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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 <날아라 펭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교육 문제 및 조기 교육 과열 문제 등을 그리고 있다.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교육 문제 및 조기 교육 과열 문제 등을 그리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지난 20일 서울시 교육청 김경회 교육감 권한대행은 "창의력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학교 시험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논술시험을 도입하겠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달달 외어야 맞힐 수 있는 문제 대신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논술형 시험을 제시해,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겠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교육청은 다음 달까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초·중·고교에 내려 1학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에 현재 다수의 언론들은 크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일보>는 '임성호' 하늘교육 이사의 말을 인용, "학원이 학교마다 다른 내신 논술 시험을 대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며, 사교육 열풍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조선일보> 역시 "암기 위주의 학원 수업보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 고입·대입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유리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학교 내 논술시험의 도입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논술형 문제 채점에 대한 공정성 시비 대책이나, 논술채점에 따른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대비책 역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논술 평가 시스템의 보완에 대한 초점이 전혀 엉뚱한 데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내신 평가시스템만을 뜯어 고쳐서는 결코 주입식교육이나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의 교육제도이다.

교육과정 제자리인데 평가시스템 바꾼다고 사교육 줄어드나

먼저, 서울시내 초·중·고교의 논술시험 도입이 사교육 시장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자. 몇몇 언론들은 논술시험이 가계의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원이 학교마다 다른 내신 논술 시험을 대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어 학교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현행교육과정에 대한 고찰이 턱없이 부족한 발언이다.

논술교육은 7차 교육과정 이후로 학교교육과정 및 방과 후 논술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실시되어 왔으나, 통합형 논술고사 대비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 본고사 부활이나 공정성의 문제로 2008년 이후로 대입전형시 논술 비중은 크게 줄어왔다. 2010년 전형에서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정시 논술을 폐지하였고, 논술을 보는 대학은 2008년 45개, 2009년 13개, 2010년 7개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YTN, 2009. 11. 16).

이에 최근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에서 독서이력의 비중을 늘려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일선학교에서는 대입전형시 논술시험이 위축되면서부터 논술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 광양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종곤씨는 "현재 논술 교육은 빠르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나 신청자에 한해 대학교별 맞춤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학교 내 논술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즉, 이 같은 상황에서 학교 내 논술시험의 도입으로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논술시험의 평가기준 확립이나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지금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바로 학생들의 논술실력과 현행 논술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작업이다.

여전히 반복되는 일방통행식 교육정책

작년 6월 울산교육청이 학기 초에 서술논술형 평가 반영비율을 30%이상으로 할 것을 일선 학교현장에 시달하자 일선 교사들이 "소통 부재에서 온 밀어붙이기식 정책"이라며 크게 반발한 사건이 있었다(<오마이뉴스>, 2009. 6. 18일자 기사 참조).

당시 현장 교사들은 과학은 실험과정, 수학은 문제를 푸는 과정 등 과목별로 다양한 평가 방법이 있고, 수업태도 등 다양한 평가 내용이 있는 데 서술논술만 하도록 해 교육 평가방식을 획일화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 중요하게 집행해야 할 정책사업이라면 시범학교도 거치고, 현장교사들과 다양한 토론도 실시해 수정·보완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고 그대로 추진되었다는 것이 당시 일선 교사들의 주장이었다.

이번 논술 시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교육청의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과목을 국어와 사회에 우선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답안 분량이 300~500자 이상으로 긴 논술형 문제를 일정 비율 이상 출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고교 '작문' 같은 과목은 논술형 시험만으로 평가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현행 논술교육과정하에서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현장 교사들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무작정 300~500자의 논술형 문제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다음 달까지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논술 시험의 방식을 획일적으로 도입할 경우 또 다시 일선 학교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논술교육 필요하지만, 좀 더 유연한 접근방식 전제되어야

 전국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스케이트를 타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전국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스케이트를 타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논술시험 도입에 대다수의 언론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의 망령에 우리가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논술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문제해결능력과 창의성을 높이겠다는 교육청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제도의 필요성만으로 논술시험을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대입전형에서 수능 비중은 점차 확대되는 반면 논술비중은 줄어들고 있으며, 학교 내 논술교육과정은 아직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조건들 위에서 논술형 시험이 우선적으로 도입된다면, '수능을 위한 사교육'과 '논술형 내신을 위한 사교육'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책의 좋은 취지와 목적만을 앞세웠다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사회적 부작용만을 낳았던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대중 정권 때 아이들의 적성개발을 위해 도입되었던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은, 수능위주의 입시교육으로 인해 '황제보충수업'으로 변질된 바 있다. 또, 외국어 능력을 가진 유능한 국제인을 양성한다는 외고와 글로벌 지도자를 육성하겠다는 국제고의 입시전형은 사회에 불필요한 사교육비 지출의 증가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번 논술 평가 시스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논술시험의 유형이나 방식을 획일화 하고 하달하기 전에,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과 교육여건들을 우선적으로 검토 하여 각 학교 상황에 맞는 유연한 평가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논술 평가 제도는 학교 내 논술교육의 강화와 더불어, 내신만이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그리고 대입전형과 반드시 연계될 필요가 있다. 내신제도와 입학사정관제 그리고 대입전형을 위한 사교육이 따로 노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발전되어 갈수록 사회내의 '갈등'과 '불확실성'은 점차 증대되어 간다. 교육정책의 도입에 앞서 열린 민주적 의사소통이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이유이다.


#논술시험#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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