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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씽! 무일푼 런던>
 <고고씽! 무일푼 런던>
ⓒ 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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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를 둘러보면 소위 말하는 화려한 '스펙'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졸업과 함께 취업을 시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1년 정도의 해외 연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도 어려우면 워킹 홀리데이 등을 통해서 외국 물 먹었다는 이력 하나는 입사 지원서에 추가하는 추세다. 

<고고씽! 무일푼 런던>의 저자 이안나씨 또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은 대학 생활을 보냈다. "요즘은 이쁜 것들이 머리도 좋아!"라는 험한 말을 남발하는 인사 담당자들 때문에 기가 죽었던 그녀.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남과 다른 열정과 패기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머리도 좋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엄청난 비용의 외국 연수 대신 해외 봉사 활동을 선택했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로부터 해외 봉사활동을 하면 숙식 등의 비용을 해결하면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방면으로 정보를 구하기 시작한다.

손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해외 봉사에 대한 정보는 미비하다. 우리나라의 사이트를 뒤져보니 봉사활동을 연결시켜주는 비용으로 몇 백만 원을 지불해야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 비용이 아까워서 직접 단체에 연락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저자는 우선 주한영국문화원과 같은 한국에 있는 단체에 메일을 보내 자신이 해외 봉사를 원하고 있음을 알린다. 답변이 없는 곳도 있지만 다행히도 몇몇 곳으로부터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단체를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직접 그 사이트 등에 들어가 정보를 구해 매니저에게 연결을 취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봉사의 첫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자가 가게 된 곳은 영국. 거기서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얻는다. 6개월 간 함께 생활하는 장애인은 돈이라는 이름의 40대 독신 여성이다. 돈은 자기 사업체와 집을 갖고 있는 중산층이지만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몸이 부서져 내리는 희귀병을 갖고 있다.

다리에 무언가를 끼워야 걸을 수 있고 스스로 목욕하고 나오는 것조차 불편한 그녀를 만나면서 저자는 인생이 180도 바뀐다. 돈이 적어 놓은 50여 가지 항목대로 움직이며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하루는 아주 바쁘게 돌아간다. 아침에 돈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는 것 모두가 저자의 몫이다.

그깟 봉사를 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나라에 간다는 게 말이 되냐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해외 봉사란 생각이 든다. 스스로 일하면서 남을 돕고 더불어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두루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자기 계발'이란 명목 아래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시간을 쪼개며 생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깨닫게 되었다. 대학생이 하는 자기계발은 진정한 자기 계발이라기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된 지 오래임을. 우리는 이력서에 '똑같은 한줄'을 넣기 위해 아직도 대한민국 사교육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흔한 스펙보다 해외 봉사 경험은 언어 습득 외에 풍부한 체험을 제공해 준다. 돈과 함께 홍차를 마시며 사랑과 인생, 나라 간의 차이점 등에 대해 수다를 떠는 동안 저자는 부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짧으면서도 긴 런던 생활은 세상에 대해 폭 넓은 시각 또한 갖게 해 주었다.

모든 걸 대충 처리하는 습관이 있었던 그녀가 약을 잘못 넣는 바람에 돈이 쓰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조심성 있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 또한 봉사 체험의 좋은 결과다. 일반인은 대수롭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장애인에게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저자처럼 직접 마음으로 느끼게 되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만나 한글과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기도 하고 한국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런던의 박물관, 미술관, 뮤지컬 문화를 접하며 희열을 느낀다. 겨우 스물 세 살의 젊은이가 스스로 이런 기회를 찾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대학가는 취업 준비에의 열기가 후끈하다. 화려한 스펙을 만든답시고 '대한민국 사교육'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학생들과 차별화되는 경험을 통해 시각도 넓히고 멋진 인생을 만들어 볼 것인가?

선택은 학생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 만약 내가 인사 담당자라면 부모의 돈에 의지해서 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지원자보다 저자처럼 독특한 봉사 체험이 있는 사람을 더 뽑고 싶을 것 같다. 보다 폭 넓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탄탄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고고씽! 무일푼 런던 - 영어도 배우고 봉사도 하고 친구도 사귀는 방법

이안나 지음, 강효원 사진, 북카라반(2009)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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