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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1년. 지난해 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고 지난 9일 장례도 치렀지만, 서울 곳곳에 아직 '용산'이 있다. 3년째 철거사업이 진행 중인 상도동의 눈 덮인 산동네에도, 밀어붙이기식 개발에 항의하며 주민이 자살한 마포구 용강동에도, 우여곡절 끝에 이주협상을 타결해 뿔뿔이 동네를 떠나는 왕십리에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수도권의 대표적인 철거 현장을 찾아보고 재개발정책의 대안도 고민해봤다. [편집자말]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 곳곳에 '낙석위험'이라고 적혀있다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곳곳에 '낙석위험'이라고 적혀있다 ⓒ 박혜경

용산참사 1주기를 맞는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 앞은 조용했다. 아파트 곳곳엔 '낙석 위험, 주차 금지, 통행 주의'라는 노란 경고문이 붙었다. 주변 건물에는 녹색 가림막이 내려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파트 맞은편 건물을 부수던 굴착기만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다.

철거 건물에서 떨어지는 돌에 맞을까 봐 자동차마저 피해간다는 이곳. 하지만 아직도 아파트 안에는 14가구 50여 명의 주민들이 남아 있다. 건물 입구에 한두 개 남아있는 계량기만이 이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2월, 바로 이곳에서 세입자 김아무개(6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아파트에서는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소음과 먼지, 압박감에 시달리던 세입자들과 어떻게든 철거를 진행해야 하는 용역업체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웃들에 따르면 김씨는 사망 직전 용역업체 직원과 몸싸움에 휘말렸다.

서울시가 '세입자 보호대책'을 발표하면서 동절기 재개발 철거 금지를 명시한 지 1년,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구역으로 철거작업이 시작된 지 열흘이 안 돼 벌어진 일이다.

꽁꽁 얼어붙은 아파트 계단... 붕괴 위험까지

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부인 이아무개(64)씨는 아파트를 비워놓고 있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 자꾸 떠올라 아들네 집을 오가고 있는 것이다.

이씨를 찾아가 만나보려 했지만, 그는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 했다. 보도가 나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자신이 사회적 이슈로 거론되는 것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남편의 자살 이후 심적으로 지친 상태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전해준 박찬일 용강동 주민모임 대표는 "얼마나 힘들겠냐, 제가 말로 감히 (유가족들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얼마나 심신이 피폐했으면 자기 목을 맸겠냐"고 강조했다.

김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이곳의 철거는 일단 중단됐고, 지금은 빈집마다 자물쇠로 잠가놓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한참 철거가 진척된 아파트는 더 이상 사람이 살만한 주거공간이 아니었다. 곳곳이 부서진 건물에서는 쾌적한 생활은커녕 기본적인 생명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화장실과 계단 수도가 터져 화장실과 계단이 모두 얼어있다
화장실과 계단수도가 터져 화장실과 계단이 모두 얼어있다 ⓒ 박혜경

싱크대 설겆이통 물이 얼어있다
싱크대설겆이통 물이 얼어있다 ⓒ 박혜경

아파트 계단에는 수도가 터져 흘러나온 물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때문에 난간을 잡고도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로 바닥이 미끄러웠다. 화장실과 현관에도 아직 얼음이 두꺼웠다. 천장에서도 얼음이 녹은 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여기저기 창문이 깨진 건물 안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아파트 주민 박아무개씨는 "용역업체 직원이 일부러 바람이 부는 강변 쪽 창문을 모두 깨뜨렸다"고 주장했다. 빈 집은 바닥의 콘크리트가 모두 깨져 있었다.

최근 혹한이 겹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박씨에 따르면, 한때 실내 온도가 영하 11~12℃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화장실 변기 물에 살얼음이 끼고 싱크대에 넣어둔 식용유가 얼 정도였다. 그는 "지금 이 곳은 교도소보다 못하다, 수도가 터져 7층에서부터 물이 내려오는데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왜 꼭 지금 철거를 하냐, 우리가 다 나간 뒤에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한 "서울시는 우리가 지칠 때만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악에 받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생활의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시범아파트는 작년 가을에 외벽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막기 위해 가림막 공사를 할 정도로 약해져 있다. 이런 와중에 충격이 가해지면 그 안에 사는 주민들은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용강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날이 따뜻해지면 얼었던 벽과 바닥이 녹는다, 건물에 힘이 없어서 사고 위험이 크다"면서 "사고가 터져야 정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범아파트 단지 관리인 역시 "한파로 터진 하수도 물이 건물 틈새에 스며들어 얼어 있다, 이게 녹으면 붕괴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찬일 대표는 "자기 부모형제가 살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아랫집 구들 뜯고 해머로 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한 "서울시는 우리를 괘씸히 여길 게 아니고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임시거주지부터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오세훈 시장에게 보내는 호소

철거된 집 풍경  
철거된 집 풍경  ⓒ 박혜경

박 대표가 '괘씸죄'를 의심하는 것은 세입자들이 서울시와 몇 달째 보상 문제를 놓고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세입자 대책으로 주거이전비를 제시했지만 임대주택 입주권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범아파트는 대부분 전세 2500만~4000만 원 정도지만, 주변 전월세 시세는 2칸짜리 지하방도 7000만~8000만 원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다세대주택 1층에 들어가려면 1억 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주거이전비를 받아봤자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년 전 이날 참사가 벌어졌던 용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지난 1년 동안 사회 각층에서 재개발 정책과 동절기 강제철거를 비판했고, 오세훈 시장 역시 각종 제도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용산참사 이후 바뀐 건 전혀 없다"면서 "신문을 보면 '용산참사 해결됐다, 세입자들 상황이 나아질 거다'라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쫓겨나가는 사람들이 피눈물 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 여기서 딱 하루만 살아보라."

무너져가는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 세입자로서 그가 오 시장에게 보내는 호소였다.

덧붙이는 글 | 박혜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용산참사#마포구 용강동#시범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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