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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우리 종원이, 종민이 좀 잘 지켜줘! 당신처럼 살지 않게 해줘!"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9일 밤 9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남편의 시신을 하관하면서 내뱉은 절규다.

 

"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듣고 처참하게 살다 가, 이 바보야! 우리 애들밖에 없다고 하더니 어떻게 날 놓고 가!"

 

나란히 땅에 묻히는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 역시 이렇게 부르짖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렇게 욕심 없이 살더니…."

 

바로 옆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묘자리에 앉아 넋을 잃고 한탄을 했다. 죽기 전까지 뻥튀기 트럭장사를 하던 남편은 제대로 된 양복이 한 벌도 없었다. 양복을 입은 모습의 영정은 합성사진이다.

 

그동안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지금 투쟁을 멈추면 내 자식이 '도심 테러리스트', '살인범'의 아들이 된다, 그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용산참사가 일단락되는 지금도, 열사의 아내는 남편의 망루투쟁을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식들이 아버지처럼 살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열사의 아내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 밖에는 '정부가 사과했으니 철거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이후 유가족들에게는 '인질범'이라는 멍에가 하나 더 붙었다. 유가족과 용산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 범대위)가 시신을 볼모로 보상금을 타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요청으로 용산 범대위 측에서도 구체적 협상 내용은 밝히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협상 타결 직후부터 언론에서는 35억원이니 40억원이니 하는 구체적인 보상금 액수가 보도됐다. 가장 강경한 기조를 보인 것은 <동아일보>다.

 

<동아>는 지난해 12월 31일자 사설 ''떼법'이 법과 원칙을 누른 용산참사 타결'을 통해 대책위와 철거민단체들이 "시신을 인질로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및 보상을 요구했다"면서 "보상금이 더 늘어났을지는 모르지만 망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4일 '오늘과 내일' 칼럼 ''용산 참사' 다시 보기'에서는 "야당 정치인들과 반MB(이명박) 및 좌파 세력이 1년 동안 매달렸지만 재개발 갈등의 핵심인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문제는 변한 게 없고 휴업 보상비만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났을 뿐"이라면서 "투쟁은 실패작"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보상금 문제는 중요하다. 만족할 만한 제도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권은 결국 '돈'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개발 이익을 노리는 건설사나 재개발조합보다 당장의 생존이 걸린 세입자들에게 돈은 더 중요한 문제다.

 

이 때문에 세입자대책위가 꾸려지면 재개발조합 측은 차별보상 등으로 당근을 제시하곤 한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해당자' 세입자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비해당자' 세입자 사이의 갈등으로 투쟁이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용산4구역에도 먼저 떠난 세입자들이 많다. 남아있는 철거민들은 "힘들어서 가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를 보상해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35억 원이든 40억 원이든, 부동산 시세차익으로 재개발조합과 건설사가 벌어들일 수익에 비해서는 크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번 협상에서 재개발조합은 보상을 부담하기로 한 것 역시 그 돈을 지불하고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은 1평당 감정평가액이 1억2000만 원이 넘는다. 철거민들은 임대상가 분양권을 받는다고 해도 오른 전세금과 보증금을 내기 벅찬 상황이다.

 

재개발조합과 건설사의 시세차익, 그리고 용산 유가족의 보상금

 

 

사실 이번에 용산 철거민들이 선택한 전철연 방식의 망루투쟁은 진보진영에서도 논란이 많은데, "정책 및 제도 변화는 만들지 못하고 각 지역 세입자의 생존권만 확보하는 데서 그친다"는 것도 주요한 비판 중 하나다.

 

그동안 전철연이 들어간 철거 지역에서는 끝까지 버틴 몇 가구의 주거 혹은 상가 세입자가 먼저 나간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생계대책을 보장받는 것으로 끝난 투쟁도 많았다. 전철연의 관점에서는 성공이지만, <동아>의 관점에서는 실패작이다.

 

그런 점에서 <동아>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진보진영의 자성과도 맞닿아있다. 용산 범대위나 유가족들도 이번 협상을 '반쪽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아예 "하나도 만족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9일 오후 노제에서 권명숙씨는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라면서 "반쪽짜리 장례가 아니었다면 한결 마음을 내려놓을 텐데"라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한 반쪽의 책임을 용산 유가족이나 범대위에서 찾을 수만은 없다. 용산 범대위는 애초 지난해 4월, 5대 대정부 요구안에서부터 임대상가와 임시상가 등 제도적인 세입자 생계대책을 요구했고,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개발 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길고 지난했던 협상 과정에서도 용산 범대위 활동가들은 "당장 보상금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 사과와 제도적 개선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저 쪽(서울시나 정부)에서는 이번 협상이 선례가 될까봐 보상금 문제를 자꾸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동아> 역시 "정치권과 재야단체들은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지만 이 때문에 보상 타결이 더 지연됐다"면서 이같은 협상 정황을 전하고 있다. 

 

결국 재개발 정책을 바꾸지 못한 채 용산 범대위가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은 1주기를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협상 타결 직전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협상이 안돼도 1주기에 장례를 치를까 하는 고민도 한다, 유가족들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언론들도, 나도, 당신도 가해자다

 

 

'남일당 성당'을 이끌었던 문정현 신부는 "보상 말고는 아무 것도 된 게 없다"면서 협상 결과를 비판했지만, 유가족이나 범대위 활동가에게 "더 싸우자"고 설득하지는 않았다. 너무 잔혹하고 몰인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결식장에서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고인들을 더 이상 차가운 냉동고에 둘 수 없어서 힘든 결심을 한 유가족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도 계신다"면서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 했지만, 지난 1년 전 고인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인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유가족 인사를 한 전씨의 당부는 "우리와 같은 철거민들이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문 신부는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자 실력"이라고 말했다. '우리'란 1차적으로 유가족과 용산 범대위지만, 더 나아가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을 비롯한 진보진영이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다.

 

"이런 식의 사태 해결로는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어 답답하다"는 <동아>와 모든 언론들 역시 '우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지난번 총선에서 부동산 시세차익을 기준으로 '뉴타운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고, 지난 1년 동안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밥을 먹고 살았던 나와 당신도 '우리' 안에 있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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