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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병신 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죄인처럼 쫓겨나는 걸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2003년에도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할 순 없었습니다. 김주익 지회장, 곽재규 형한테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단식에 들어갑니다. 이것밖에 할 게 없어 죄송합니다. 동지 여러분."

 

김진숙(50)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명단 발표를 앞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공장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 지도위원은 13일 아침 천막 농성에 들어가면서 밝힌 '입장'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최근 선박 수주가 저조한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말부터 구조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생산·관리직을 30%가량(750여 명) 줄인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350명가량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한진중공업은 오는 26일 정리해고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한진중공업지회는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며 부분파업과 집회, 거리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다. 여성 용접공이었던 김 지도위원은 1986년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후 그녀는 구속되기도 했으며,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복직투쟁을 해왔다.

 

한진중공업에서는 2003년 노·사 갈등으로 김주익·곽재규 노동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진중공업에서는 1986년, 1989년, 1991년 노·사 갈등으로 해고자들이 대량 발생했는데, 2003년 노·사 합의로 이들 중 18명이 순차적으로 복직했다. 그러나 김진숙 지도위원은 복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당시 해고는 부당하다"는 요지의 결정문을 받았다. 이 결정문에는 '복직'을 권고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사측에 결정문을 보내면서 복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4년 만에 마침내 복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절차를 밟고 있어 막막한 상태다.

 

어느새 24년, 오매불망 복직 꿈꾸던 노동자 "설마 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동안 대우자동차, 쌍용차, 콜트악기 등 전국 몇몇 사업장의 정리해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집회 때 연설하거나 노동자 교육 등을 통해 구조조정의 부당성을 알려 왔다. 그런데 제가 돌아가야 하는 일터인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를 한다고 한다. 설마 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녀는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복직 권고' 결정을 받고 난 뒤 24년 만에 복직하는가 싶어 기뻤다"면서 "회사에 결정문을 보내 복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출근투쟁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임원 선거가 끝난 뒤인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출근 투쟁을 해왔다. 다른 노동자들과 같이 출근하려 했지만 회사 입구에서 막히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절차를 밟고 있어 복직의 길은 더 막막한 상태다.

 

"하여튼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는 느낌이다. 희망과 절망이 거의 같은 시간에 공존하게 되었다. 복직이, 24년 전 일터로 돌아가는 게 유일한 꿈이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키워온 꿈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녀는 "24년 전과 같은 노동자로 돌아가고 싶다. 출근투쟁을 하며, 24년 전에도 그랬듯이,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아침 7시에 오고,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했다"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공장을 지켜왔는지를 아는데, 나가야 한다고 하니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

 

2003년 2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더 가슴 아파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003년 한진중공업에서 2명이 죽고 난 뒤 사장은 사과하면서 노·사 상생을 이야기했다"면서 "지금에 와서 또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매일 사라지는 아저씨들... "이러다 어떤 상황 벌어질지"

 

김 지도위원은 요즘 노동자들이 떠밀려 나가고 있는 일터의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미 250명이 명예퇴직서를 쓰고 나갔다. 출근 때 보이던 아저씨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아저씨들이 사라지는 것을 매일 확인한다"면서 "26일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한다고 하고, 설계실은 이미 아웃소싱을 하기로 해서 거의 대부분 사표를 썼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을 막아내지 못해 김주익·곽재규 열사한테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고 나면 한진중공업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2003년 두 사람이 죽었던 상황을 지켜봤다. 지금도 그런 공포감을 주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지금 금속노조나 한진중공업지회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조합원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그렇다고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단식농성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따르면, 김진숙 지도위원은 13일 한진중공업 영도공장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사측과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사측은 전기를 끊었으며, 김 지도위원이 화장실 등 사내에 출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기가 차단되어 하는 수 없이 차량발전기를 이용하고 있다. 차량발전기를 24시간 가동할 수 없어 밤에만 사용한다. 밤에 침낭을 깔고 있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김진숙 지도위원#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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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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