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초등학교 강당에서는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벌교성당 신자 400여명이 모여 53주년 본당의 날 행사를 가졌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런 것이다". 하지만 깊이 쳐다보면 좀 색다름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고 그곳의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사회단체나 종교단체가 자신이 속한 지자체를 떠나 타 지역에서 중요한 행사를 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쉽게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역 사회'란 '행정구역'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만약 행정구역만을 의미한다면 벌교 성당에는 보성군 신자들만 다녀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다른 순천시 낙안면 일원에서도 10% 이상의 신자들이 다닌다. 민선 이전에는 훨씬 더 많은 신자들이 벌교성당에 다니기도 했다.
우리가 지역사회라 말하는 것에는 인간이 먹고 자고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모든 공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순천시 낙안면 일원 신자들이 지자체가 다른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벌교성당을 다닌다는 것은 인위적 행정구역 나누기가 인간적 삶의 지역사회를 붕괴시킬 수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벌교성당과 유사한 형태의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향교다. 전국 234곳 향교 중에서 행정구역이 달라도 함께 다니는 곳이라고 하는데 보성군 벌교읍 일원 유림이 등록인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사가 있는 날이면 순천시 낙안면 일원 신자들이 지자체의 경계선을 넘어 보성군 벌교읍의 벌교성당으로 가 듯, 매월 석전대전이 있는 날이면 보성군 벌교읍 일원의 유림들이 지자체 경계선을 넘어 순천시 낙안면 낙안향교를 찾는다.
비합리적인 행정구역, 자연스런 인간 삶의 지역사회를 붕괴시킨 어처구니없는 현장. 사실 어찌 보면 벌교성당을 찾는 낙안 신자나 낙안향교에 오는 벌교 유림이나 시쳇말로 이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개인은 물론 사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단체가 행정의 영향력 아래 옭아매져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종 선거를 앞두고는 그 행태가 더욱 두드러져 투표권도 없는 타 지역 사람들이 직. 간접적으로 들려오는 선거 관련 얘기들에서 마음을 함께 하기는 힘들다. 모든 불합리와 불이익을 무릅쓰고 벌교성당이 순천시 낙안면에서 지난 15일, 본당의 날 행사를 했다는 것은 지역사회 붕괴 101년만의 가장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옛 낙안군, 인간의 삶을 붕괴시키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사회를 파괴시킨, 적어도 한반도에서 행정구역의 폐해가 가장 심한 곳이 이곳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이런 것에 염증을 느껴 무정부주의를 말하기도 하는데 자연스럽게 형성돼 왔던 지역사회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들과 함께 이유나 사정이 어떻든 간에 벌교성당이 본당의 날 행사를 지차체를 뛰어넘어 치러낸 것은 벌교성당이라는 종교와 낙안향교라는 전통만이 올바른 지역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지역민에게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