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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사건, 화성연쇄 살인 사건 등도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책임은 수사기관의 몫입니다. 사진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 미궁에 빠진 <살인의 추억> 개구리소년 사건, 화성연쇄 살인 사건 등도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책임은 수사기관의 몫입니다. 사진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 CJ엔테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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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평화롭기만 하던 전남 고흥 어느 마을에 모두를 경악하게 할만한 일이 벌어집니다. 60대 여성 B씨가 집 근처 대나무밭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B씨의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뾰족한 물체에 찔리는 등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경부압박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누군가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대나무 밭에 옮겨놓았다는 말이 됩니다. 

수사기관은 주변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 범인을 잡기 위해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종결되었고, 안타깝게도 B씨의 억울한 죽음은 그대로 묻히고 맙니다.'

이것이 언론에서 이른바 '고흥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이름 붙인 살인사건입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처럼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완성될 운명에 처한 이 사건이 다시 수면에 떠오른 것은 올해입니다.

60대 여인 살인 사건, 8년만에 법정에

검찰은 8년이 지난 사건 기록을 다시 끄집어 냅니다. 그리고 재수사를 시작합니다. 검찰은 사건 발생 당시 용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A씨를 주목했습니다. 당시 피해자의 집에서 A씨의 우산이 발견되었고, 부엌에선 A씨가 피웠던 담배꽁초도 나왔습니다. 게다가 그는 30여년 전 강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범행 수법도 여성을 살해한 후 신체의 특정부위를 훼손하는 등 이 사건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당연히 검찰의 관심은 온통 A씨에게 쏠렸습니다. 처음에 범행을 부인하던 A씨는 검찰의 끈질긴 조사 끝에 다음과 같이 털어놓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식당에서 술을 마셨어요. 당연히 B씨도 함께 있었지요. 술자리가 끝난 후 일행 한 명이 차를 몰아 B씨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었고, 나도 집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술 기운 때문인지 여자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동료의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B씨 집을 찾아갔지 뭡니까. 내가 잠자리를 요구했는데 B씨가 몸이 좋지 않다고 거절하자,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 ….  그뒤 죄책감에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7월 A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하게 됩니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법정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까요.

자백은 항상 진실을 반영할까

잠깐 형사 사건의 자백이 뭔지 알고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다. 자백이란 피고인(피의자)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옛날엔 자백을 '증거의 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자백은 항상 진실을 반영하고 절대적인 증거가 되는 걸까요.

조선시대의 원님재판은 우리에게 낯익은 광경중의 하나입니다. 고을에 범죄가 발생하면 사또가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잡아놓고 주리를 틀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면서 추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정도 되면 십중팔구는 불게 마련입니다. 뚜렷한 증거가 없더라도 일단 자백을 해버리면 사건은 쉽게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범인이 아닌데도 당장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던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런 원님 재판은 아주 먼 옛날에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불과 몇십 년 전 군사정권 때도 비슷한 장면은 흔했습니다.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이 법원의 영장 없이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간첩이나 이적행위를 했다는 허위 자백을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은 원하는 진술을 받아낼 때까지 고문하고, 폭행,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는 정권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 

자백도 어느 정도의 제한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요사이 법원에서도 재심을 통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아람회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공안사건에서 폭력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고 있습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꼭 고문·협박이 아니더라도 자백이 꼭 진실을 담보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설사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과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이 자백한대로만 인정해야 한다면 뭔가 불합리합니다. 

형사소송법(제 310조)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른바 자백의 보강법칙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자백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함께 있어야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범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백은 강요가 아닌 자기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임의성), 객관적으로 믿을 만해야 합니다(신빙성). 여기에 자백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보강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유죄의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백했더라도 보강 증거 없으면 처벌 못해

다시 고흥살인 사건으로 돌아갑니다. 재판부(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 재판장 홍준호 부장판사)는 사건 당시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A씨가 8년이 지나서야 자백하게 된 이유가 석연찮다고 보았습니다. A씨가 자백을 했다고는 하나 진술내용이 조금씩 계속 바뀌고 사건 정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미심쩍었습니다. 

범행동기도 마찬가지입니다. 7월 검찰의 집중조사를 받는 받으면서 A씨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성적 흥분을 느꼈을 뿐 성관계를 거절당해서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B씨가 성관계를 거부하는 순간 격분하여 살해했다는 식으로 진술을 바꾸게 됩니다. .

재판부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는 A씨가 강력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 범행 순간과 범행 동기에 관한 진술을 왜 자꾸 바꾸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범행의 방법과 도구에 관한 A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검찰에서 범행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던 그는 정작 법정에서는 "기억이 없고 추측하여 진술했던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고 범행도구도 조금씩 바뀌거나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때문에 "검사가 추궁하는 방향에 맞추어 진술 내용을 바꾸어 왔다고 볼 수 있어서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A씨는 범행 도구와 B씨의 옷을 사체 근처에 버렸다고 밝혔으나 정작 그곳에는 범행도구도 없었고 옷도 1백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A씨를 집앞까지 차에 태워주웠다던 마을 사람의 얘기와는 달리, A씨는 "중간지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B씨 집으로 갔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내용을 토대로 자백의 객관적 합리성의 정도, 자백진술이 수사진행에 따라 변경되는 모습과 정도, 자백진술과 정황증거 사이의 불일치 등을 고려해보면 A씨의 자백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A씨의 우산과 피해자 B씨의 사진, 현장검증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 중에는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주 "피고인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으며, 보강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물론 판결문을 보면 자백을 한 A씨가 범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유죄 심증을 얻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설사 유죄라는 심증을 얻었더라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무죄 판결에 단골로 소개되는 판례가 있습니다.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 젊은이가 칼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당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2명이 범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고 법은 끝내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사진은 영화<이태원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살인범은 누구?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 젊은이가 칼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당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2명이 범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고 법은 끝내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사진은 영화<이태원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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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2008도 6219 판결 등)

이 사건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어떨 때 쓰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A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판결에 불복, 항소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이 2심, 3심을 거치면서 진실에 더 가까워지길 바랄 뿐입니다.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탓인지 이태원 살인사건이 다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1997년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 젊은이가 칼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당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현장에 있었던 미국 교포 2명이 범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중의 한명이거나 두명 모두가 범인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고 법은 끝내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개구리소년 사건, 화성연쇄 살인 사건 등도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선지 과학수사만이 해결책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책임은 수사기관의 몫입니다.  수사과정에서 인권과 적법한 절차를 존중하면서 유죄의 증거를 확보하는 일, 어렵지만 수사기관이 해야 할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죄, 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
무죄판결은 어떤 경우에 나오는 것일까.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일단 법조항을 살펴보자. 

형사소송법 제325조 (무죄의 판결)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먼저 사건이 범죄가 되지 않는 때이다. 이것은 처벌할 법조항이 없거나 위법성이 없을 때 등이 해당된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이거나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의 범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검사가 기소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지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는 사건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무죄사건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이다. 검사가 재판에서 유죄 입증에 실패하였거나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여 기소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재판에서 무죄 판결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작년 한 해 형사재판을 받은 사람(1심 기준. 약식명령, 즉심 제외)은 23만여 명이었다. 그중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4,025명에 불과하다. 무죄율은 1.7%였다. 이 수치는 지난 10년 중에 그나마 가장 높은 무죄율(1.7%)을 기록한 것이다.

99년엔 18만 여명 중에 1천 3백여명(무죄율 0.74%)만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2003년부터 무죄율은 1%를 겨우 넘어섰다. 10년을 통틀어 보면 평균 1백명당 1명 꼴로 무죄가 나온 셈이다.

형사소송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나온다.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고인(또는 피의자)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99%가 유죄 판결을 받는 현실에서 무죄추정이란 법률용어로 머무는 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연재기사에서는 2차례 정도에 걸쳐 올해의 판결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올해 주목할 만한 판결, 꼭 소개해야 할 판결, 최고의 판결 최악의 판결 등에 관해 의견을 주시면 글쓰기에 반영하겠습니다.



태그:#자백, #살인의 추억, #무죄,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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