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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이면 <개그콘서트>의 누군가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친다. "첫사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 끼리만 사귀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1등만 기억하는 이 세상을 향해 술주정을 한다.

그의 술주정을 듣다 보면 책들의 세상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은, 그리고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만 기억한다. 베스트셀러는 단어 그대로 폭넓은 사랑을 받은 도서들이고 그것을 기억한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 중에서, 특히 좋은 내용임에도 어떤 '분류'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는 책들이 있다면, 그것 또한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

2009년을 지나면서 만났던 책들 중에서 그런 소설들이 몇 권 있다. 사람들은 기억 못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책 제목부터 처음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베스트셀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기에 그럴 텐데, 잠시 그 책들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한다.

중국소설의 '재발견'... 중국 민중의 삶이 투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 문학동네
첫 번째로 떠오르는 소설은 모옌의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이후 중국소설들은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했다. 일본소설이 세련됐고 재밌다는 평을 듣는데 반해 중국소설은 아직 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일 게다.

그래서일까. 2009년 말에 소개된, 중국의 대표작가로 떠오르는 모옌의 소설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중국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이 소설집은 중국 소설 특유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중국소설을 '재발견'하게 만들 정도라고 할까?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3개의 중편소설이 담겨 있는데 관심을 갖고 볼 소설은 표제작과 '소'이다. 표제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의 주인공 딩 사부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모범 직원으로 뽑혔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한다. 딩 사부는 이제 뭘 해야 하나? 젊은 사람들이야 가판대에서 장사라도 하지만 딩 사부는 그럴 처지도 못된다.

답답한 마음에 산골을 떠돌던 딩 사부는 폐차를 보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연인들이 밀회를 즐길 수 있는 쉼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폐차를 개조해 '연인들의 아담한 휴게소'를 만드는데, 인기가 심상치 않다. 딩 사부는 단번에 떼돈을 벌게 됐는데,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소설은 딩 사부의 행적을 통해 도덕이라는 것과 돈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국 민중의 삶을 우스꽝스럽게, 그러나 깊은 통찰력으로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두 번째 소설 '소'는 마을의 주요한 재산인 '소'를 거세하다가 생긴 일을 다루고 있다. 거세를 맡았던 관리는 소에 문제가 생겼다며 소를 주저앉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악동 샤오 뤄한과 소를 관리하는 늙은 두씨 영감이 밤새 소를 서 있게 하려고 별의별 일을 다 하는데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꽤 쏠쏠하다.

그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벌이는 소동들이 중국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엿보게 해주기에 재밌고 중국소설답게 '왁자지껄'한 대화들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의 매력이다. 중국 민중의 삶이 투박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소설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중산층의 이중성과 잔혹성 폭로한 '20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

ⓒ 민음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도 안타까움을 주는 책이다. 하이스미스는 영미권에서는 '20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라고 불리며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2009년에 하이스미스의 작품들이 다시 소개됐는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소재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이 몇 십 년 전에 나온 것이기에 낡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중산층의 이중성과 잔혹성을 폭로한다. 폭로가 목적은 아니다. 폭로로 말미암아 일상에 숨겨져 있는 섬뜩한 것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노인 입양'이다. 착한 마음으로 노인 부부를 입양한 젊은 부부는 언젠가부터 그들을 거추장스러워한다. 노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어떤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들의 관계는 파행을 향해 치닫는다. 그럼에도 젊은 부부는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교양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젊은 부부는 귀갓길에 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깜짝 놀라 집에 들어가 중요한 물건을 챙긴다. 동시에 집이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또한 노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어찌할까? 모른척한다. 모른척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그 모습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소설 속의 그들이 보여준 이중성이 이 사회의 많은 것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소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애와 만행... 사회적인 문제를 그려내는 녹록지않은 솜씨

ⓒ 에이지21
<리틀 비> 역시 안타까움을 주는 소설이다. 나이지리아 난민 소녀 리틀 비와 영국에서 잡지 기자로 일하는 새라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은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담았기 때문인지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소재가 너무 어렵게 여겨지는 것 같은데, 책을 펼쳐보면 웅장한 이야기의 힘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 느낌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리틀 비, 그녀는 영국에 오자마자 난민 보호소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다. 관리측의 실수로 운 좋게 석방하게 된 그녀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새라 가족을 찾아간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그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새라의 남편 앤드류가 자살한다. 어떤 기억과 씻을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

시간은 새라 부부가 나이지리아로 휴가 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이 해변가를 거닐 때 리틀 비와 언니는 석유 회사가 고용한 남자들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걸 보고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녀들의 도피는 급박했고 그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라 부부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새라의 남편 앤드류는 자신의 몸이 더 귀했기에 그녀들을 외면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비참하게 죽어간다. 앤드류의 죄책감은 그것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남겨진 리틀 비와 새라의 관계는 어찌되는 것일까. 서로를 미워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들은 '인간애'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폭력과 난민에 대한 영국의 만행을 상대로 싸우기로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데,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감동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그려내는 솜씨 또한 녹록지 않은데 소재 등의 이유로 잊혀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이 책들은 태생부터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들은 어떤 이유로 용기를 내서 세상에 나왔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것이 용기를 내게 한 것일까? 평범치 않은 그 용기, 그것을 만든 이유에 귀를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베스트셀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아, 잠시나마 깨끗해져보자. 생각지도 못했던,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 모옌 / 임홍빈 / 문학동네 / 2009-12-22 / 1만1000원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민음사 / 2009-02-13 / 1만2000원
<리틀 비> / 크리스 클리브 / 오수원 / 에이지21 / 2009-10-10 / 1만2000원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동네(2009)


#모옌#퍼트리샤 하이스미스#크리스 클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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