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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스 폴 콘서트'에서의 송영주. 한국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 가운데서도 그녀의 위치는 단연 특별하다.
'리더스 폴 콘서트'에서의 송영주. 한국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 가운데서도 그녀의 위치는 단연 특별하다. ⓒ LIG아트홀

누군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흔치 않다. 나의 온전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타자인 상대방이 완벽히 내 이야기를 이해해 줄때 우린 어떠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쾌감의 크기만큼이나 이러한 소통의 완성은 쉽게 이루기가 어렵다.

따라서 오류는 빈번히 나타나 심지어 단절을 택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만든 음악이 창조자에 손에서 벗어나, 청자에 귀로 이전될 때 소리는 완성된다. 그 소리는 이윽고 청자에 귓속에, 그리고 가슴속에서 음을 확장하며 감정을 요동친다. 너무나 벅차게, 혹은 너무나 냉정하게.

음반의 재발견⑧: 송영주 4집 <Love Never Fails>

 송영주의 4집 [Love Never Fails]
송영주의 4집 [Love Never Fails] ⓒ 스톰프뮤직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피아노는 그러한 완성을 가장 완벽하게 이루는 피아니스트 중에 한명이라 나는 감히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녀의 음악적 진성성이 존재해왔으며,  그녀가 2009년에 발매한 정규 4집인 <Love Never Fails>에 담겨진 연주는, 특히나 그녀의 그 간결하고도 정확한 호흡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귓전에 부드럽게 속삭이며 어깨에 손 올리는 스크린 속 수수한 외모의 여주인공을 닮아있다.

과거 그녀의 앨범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퀸시 데이비스(Quincy Davis)와의 단절 이후 새롭게 완성된 드럼의 아리 호닉(Ari Hoenig)과 베이스의 댄턴 볼러(Danton Boller)의 트리오 구성의 이 음반은, 그래서 청자의 타이밍만을 찌르며 각인되는 어휘만 일삼는 정치가의 연설과는 차이가 있는, 다양한 기술과 넓은 목소리로 상대방의 감정을 설득하는 유능한 성우의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청취도중 발견되는 음의 미세한 떨림이나 부드러운 뭉툭함도 무리 없이 우리의 가슴 안에서 자연스레 수용된다. 나는 이는 가히 불가항력적 수용이라 말하고 싶다.

또 하나 <Love Never Fails>에 담긴 그녀의 연주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역시 이들의 인터플레이에 관한 것이다. 기실 피아노, 드럼, 베이스로 이어지는 재즈 트리오 구성의 핵심은, 그 지향점이 모던과 맞닿아 있을때는 이 인터플레이가 음악적 완성에 핵심적인 요소로 더욱 극대화 되지 않았던가.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면 이 음반에서 그녀와 유능한 리듬섹션들이 함께 펼치는 화려한 인터플레이는 음을 누르고 소리를 밟는 그녀에게나, 라이너노트를 부여잡고 그들이 대화하는 소리에 숨죽이고 귀 기울이는 청자에게나 음악을 끝까지 듣게 하며 힘을 실어주는 강점으로 청취 내내 존재한다.

물론 이들 트리오가 같이 합을 맞추었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기에 발생한 것으로 사료되는 음악적 구성의 실험이 이번 <Love Never Fails>에서 완벽하게 재생되었는가 하는 점과 같은, 이른바 악기 편성의 변화로도ㅡ예컨대 그녀가 애초에 기획했다던 콰르텟이나 퀸텟의 구성ㅡ 이루어지기 힘든 부분에 관한 일종의 고민은, 그녀에게 이번 음반을 통해 즐거운 숙제로 남겨졌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기에 이 음반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아리 호닉의 드럼은 상당히 빛이 발한다. 과거 그녀와 함께했던 퀸시 데이비스의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빈곳을 꽉꽉 채워주며 송영주의 피아노와 융합되는 그의 드럼은, 과연 재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그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 음반기저에 흐르는 기분 좋은 편안함의 상당부분은 이 아리 호닉의 힘이다. 물론 덕택에 'Allegri'와 같은 트랙에서 감지되는 댄턴 볼러의 멀리서 울리는 베이스 솔로는 상대적으로 묻혀버리거나 청자에게 강력한 기억을 남기는 부분에서는 조금 실패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예의 묵묵하게 그들의 뒤를 따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ACT 레이블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과 함께했던 재즈 베이시스트 라스 다니엘손(Lars Danielsson)의 자리가, 이 송영주 트리오의 자리가 되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이 뒤따르는 것은 감상자로서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라스 다니엘손의 경우에는 송영주가 생각했던 다양한 음악적 구성에 있어서도 확실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왔던 실력 있는 연주자라는 전례를 생각하면, 조금 위험한 발언일지는 모르나 난 그쪽이 좀 더 합리적이고도 생산적인 구축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이들 트리오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같이 연주를 하고 고뇌를 거듭하여 그 모습을 완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현실이겠지만.

감지되는 그녀의 확장

 송영주의 음악적 능력은, 그렇게 그녀의 피아노 만큼이나 자유롭다.
송영주의 음악적 능력은, 그렇게 그녀의 피아노 만큼이나 자유롭다. ⓒ 스톰프뮤직

아울러 실제로도 이러한 점과 맞물려 송영주를 좋아하는 재즈 팬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화제에 오른다. 특히 클럽이나 공연을 통한 라이브 무대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아웃 플레이와 관련한 프리재즈적 감상은,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고도 말한다.

물론 이러한 확장만이 반드시 옳고 발전적 영향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과 핵심은 가타부타 덧붙일 것도 없이 그녀가 할 수 있고 낼 수 있는 그녀의 음악적 능력이다. 

특히 <Love Never Fails>에 실린 델로니오스 몽크(Thelonious Monk)의 'Bemsha Swing'에서부터 비제(Bizet)의 'C'est Toi'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결과물은, 그녀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청자에게 있어 몽크의 곡에서 그러한 호기심은 매우 강력하게 발현되는데, 사실 몽크의 곡들이야 말로 재즈 피아노라는 험준한 대해를 가르는 항로의 출발 지점임이자 분기점 임을 상기하면, 그녀의 존재와 피아노에 대해 끝없는 찬사라도 보내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환영 뒤에도 상당히 훌륭하고도 차분하게 그 지점을 유유히 항해해 나가는 것이다. 그 항해는 거친 파도 아래에서도 항로를 격하게 이탈하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지로 향해 간다. 

따라서 이 <Love Never Fails>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음악적 확장은, 그녀의 스윙이 내재적이듯 꽤 내재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청자도 특별한 반감 없이 자연스레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대중성은 라이브 무대와는 달리 자신의 음반을 통해 음악을 발매할 때 그녀가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든다. 그녀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듯, 사실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은 결코 이러한 점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는 음악의 진정성

 사랑이 그러하듯, 그녀의 음악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사랑이 그러하듯, 그녀의 음악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 스톰프뮤직
종국에는 결국 이러한 진정성이다. 타이틀인 'Love Never Fails'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발라드를 위시한 그녀의 서정적인 진행들은, 작곡가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의 그녀의 총괄적인 도달점은 결국 청자의 가슴 바로 그곳임을 수줍게 밝힌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녀의 피아노는 우리세대에게 공통의 합의를 말하는 영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와 꽤 닿아있다.

그러므로 송영주의 음악은 우리에게 그렇게나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 설득의 요소는 앞서 말했듯이 상당히 분절되어 발현되기에, 딱히 처음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대중성과 특유의 감수성은 송영주 음악 그 자체로 존재한다.

따라서 사랑이 그러하듯, 그녀의 음악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 할 수 없다. 그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인 것들이며 또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다.

이 이후에 그녀의 음악적 행보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사랑을 믿고 음악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건투를 비는 음악. 그러한 소리들이 바로 그녀의 4집 <Love Never Fails>에 소복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음반의 재발견#송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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