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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에서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1-3학년 국어교과서 3권 체제를 2권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설문이 나온 걸 보니 국어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기는 하나 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히 책을 합치라는 것이 아니라 국어 교육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다시 설계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국어 너무 어려워요

그 동안 현장에서는 국어교과서가 너무 어렵고 양이 많아 가르치기 어렵다고 나왔습니다. 2002년도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연구한 결과에도 국어와 사회가 어렵다고 합니다. 1, 5, 6학년 국어의 양이 많고 특히 1학년에서는 70.5%나 되는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렵다고 대답하였습니다. 

<7차 국어과 학습 내용 양과 수준에 대한 교사 설문 조사>
내용 수준 - 매우 어렵다(40.7%), 조금 어렵다(43.2%), 별로이다(16%), 쉽다(0)
학습 양 - 매우 많다(23.8%), 조금 많다(49.9%), 별로 많지 않다(25.7%), 전혀 많지 않다(0.6%)
                    - 제7차 초등학교 교육과정 운영 연구(3), 2002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펴냄

1학년 책 맞아?

옛날 1학년 국어책 하면 이런 낱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그런데 지금은 교사들이나 학부모나 초등 1학년 국어교과서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아니, 1학년 책이 왜 이렇게 어려워? 이걸 어떻게 가르쳐?"

 <1학년 1년 동안 공부 해야 할 교과서> 1학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국어 교과서다. 1학년 1학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1학년 2학기 듣기,말하기/ 읽기/쓰기 책으로 744쪽 분량
<1학년 1년 동안 공부 해야 할 교과서> 1학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국어 교과서다. 1학년 1학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1학년 2학기 듣기,말하기/ 읽기/쓰기 책으로 744쪽 분량 ⓒ 홍순희

국어교과서가 유독 어려워진 건 2000년 7차 교육과정 때부터입니다. 아래 표에서 내용만 봐서는 어느 학년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교수진조차 초등학교 1학년 것이 10학년 목표보다 어렵다고 비판할 정도입니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1학년에서 배울 내용을 맨 위의 것만 따봤습니다. 말만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고등학생 내용보다 어렵다는 비판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에 따라 7차 교과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도 어렵고 양도 많고, 그렇다고 국어 학습이 제대로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1학년에서 배울 내용을 맨 위의 것만 따봤습니다. 말만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고등학생 내용보다 어렵다는 비판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에 따라 7차 교과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도 어렵고 양도 많고, 그렇다고 국어 학습이 제대로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 신은희

2007개정교육과정도 수준이나 내용의 비약에서는 별다르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 열심히 가르칠수록 부진아?)

문자 지도가 고작 6시간?

1학년이 어려운 것은 한글교육 기간이 매우 짧고 읽는 것이나 쓰는 것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도 전에 내용 수준이 껑충 뛰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 배운 7차에서는 문자 읽기 지도는 6시간 이루어지고, 여기에 문장 부호까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앞의 연구결과). 쓰기에서는 닿소리, 홀소리 몇 번 쓰고 글자모양 보다가 바로 문장으로 들어갑니다. 잘 읽지도 못하는데 겹받침 있는 글자 받아쓰기까지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이런 저런 시간을 다 포함해봐도 문자 교육 기간이 채 두 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쏟아지는 학부모들의 질문에 한글을 안 배워와도 4주간이면 국어 교과서를 배울 수 있고(2003년 EBS라디오 생방송 부모), 지도서를 봐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장담을 합니다. 교사들은 안 배워오면 따라갈 수가 없는 교과서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한글 안 배워 오면 부진아?

이러다보니 학교 오기 전에 선행학습이 당연하게 되고, 유치원은 한글교육 압박을 받게 됩니다. 유치원 교육과정은 여전히 6차였는데, 총체적 언어학습이라고 하여 관련 경험을 쌓는 것이지 문자교육을 하게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올해 2007개정교육과정에서야 문자교육이 조금 들어갔습니다. 10여년을 학부모들의 사교육비와 유치원교육 파행으로 한글교육을 해 온 셈입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온 아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아이들도 따라가기가 어려웠을 정도니까요. 어떤 내용은 반에서 1명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공교육 시작부터 수렁에 빠뜨려서야

초등학교 1학년은 공교육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입니다. 1학년 국어는 단순한 교과의 의미가 아니라 공식적인 모국어교육의 시작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격입니다.

 1학년 2학기 수학책입니다. 언뚯 봐서는 국어인지 수학이나 다른 교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수학 사고력을 강조하는 목표 때문에 이런 유형이 많이 나오는데, 때론 교사들도 내용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개다가 한글 교육이 체계적으로 안된 아이들은 글을 읽어도 내용은 이해하지 못해 단순한 문제같아도 헤매고 있습니다.
1학년 2학기 수학책입니다. 언뚯 봐서는 국어인지 수학이나 다른 교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수학 사고력을 강조하는 목표 때문에 이런 유형이 많이 나오는데, 때론 교사들도 내용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개다가 한글 교육이 체계적으로 안된 아이들은 글을 읽어도 내용은 이해하지 못해 단순한 문제같아도 헤매고 있습니다. ⓒ 신은희

또 국어를 잘못하면 수학도 못합니다. 수학에 문장제가 많은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국어수업에서 자신감을 잃으니 다른 교과에서도 자신감을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학년의 부진아를 봐도 국어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교육의 토대가 국어라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국가교육과정의 공백 때문에 그 동안 죄 없는 아이들이 피해를 당한 셈입니다.

저는 2000년 시행 첫해부터 "국어가 가장 어렵다"며 1, 2 학년 국어라도 새로 고치자고 가는 자리마다 계속 이야기하고 다니고 교과부에도 요구했습니다. 교육과정연구의 본산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토론회(2001년)에 가서도 제발 국어 좀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각종 연구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는 계속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국민공통기본교과라서 1, 2학년만 바꿀 수 없다고 10여년 버티더니, 엉뚱한 건 잘도 바꾼다더군요.

2007개정교육과정 연구 과정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문자지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유치원에도 문자교육이 생기고 1학년에서는 우리들은 1학년 과정에 9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주변 선생님들의 의견을 물어보니 작년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중등 연구자가 초등교육 전문가?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교과서를 쓴 집필진은 거의 현장에 있는 교사들인데도 말입니다. 이건 모든 교과 교육과정개발과정에서 초등교육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들을 구조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과교육과정 개발구조를 보면 중등교과 연구자들에 의해 내용이 이미 결정되어 초등학교 1, 2학년 성취기준이라는 것도 너무 높게 설정이 됩니다. 나중에 문제제기하면 이미 결정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거나 다음에는 반영하겠다고 합니다.

7차 교육과정 때는 초등연구자가 거의 없고,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초등연구진이 조금 들어갔다고 하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당장 최근에 이뤄지는 교과부 정책만 봐도 초등교육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굴러갑니다.

지난 9월 22일에도 국어 교과내용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갔더니 온통 교과내용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현실의 국어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안나왔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모임 선생님이 국어 학습량의 문제나 부족한 한글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니, 현실적으로 80%의 학생들이 다 배워오는 걸 감안해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7차 교과서가 그렇게 어렵게 해놨으니 어쩔 수 없이 사교육비 들이고, 정부는 거기에 편승해 아예 고민도 안하고 20%를 버린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전 통합교과 토론회에서는 입학 초기에 한글 미해득자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는 발표가 나와 그나마 다행입니다.

두 달만에 뚝딱? 너무 짧은 집필 기간

교육과정이 나오면 이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그 다음에 지도서, 교과 해설서를 씁니다. 2007개정교육과정부터 초등에서도 공모제가 시행되어 교과부에서 먼저 공고를 합니다. 워낙 기간이 짧고 예산이 많지 않아 단독입찰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 못해 하는 것이지요. 과학 5, 6학년은 1차 공모가 실패하여 2차 공고가 나온 것까지 보았습니다. 예산은 교과서 삽화의 질과도 바로 연결됩니다. 저작권도 강화된 마당에 최저 몇 천원짜리 삽화를 그려야 하니 좋은 삽화가를 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교과서 개발 기간도 매우 짧습니다. 보통 실험본 1학기 개발기간이 4개월인데, 그 중 거의 1-2개월에 교과서 집필을 마무리하고 3개월부터는 삽화 발주, 4개월째는 지도서 집필을 마무리합니다. 예를 들어 내년도에 실험할 교과서들은 지금쯤 막바지 작업을 하고 심의준비를 할 것입니다. 책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심의과정이나 실험본 검토 결과 체제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체제가 그대로 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발진과 집필진의 어려움도 커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나 집필진이 있더라도 이 짧은 시간에 전국 초등학생에게 맞는 교과서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장 집필진은 과중한 업무에 모든 교과 가르쳐가며 써야 하고, 교원대 파견 와서 공부하려다가 졸지에 집필진이 된 이들은 공부하랴 집필하랴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집필진 워크샵 한 번 하고 나면 전국에 흩어져 각자 맡은 단원 쓰기도 바쁩니다. 이러니 한 교과서 안에 단원마다 다른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적된 자료도 거의 없습니다. 열심히 만들고도 졸속이란 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은 영어 연수와 비교해봐도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영어연수를 보면 학기 중간에도 기간제 교사를 구해주고 오랫동안 비울 수도 있고 해외연수까지 보내줍니다. 교과서 집필진은 해당 교과 교육과정에도 능통하고 교과서 집필의 감각과 능력도 갖추고 외국의 교과서도 참고하면서 만들어야 합니다. 전에 만든 교과서가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것을 계승해야 할지도 명확하게 이해해야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교사들에게는 이런 혜택이 전혀 없고 짬짬이 써야 합니다. 지금 현장에서 교과서를 쓰는 모든 교사가 이런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교과서를 잘 만들려면 이런 제도 보완까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국어 기초 연구부터 시작해야

초등 교육과정 개발기구가 생기고 여러 문제가 보완되면 국어 교육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만 이것 말고도 생각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든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먼저, 국어 교육의 목표와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초등의 국어 교육, 특히 저학년의 국어 교육은 모국어 교육의 측면이나 국어교과, 다른 교과와의 연관성을 볼 때 매우 중요하고 학교적응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한글교육을 미리 받아왔다 하더라도 공교육 시작 단계에서 평상시 쓰던 말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공통의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자기주도적이란 말로 이런 가치에 대해 거의 생각을 안할 때가 많습니다. 국어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낱말이 다른 교과 수업에도 영향을 줍니다. 다른 교과 시간에도 수시로 낱말을 학습하고 실제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으면 더 살아 있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모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도 필요합니다. 학기 초 짧은 자투리 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부진아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모국어에 대한 권리입니다. 얼마 전 1학년 대안교과서를 만든 국어교과모임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니 프랑스는 이런 교육이 꽤 오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둘째, 국어교과서를 보면 아이들에게 어려운 낱말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은 구체명사인데, 책에는 추상명사가 많이 나옵니다. 쉬는 시간에 재잘재잘 말하던 아이들이 국어 시간에 말하려다 입이 막혀버리기 일쑤입니다. 7차 시행 초기에 책에 있는 내용으로 받아쓰기를 하는 반에 학부모 민원이 쏟아질 정도였습니다.

수학 문장제는 더 어렵습니다. 이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언어 발달과정이나 어휘 수, 교과서에 써야 할 어휘에 대한 규정이나 연구 자료조차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언어에서 출발하고 발전시키는 국어 교육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언어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말 속에 아이들의 생활이 있고,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겪은 일 하나하나가 바로 낱말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알맞은 낱말과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의 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론이나 유치원의 마주이야기 수업과도 연관됩니다. 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 이런 말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아동의 언어로부터 시작하여 질을 높여나가고 국어 교과교육의 목표까지 이르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와 교사들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1-2학년의 국어와 문학 교육의 주요 과제는 가정과 초기 교육, 특히 취학 전 교육에서 시작된 언어 학습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의 일상 생활과 관련된 말과 글로 된 광범위한 의사소통으로 구성되며, 언어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학생 개인의 언어 학습을 지원한다. 또한 학생이 학습 과정의 매우 다양한 단계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핀란드 국가교육과정 국어와 문학 1-2학년 과정)

핀란드는 학년군제로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유치원과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언어학습을 존중하며 교육을 합니다. 개인의 발달 사항이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연결되는 상황이니 이런 것이 가능하겠지요. 우리 나라는 학년군제를 흉내내겠다고 하지만, 교과교육과정은 학년별로 분리되어 있고, 학생 발달 수준과 맞지도 않습니다.

미래형교육과정(2009개정교육과정) 논의가 숨가쁘게 진행되지만 정작 고민해야 할 것은 놓치고 겉만 맴도는 것 같습니다. 특히 초등 1, 2 학년 교과교육과정을 무리하게 손대고 있습니다. 이왕 바꾸려면 다 바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구조적 문제와 현실적 여건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올해는 1, 2학년에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7차 교육과정 체제이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주로 7차 교육과정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초등국어#2007개정교육과정#2009개정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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