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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은 문학소년 '은'을 내세워 새로운 우익의 모습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은 문학소년 '은'을 내세워 새로운 우익의 모습을 모색하고자 한다.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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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살던 '금'은 오랫동안 풀뿌리 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금'은 서울로 상경한다.

원래 법대에 가려고 했지만 성적이 모자르자 대신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광주의 호남아 금은 권력 욕심이 난다. 무언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치기와 배포가 있다.

한편 부산의 문학소년 '은'은 사업으로 패가망신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며 금과 같은 학교의 교육학과에 입학한다. 은이 가진 문학적 감수성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뜻을 따라 문예창작학과를 포기하고 말았다.

줏대 없이 사는 은은 스스로에게 다분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금과 은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관계가 된 둘의 감정은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게 된다. 허나 둘의 인생이 교차로를 지나듯 뒤바뀌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섬약한 문학소년 우익청년으로 거듭나기

장정일은 소설의 제목을 류시화의 시 <구월의 이틀>에서 따 왔다. 구월의 30일 중 이틀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찬란한 순간,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금과 은에게는 청춘의 순간일 터이다. 청춘의 이틀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몰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이틀'을 겪듯이, 금과 은도 이제 그 순간에 접어든 것이다. 장정일은 작가 후기에 이 소설을 '우익청년 탄생기'로 못박아두고 있다.

부당하고 부덕한 우파가 득세했고, 득세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익의 탄생'이란 결코 즐거운 재담이 될 수 없었다. 허나 장정일은 당당한 우익청년을 글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배짱을 부린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금이 아닌 은이다. 섬약한 문학소년이었던 은이 어떻게 강력한 우익청년으로 거듭나게 되느냐는 이야기다.

은을 통해 장정일이 세우는 우익의 기초는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근기다. 때문에 못난 이들은 잘난 이들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어야 한다. 못 배우고 못 가진 것들이 어딜 감히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난리를 치느냐, 명문대 아닌 놈들에게는 천민 낙인을 찍어주어야 한다. 장정일은 바로 이런 순정한 엘리트주의, 엘리트의식이야말로 우익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신이라고 본다. 정말이지 난폭하기 짝이 없는 정신분석이지만 그래도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다.

장정일의 우익 정신분석이란 어떤 표본이 아니라 사회에 드러나는 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읽으면 되겠다. 재개발 사업이 꿀꺽 집어삼킨 용산의 비열한 거리를 보라. 용산구의 이름으로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써붙였던 경고판을 두고 어떤 이들은 '예고 살인'이라고 했다. 자본은 강력했고 철거민들은 무력했다. 우익청년 은에게는 당연한 약육강식 논리다. 약자에게 생존할 권리는 없다. 우익은 늘 강자의 편이기에 강력하고 또한 아름답다. 이는 우익의 본능적인 생리다.

지난 1월 20일 새벽의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실려 고공투입된 가운데, 농성 가건물이 불에 타며 무너지자 한 철거민들이 '저기 사람들이 있다'며 소리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새벽의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실려 고공투입된 가운데, 농성 가건물이 불에 타며 무너지자 한 철거민들이 '저기 사람들이 있다'며 소리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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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한국 우익의 '정신분석 보고서'

그러니 소설 <구월의 이틀>은 차라리 우익의 '정신분석 보고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구우익(올드라이트)에게는 친일 행적이라는 원죄가 있고, 신우익(뉴라이트)에게는 좌파에 대한 원한이 있다. 장정일은 은이라는 청년을 통하여 원죄와 원한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우익 청년상을 모색하며 '순수한 우익', 즉 '퓨어 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아직 대한민국에 퓨어 라이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또다시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의 우익이란 원죄나 원한, 혹은 둘 다에 사로잡혀 있는 집단이란 비판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은이라는 엘리트 청년은 좌익의 대항마로 머물지 않고 우익을 질타하는 죽비가 된다. 은이 가진 이념의 뿌리는 '힘의 아름다움'이라는 자기규정에 있기 때문에 몹시 튼튼하다. 장정일은 성적 상상력을 동력으로 삼았다. 은의 이념적 근기는 한편으로 성적 욕망을 통해 풀이되고 있다. 고교시절 문학이란 무기로 친구들의 남성성(男性性)을 멸시했으나 기실 그들의 근육질 몸뚱어리를 흠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내의 벌거벗은 몸에 아랫도리가 불끈하는, 힘에 대한 사랑이란 우익이 대중에게 가장 숨겨야만 하는 콤플렉스다. 장정일은 우익이란 자신의 이념적 본성을 천하에 '커밍아웃'할 수 없는 슬픈 존재라고 풀이한다.

좌익을 연전연패하게 하는 우익의 필승전략이 있다. 장정일의 우익 정신분석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이다. 은은 우익진영의 전설적 이론가 '거북선생'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다. 거북선생은 인류가 쌓은 지식의 총량에서 우익의 몫은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좌익의 몫은 95퍼센트니 논리로 싸운다면 우익은 좌익에게 반드시 패한다. 그러니 우익은 좌익에게 무턱대고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야 한다. 논리로 따지는 상대를 만나면 '북한에나 가라' 혹은 '김정일의 하수인'이라는 색깔공세를 펴는 것이다. 이때부터 싸움은 논리의 영역이 아닌 힘의 영역이 된다.

이는 우익이 구사하는 최고의, 최강의 전술이다. 오싹하게 현실적이다. 우익은 강한 언론, 강한 기업, 강한 정부를 가지고 있다. 상대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고서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힘의 논리'가 우익을 꼭 승리하게 한다. 대오각성한 은은 고교시절 존경하던 국사선생을 단지 전교조라는 이유로 '빨갱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은이 어엿한 우익청년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순간이다. 장정일은 점점 당당한 우익으로 성장하는 은을 흐뭇하게 지켜볼 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이념의 격랑을 헤매며 결론을 담기에 책 한 권이란 부족할 분량일 테다. 허나 이거 하나만은 장담한다. 장정일의 '우익청년 탄생기'는 좌익보다 우익이 읽으면 화를 낼 이야기다.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9)


태그:#구월의 이틀, #장정일,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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