 듯하게 받아들였다. <조센일보>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때까지만이라도 중단한 남북 교류를 복원하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신문들은 연쇄살인이 일단락 내지는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떤 신문에서는 그 동안의 사건일지와 함께 전반적인 논평 기사를 싣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야당이 제출한 대북교류재개유예결의문을 과반수로 통과, 채택했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보수야당에 대해 저주가 담긴 성명을 발표했다.

이로부터 열흘 후, 조수경은 용 부장과 함께 경찰청장의 호출을 받았다. 청장실에는 경찰청 수뇌진이 모두 모여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시선이 일제히 조수경에게로 쏠렸다. 조수경은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수사국장이 나서서 사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범행은 6월 15일에 발생했습니다. 우리 범죄분석팀의 추정이 맞은 겁니다."

경찰청장은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 부장은 조수경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다시 수사국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럼 우리 조 팀장의 추정대로 북한에서 발생했다는 겁니까?"

청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간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대동강에 벌거벗은 사체 셋이 떠올랐소."
"...가공할 일이로군요."
"그렇소. 정말 가공할 일이오."

용 부장은 할 말을 잊은 듯 우두망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경찰청장이 입을 열었다.

"앉으시오. 곧 북한에서 사건 설명서를 보낸다고 했소. 지금까지 입수된 정보로는 남한의 사건들처럼 북한의 사체에도 등에 영어 대문자 'B.K.'가 써 있다는 정도밖에는 모르고 있소."

그 날 부로 조수경의 직위는 복원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연말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6`15#대동강#남북교류#범죄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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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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