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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 이른 봄, 일등으로 피어나는 바람꽃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이른 봄, 일등으로 피어나는 바람꽃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 김민수

 

폭설이 내리고 나서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하얀 백설에 묻혀 봄을 준비하는 풀꽃에게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반가울지도 모릅니다. 눈 속에 묻혀 있으니 칼바람에 시달릴 일이 없고, 날씨가 추워 땅이 꽁꽁 얼었으니 꽃향기도 여느 해보다 더 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종말은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과 함께 오고, 봄꽃이 피어나고 나서 꽃샘추위 두어 번 오면 완연한 봄이 오는 것입니다. 저기 남도에는 수선화나 우리가 그냥 이름없는 꽃이라고 부르는 광대나물, 냉이, 쇠별꽃, 큰개불알풀꽃이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눈을 녹이고 피어나는 얼음새꽃(복수초)는 엄동설한에도 이미 동해 어딘가에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미 겨울이라는 장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산바람꽃 꽃샘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꽃샘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변산바람꽃 ⓒ 김민수

 

가히 봄의 전령이라고 부를만한 꽃 중에는 '바람꽃'이 있습니다

 

바람꽃의 종류는 다양하고 저마다 피어나는 순서가 있는데 가장 먼저 피어나는 바람꽃은 '너도바람꽃'입니다. 너도바람꽃이 피고 나면 만주바람꽃이 피고, 만주바람꽃이 피면 변산바람꽃도 피어납니다. 바람꽃 중에서 세 번째로 피는 꽃이 변산바람꽃이지요.

 

꽃들은 순서대로 피어나고 자신의 때가 다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몇 번째로 피어났는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피어나는 순서로 어떤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 이른 봄부터 늦가을 혹은 겨울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있으니 자연에는 일등 혹은 꼴찌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풀꽃 혹은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바로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세상은 어떤가요?

 

오로지 일등만 기억되고, 일류만 기억됩니다. 대형교회, 대형교회 목사만 능력이 있는 듯하고, 권력을 잡은 자의 생각이 옳든 그른 든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설 곳이 없습니다. 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일등을 하지 못하면 아주 작은 등급차이로 기억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일등을 하려고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일등이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세상을 가리켜 '더러운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눈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돌아보아도 깨끗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는 일등만 기억되는 세상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올바르게 자리 매김을 할 것이라는 믿음,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일등과 꼴찌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변산바람꽃 낙엽을 옷 삼아 입고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낙엽을 옷 삼아 입고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 김민수

 

요즘 세계적인 이상기후는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와 관련해서 슈퍼컴퓨터조차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없으니 가설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지구가 몸살을 앓고, 그 몸살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살감기를 앓고 나면 건강을 회복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감기몸살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이상기후나 지진(지구의 몸 떪) 같은 것들을 지구가 잘 이겨주길 바랄 뿐입니다. 지구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제국주의 중심의 세계경제체제가 크게 이바지를 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3세계 국가가 떠맡아 감당했지요. 제1세계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제3세계 약소국의 독재자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수출되어 매립되는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세상은 끊임없이 일등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구조 혹은 들러리를 서는 구조입니다.


바람꽃의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비밀의 사랑', '덧없는 사랑'입니다

 

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함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바람꽃이 바람꽃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꽃, 누워버리는 꽃은 태풍이 감히 꺾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이 희망입니다.

 

그 바람꽃 가운데서도 첫 번째, 일등이 아니고 세 번째, 삼등으로 피어나는 꽃은 어쩌면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대로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등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직행열차를 타겠지만, 서민들은 완행열차를 타겠지요. 그런데 그 삼등 완행열차가 얼마나 인간미가 넘칩니까? 조금 불편하고, 힘들고, 이런저런 냄새가 난들 서민들의 꾸미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치는 삼등 완행열차, 그것이 구원열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변산바람꽃 연록의 생명들이 변산바람꽃 주변에 피어날 즈음이면 완연한 봄이다.
변산바람꽃연록의 생명들이 변산바람꽃 주변에 피어날 즈음이면 완연한 봄이다. ⓒ 김민수

꽃말들도 모두가 이런 의미들을 담은 듯합니다. 일등만 귀하게 여기는 세상에 삼등으로 피어나 여전히 그들의 사랑을 전하자니 괴로울 터이고, 그럼에도 그들이 전해주는 비밀의 사랑을 전해듣는 이가 있을 터이고, 그럼에도 결국은 때가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니 덧없는 사랑입니다.


나는 일등만 대접받는 세상을 사람들이 말하듯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깨끗한 세상이란 꼴찌까지도 배려하는 세상이겠지요. 영하 15도가 넘는 추운 날, 뉴스에서 어느 홀로 사는 노인의 거실에 걸린 온도계가 영상 2도를 가리키는 영상뉴스를 보았습니다. 체감온도는 영하였을 터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추위로 떨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속옷만 입고 거실을 활보하면서도 아무런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능력이요, 자신이 누려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제는 자기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등급으로 매길 때 자신들보다 훨씬 뒤지는 등급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일등만 되라고 합니다. 일등이 아니면 찍소리도 내지 말라고 합니다. 감히 이등 삼등 혹은 꼴찌가 일등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불평불만이나 쏟아내는 불손한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입니다.


변산바람꽃, 바람꽃 중에서 일등으로 피어나는 꽃이 아니지만, 그들이 있어 풀꽃 세상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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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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