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지명과 인명은 러시아 현지 발음을 그대로 살린 이 책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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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꿈꾸느니 아예 더 추운 곳으로 떠나버리기로 작심한다. 이까짓 추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까짓 바람은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지 못한다고 비웃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기중독자는 여행기를 타고 겨울의 심장, 모스끄바로 떠난다.
막상 떠나려하니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나라인 것 같다. 제국주의와 사회주의를 거쳤고, 민족과 문화는 유럽이되 서유럽과는 또 다른 유럽이며, 광대한 국토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졌다. 거기다가 글씨까지 알파벳을 제멋대로 던져놓은 모양이라 표지판 하나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거기다가 지인들의 경험담을 종합해 볼 때 모스끄바는 여행자들에게 호락호락한 도시도 아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일 뿐만 아니라, 동양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기꾼도 많다고 한다. 정말이지 우리가 쉽게 공유할 만한 동질적인 요소를 찾아내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서운 푸틴의 얼굴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병훈의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여행기중독자를 그 춥고 살벌한 곳으로 빨아들였다. 이 책은 러시아 예술기행서이다. 러시아의 예술세계는 푸틴보다 강력하고, 천연가스보다 풍부했다.
모스끄바의 겨울과 여름풍경을 직접 촬영한 사진, 수많은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요약과 해설, 모두 직접 번역한 문학작품의 구절들, 현지의 발음을 그대로 살린 지명과 인명 표기, 모두 꼼꼼하기 그지없다. 한 권의 책에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따라다니기 쉽고도 충실하게 담아낸 저자의 내공이 놀라울 책이다.
겨울, 모스끄바의 동상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겨울이야기'에서는 겨울을 배경으로 모스끄바 시내명소를 찾아가고, '2부 여름이야기'에서는 모스끄바 교외지역의 여름풍경을 담고 있다. (저자는 '모스끄바'와 '뻬쩨르부르그'까지의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으려 했었으나, 내용이 넘쳐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2권인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도 이미 출간되었다.)
저자는 예술가들의 생가, 박물관, 공연장, 묘소, 미술관 등 그 자취가 서려 있는 곳을 하나하나 찾아가 그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상히 알려준다. 그중에서도 여행기중독자에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명소나 광장에 어김없이 다채로운 포즈로 서 있는 예술가들의 동상이었다.
세계에서 모스끄바 만큼 예술가들의 동상이 많은 곳은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순수예술 공연들이 일상적으로 매진되고, 작년에 반체제 소설가 '솔제니친'이 사망하자 곧바로 '솔제니친 거리'를 지정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는 그들의 방식이라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하여 여기서는 '끄레믈리' 근처의 동상들만이라도 잠시 만나볼까 한다. 관심과 지식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아무 느낌 없는 차가운 청동상에 불과할 것이므로.
'끄레믈리(성채)'는 모스끄바의 지리와 문화의 중심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성당들과 '붉은 광장', '레닌의 묘'로 유명하다. 그런데 끄레믈리 옆에는 '상반되는 두 사상가의 동상을 절묘하게 오버랩 시킨'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바로 끄레믈리 건너편에 위치한 '국립 레닌 도서관'. 어마어마하게 넓은 도서관 안에는 커다란 레닌의 동상이 책을 보는 사람들을 감시하듯 내려다보고 있고, 도서관 앞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의자에 앉아 우울한 표정으로 광장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도스또예프스끼 덕분에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부정하는 '흑백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도스또예프스끼는 우울한 표정으로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라스꼴리니꼬프의 마지막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도서관에서 나와 끄레믈리의 북쪽으로 걷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백화점인 '굼 백화점'과 번화하기 이를 데 없는 '뜨베르스까야 거리'를 빠져나가면 '자유로운 영혼이 숨 쉬는 광장'이 나온다. 바로 '뿌쉬낀 광장'. 저자가 유학생활 중 우울해질 때마다 찾았다는 이 광장에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으로는 모자를 든 채 뒷짐을 진' 뿌쉬낀 동상이 있다.
뿌쉬낀은 당시 사교계 최고의 미인이었던 아내 '나딸리아 곤차로바'의 정부와 결투를 벌이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사색적이기 그지없는 동상의 모습과 비극적인 개인사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쩌면 그 간극이야말로 정열적인 낭만주의자의 운명은 아닐 런지 생각해 본다.
쁘쉬낀 광장 맞은편의 작은 광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엔 기타를 매고 양팔을 벌린 채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그의 이름은 '브이쏘쯔끼'.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음유시인이다. 그의 이름은 몰랐지만, 미국영화 <백야(1985)>에서 흘러나오던 굵직한 음성의 그 노래를 부른 그 가수라고 한다. 그의 동상 앞에서 60년대와 70년대 러시아 지식인을 열광시켰던 노래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말했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됐다고
대지 위에 더 이상 씨를 뿌리지 말라고
누가 말했나, 대지는 죽어버렸다고?
아니다, 대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
이 동상들은 러시아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또 다른 예술가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 되고 있을 것이고, 그들은 다시 러시아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똘스또이와 고골과 뚜르게네프, 체호프와 바흐찐과 마야꼬프스끼… 이제 여행기중독자에게 모스끄바는 더 이상 푸틴의 도시가 아니다. 예술가의 도시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저자가 '노보데비치 공동묘지'를 나서며 내뱉은 이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노보데비치 공동묘지를 나오자 잠잠하던 눈보라가 다시 거친 숨을 토해냈다. 벌써 어둠이 내리는지 사방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고골도 죽었다. 체호프도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라는 형식은 영원히 살아 있는 정신의 외투일지도 모른다. "
국립 뜨레찌야꼬프 미술관
저자는 수많은 문호들의 동상과 묘소와 생가를 돌아본 후 우리를 '국립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으로 데려간다.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에서 러시아 미술의 역사를 소개하는 대목은 이 예술기행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18세기 표또르 대제 시절의 초상화들, '푸쉬낀의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들, 특유의 민족정서를 담아 낸 성화, 풍경화, 역사화를 거쳐 만나게 되는 리얼리즘의 대가 '일리아 레삔'의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풍경화가인 '사브라소프'와 '레삐딴'의 그림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현대로 넘어와도 마찬가지. 19세기 상징주의의 강렬한 그림들과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표작들이 반짝거리고, 그 저력은 추상주의 시대에 이르러 만개한다. '샤갈'과 '깐딘스끼'와 '말레비치'와 '따뜰린'이 한방에 모여 있는 것이다.
뜨레찌야꼬프 미술관 관람기는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도 한 권의 훌륭한 '러시아 미술사'가 될 정도로 충실하다. 엄선된 작가들의 대표작이 양질의 도판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저자의 해설이 잘 설계된 조명처럼 그림을 비춘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여행기중독자가 러시아에 단 하루만 머물러야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으로 향할 것이다.
누가 모스끄바의 겨울이 길다고 했던가? 이 책과 함께라면 그 겨울이 짧기만 할 것 같다.
여름, 영혼이 숨 쉬는 곳
2부 여름이야기에서는 주로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을 썼던 모스끄바 교외의 저택들을 찾아간다. 시내에서 반나절 가량의 거리에 있는 곳들이다. 작가들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저자의 여정이 유쾌하고, 러시아 대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자연, 산책로, 저택이 소설과 연극의 무대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똘스또이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동행해 본다. 똘스또이가 살았던 '야스나야 뽈랴나'를 찾아가는 기차 안, 저자는 동승한 여행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은 왜 멀리 이국땅까지 와서 편안히 먹고 즐기지 않고 똘스또이를 찾아가는 고된 여정을 택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니 똘스또이가 내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말 솔깃하다. 책장에 대문호의 두꺼운 소설들을 순결하게 보존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벌판을 보며 똘스또이의 <인간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를 떠올리고, 그가 살았던 저택의 마당에서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그리고 그의 무덤에 앞에 이르러서는 인간 똘스또이의 심오한 사상이 가식이 아니었음을 목격하게 만든다.
"무덤은 조용한 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그 흔한 십자가도, 비석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레프 니꼴라이비치 똘스또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다. 똘스또이 자신이 그토록 원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심지어 무덤조차 만들지 말라고…."
똘스또이의 저택으로 찾아가는 길을 통해 똘스또이를 읽지 않은 나 같은 사람조차도 똘스또이를 특별히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한 대목을 더해 방점을 찍는다. 읽어야할 책이 또 하나 늘어난다.
20세기 초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주의 시인 '알렉산드로 블록'이 가장 밝은 시들을 썼던 곳인 '샤흐마또보', '체호프' 문학의 산실이 된 '멜리호보', '보리스 빠르쩨르나끄'가 <닥터 지바고>를 쓴 '뻬레젤끼노'… 모두 특별한 영혼이 숨 쉬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백치>의 주인공 '므이쉬낀'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나스따시야'를 두고 한 말이다. 소설에서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은 므이쉬낀을 구원하기는커녕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한다. 외모와 영혼의 불일치에 대한 복잡한 고민은 <백치>를 읽으면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말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
'아름다움은 그 격변에도 불구하고 모스끄바를 구원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무언가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우리를 구원할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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