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에 시작한 SBS수목 드라마 스페셜 <미남이시네요>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처음엔 유치해서 놀랐고 다음엔 재미있어서 놀랐다. 이건 뭐 오글거리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매 순간 오글거리다보니 어느 새 그 오글거림이 적응되어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만화책을 읽는 기분, 오글거리지만 괜찮아

 <미남이시네요> 포스터.
 <미남이시네요> 포스터.
ⓒ SBS

관련사진보기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만화책을 읽는 기분이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친구와 따뜻한 방 안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과자를 먹으며 낄낄대며 만화책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이랄까. 사실 나는 이런 드라마를 무진장 싫어한다. 자고로 드라마라면 웃기는 것도 좋지만 웃기기만 한다면 그게 시트콤이나 쇼 오락프로와 뭐가 다르겠는가, 생각했던 것이다.

하다못해 요즘엔 시트콤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감동을 주는 마당에 아무리 유쾌하고 상큼한 것도 좋다지만 만화책처럼 가볍기만 한다면 만화책을 보지, 왜 드라마를 보겠냐 생각해 왔던 것이다. 설정부터 인물, 연출까지 이건 대놓고 '만화' 다.

그래서 만화 같은 설정은 때로 어이없기도 하다. 1회 분에서 로마로 떠나려던 고미녀(박신혜 분)는 황태경(장근석 분)과 부딪쳐 비행기표를 떨어뜨리고 만다. 태경을 보고 화들짝 놀란 나머지 도망친 것까지야 그렇다고 쳐도, 로마로 가고 싶다면 얼굴을 가리고 얼른 빼앗아 오면 될 것을 굳이 도망을 쳐댄다.

어디 그뿐인가. 그 누구에게도 베풀 친절함 따위는 없을 것 같던, 더군다나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인기 아이돌 밴드의 멤버인 태경은 굳이 비행기 표를 돌려주기 위해 수녀님을 찾아 헤맨다. 안내 데스크에 갖다 줄 생각이나 방송을 해서 찾게 해줄 생각은 못할 만큼 머리가 떨어지는 것일까.

때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어리바리함을 지나쳐 세상 물정에 어둡고 모자라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아, 참 저런 어리바리함이 귀엽단 말이야, 싶은 정도를 지나쳐 뭐 저렇게 멍청한 X가 다 있어? 하고 욕 하게 되는 순간. 물론 여주인공 미녀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녀' 라는 설정 덕에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영화야, 드라마야, 아니면 뮤직비디오야?

 드라마 <아이리스> 포스터.
 드라마 <아이리스> 포스터.
ⓒ KBS

관련사진보기

200억의 제작비에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등의 한류스타부터 T.O.P(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까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KBS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도 얼마 전에 뚜껑을 열었다. 1회부터 영화 '본 시리즈' 를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눈을 잡아끌었다. 이건 정말이지 드라마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 같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지적인데다 당찬 매력이 있는 최승희(김태희 분)는 보기 드문 참 마음에 드는 여자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이는 여자, 연애에 있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여자. 우물쭈물 어리바리함과는 거리가 멀고 일도 사랑도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여자.

CF에서만 빛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김태희도 그런대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천재적인 두뇌와 냉철함에 유머까지 갖췄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갖고 있는 김현준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

첩보 액션물이라는, 드라마에서 그동안 다뤄지지 않은 장르를 그런대로 잘 담아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탄탄한 구성도 화려한 영상미도 좋지만, 90년대에 유행하던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조직 아이리스의 등장과 본격적인 이병헌의 복수극에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고공행진이지만, 어쩐지 나는 본방으로 <미남이시네요>를 선택하게 되었다.

소녀판타지로 포장된 인간 성장기

요즘 드라마는 현실적인 척 하면서 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에 막말 퍼레이드까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만화 같은 드라마에 어쩌면 더 '진정성' 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네티즌 사이에서 '허세근석'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장근석은 황태경 역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정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저런 허세 뭐야' 싶은 우스꽝스러움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그 중에서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그의 입술 씰룩거리는 연기는 압권이다. 제르미 역을 맡은 실제 가수인 이홍기(FT아일랜드 멤버)도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쌍둥이 오빠 '고미남'이 되어 생활하게 된 '고미녀'가 언제 여자인 게 들통 날 지 긴장하며 보게 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스피디한 전개로 여자인 게 들통 났지만 그 이후에 벌어지는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인 셈이다.  

남장여자, 어찌 보면 식상한 소재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생각해보라. 인기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사실은 여자라면? 많은 시청자들이 그 여자에게 이입해 소녀의 판타지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에피소드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 성장기'를 보여준다는데, 과연 다양한 인물들의 군상 속에서 서로가 부딪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얼마나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쾌걸춘향>부터 <마이걸>, <환상의 커플>, <쾌도 홍길동>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명랑 쾌활한 드라마를 선보이며 사랑 받아 온 홍정은, 홍미란 자매의 작품이라 기대도 해본다.

어쨌거나 볼거리가 많은 수목 드라마 경쟁에 시청자로서는 기분이 좋을 뿐이다. 이준기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음주에 방영될 3류 찌라시 기자가 거대 영웅이 되어 거대 언론사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MBC의 <히어로>역시 기대가 된다.


#미남이시네요#아이리스#장근석#이병헌#김태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