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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세렌디피티'의 내부. 왼쪽 책장에 있는 책들은 이희순씨 집에 있었던 책들이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행운이라는 의미다.
 북카페 '세렌디피티'의 내부. 왼쪽 책장에 있는 책들은 이희순씨 집에 있었던 책들이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행운이라는 의미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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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의 북카페 '세렌디피티'는 노란색으로 기억된다. 마치 안개 가득한 유럽의 잿빛하늘에 하나 둘 켜지는 오렌지색 가스등처럼 '세렌디피티'는 메마른 전주 한옥마을 겨울풍경에 핏기를 불어넣어 준다.

북카페의 주인 이희순(38)씨는 서울에서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웹기획 관련 일을 했던 이씨는 전주에 내려올 때만 해도 일자리를 곧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건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웹기획 10년 경력을 살려서 취업을 하려했으나 전주에는 일자리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모두 영세한 사업체들이었으며 형편은 어려웠다.

방향을 바꿔 사무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지만 대답은 모두 비슷했다. 10년차 웹기획 경력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아니면 나이 어린 직원을 원했다. 간혹 일자리가 생겨도, 대부분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고용지원금을 수령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두 가지 장벽에 부딪쳤다. 나이와 경력. 이씨의 경우에는 경력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취업의 벽은 단단하고도 높았다.

"의외로 취업이 안 돼서 당황했어요. 서울에서는 일의 능력여부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었는데 여기(전주)에 왔을 때 가장 당황했던 점은 급여를 정하고 취업의지를 묻는 거였어요. 나이제한도 심했죠.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고용주가 저랑 나이가 비슷하거든요. 저보다 어린 사람을 원하더라고요. 그 점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에요."

웹기획 10년차, 한옥마을에 북카페 차리다

이희순씨
 이희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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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2008년 4월경. 마침 한옥마을에 어머니의 집이 있던 이씨는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이 집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그는 틈만 나면 한옥마을을 걸어다니고 조사를 하면서 아이템을 궁리했다. 조그만 평수에 인건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커피숍'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옥마을에 카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커피숍은 이씨의 오래 전 '로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로망과 현실은 차이가 있는 법. '잘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집을 리모델링해 놓으면 집 하나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공사를 단행하기로 마음먹었다.

2008년 10월 23일, 이씨는 드디어 집을 허물고 공사를 시작했다. 완공까지 3~4개월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오픈을 2009년 2월 정도로 잡았죠. 3~4개월이면 된다고 했으니까요.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집은 봄에 지어야한다는 말을 그때 깨달았어요. 준비하고 점검해야할 것도 많다는 것을 몰랐어요. 2009년 4월 한지축제에 맞춰서 오픈할 예정이었으나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요. 준공 검사와 업자측 의견 갈등으로 공사가 늦어졌어요."

지금 다시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씨. 경험이 없어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자산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해서 2009년 8월 19일 드디어 커피숍을 오픈했다.

커피숍 운영은 날마다 고난의 행군... 하지만 재밌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비치된 리플렛.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비치된 리플렛.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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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손님들의 쿠폰을 모아놓았다.
 단골 손님들의 쿠폰을 모아놓았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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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은 8월에 했지만 내부세팅은 5개월 전에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혼자 4개월 동안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커피맛을 뽑아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레시피가 같다해도 컵 사이즈, 날씨 등 커피맛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를 해야했다.

"이 근처에서 제 커피맛을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날마다 커피를 만들어서 시식했죠. 그 과정없이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더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날마다 고난의 행군이었죠.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그는 돈을 벌려는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서비스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행히 이씨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서비스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이 일과 잘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손님에게 먼저 다가서는 자세다. 소극적인 자세는 버려야한다. 내가 먼저 한 마디 더 건네고 인사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커피숍이나 자기만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돈의 50%만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단다. 만약의 변수를 생각해서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을 반드시 남겨놓으라는 것이다.

"커피숍을 준비하면서 희망창업지원교육을 받았어요. 커피숍이 잘 될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 거든요. 한 달 일정시간 수업을 듣는 조건으로 사업계획서와 기획서 등을 준비하면 어느정도의 창업지원금을 대출받을 수가 있거든요. 꼭 이것 아니라도 금전적인 부분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 해요."

철저하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철두철미한 거냐고 물으니 10년간의 기획업무가 몸에 배어서 그렇단다. 삶은 늘 '변수'로 가득차있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다는 것. 왜 그렇게 의심이 많고 비관적이냐는 질문도 받는단다. 하지만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그런데 왜 하필 북카페일까. 

승진보다 짜릿한 단골손님의 존재

따뜻함을 더해줄 무릎담요. 사소한 배려하나가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
 따뜻함을 더해줄 무릎담요. 사소한 배려하나가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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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이템 잡을 때 고민 많이했죠. 커피숍으로 결정은 해놓고 너무 애매하고 모호한  거예요. 내가 남에 비해 가진 게 뭘까 생각하다보니 책이더라고요."

책과 관련된 일을 했고, 책을 무척이나 좋아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고싶다는 이씨지만 정작 북카페를 시작하고나서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있다.

"개업하고 2권 읽었어요. 책읽을 시간이 없더라고요.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손님들도 단골이 되어갈수록 책을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런 이씨도 가끔 직장생활이 그립기도 하단다. 언제일까. 한 달 수입이 불안할 때? 경제적으로 자신 없을 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쪽 일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더라고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라면 변수였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단골손님들이 오는 거예요. 저를 일부러 보러 먼곳에서 와주고, 기다렸다가 보고가고… 이런 손님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게 승진했을 때만큼이나 뿌듯한 성취감을 주더라고요."

지난해 12월 31일 단골손님 몇몇과 고기파티 겸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 찾아온 단골손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한단다. '이 맛에 장사하는구나' 싶었단다. 사람사귀는 맛 때문에. 늘 고만고만한 커피잔을 설거지하면서 손가락 관절통을 얻기도 했지만 당분간 이 고통도 기꺼이 '즐감'할 모양이다. 


태그:#북카페,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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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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