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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오리지널 판화의 위치는 어디쯤 될까. 어떤 장르든 다 그런 측면이 있겠지마는 평면회화에서 판화라는 장르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그야말로 수작업의 노동력을 근본으로 해야만 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붓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 외에도 판에 그림을 새기고, 작품을 찍기 위한 약품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찍어내는 기계도 손봐야하는 등 부수적으로 기울이는 정성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판화가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작품에 다양한 색채를 넣기 위해서는 한 가지 색을 찍고 마르기를 기다리고, 다시 한 가지 색을 찍고 마르기를 그 색의 숫자만큼 반복해야 한다. 물감이 마르는 데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걸린다고 볼 때, 5가지 정도의 색이 들어간 판화작품을 완성하려면 찍는 데만도 3일 가까이 걸린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라고 해서 제대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다는 판화 특성으로 인해 작품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도 작가는 감수해야 한다. 현 시대는 그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어야 판화라는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판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원래 한 점밖에 없는 유명한 예술작품이나 기념비를 여러 개로 복제해 퍼트리는 일이었다. 사진도 없었고, 오늘날처럼 여행도 쉽지 않던 시대 사람들이 실물을 보지 않고도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양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판화의 업적이었다. 그러다 사진의 발명으로 복제수단으로서 판화는 종언을 고하고 만다.

이후 복제라는 역할의 한계를 넘어 판화를 독창적인 예술양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이 국면을 타계한 작가들이 등장한다. 휘슬러, 고갱, 로트레크, 보나르, 뭉크 등 세기말에 활약한 화가들의 목판화나 석판화는 삽화적이거나 설명적이던 종래 판화의 굴레를 대담하게 타파한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칸딘스키, 놀데, 키르히너 등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은 특히 목판화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추구했고 피카소, 블랙, 비용 등은 입체파적 표현을 판화에도 그대로 도입했다. 또한 판화는 포스터나 서적 삽화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현 시대에서 판화작업은 여전히 소수에 의해 명맥을 유지할 뿐,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작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작업도 힘들고, 미래 역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전주 교동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제17회 전북판화가협회전 '디지털 시대의 오리지널 판화'전(11.24-29)은 작금의 시대에 판화라는 순수미술 장르의 미래지향점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값진 전시로 여겨진다.

참여 작가는 김양희, 김영란, 박현민, 양현자, 지용출, 최만식, 최희경 등 7명이다. 연령대의 폭이 20대 후반에서 50대까지 넓고, 판화의 종류도 다양하다. 김영란과 지용출은 목판화를, 양현자는 수성목판화를, 김양희는 석판화를, 박현민은 동판화를, 최만식과 최희경은 실크스크린 작품을 내놓았다.

목판화는 나뭇결을 살려 자연스런 느낌을 낼 수 있고, 수성목판화는 물감을 물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든다. 석판화는 회화적 느낌이 강하고, 동판화는 지폐를 찍어낼 정도로 세밀한 작업이 가능하며, 실크스크린은 판화다운 맛이 난다. 판화라는 장르로 한정된 전시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기법을 통해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그로 인해 전북지역에 기반한 판화작가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최만식 작가가 실크스크린으로 완성한 자신의 판화작품 앞에서 판화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만식 작가가 실크스크린으로 완성한 자신의 판화작품 앞에서 판화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상기

최만식 작가는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기계화되는 디지털시대에서 수작업의 오리지널 판화는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작업일 수 있다"며 "판화는 여전히 유효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교동아트센터에서 29일까지 전시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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