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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인이자 소설가 김선우(40)가 새로운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예담)를 펴냈다
시인시인이자 소설가 김선우(40)가 새로운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예담)를 펴냈다 ⓒ 이종찬

 

"시는 술에 취해서도 쓸 수 있지만 소설은 술에 취해서는 절대 쓸 수 없다"고 대못을 쾅쾅 치는 작가가 있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고, 소설가이기도 하고, 동화작가이기도 하고, 칼럼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천성적 기질은 '시'에 맞는 것 같다"면서도 "마흔 살을 넘어선 지금 기질만으로 작가를 '업'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작가 김선우다. 김선우는 작가를 영어로 '라이터'(writer)라고 부르는 것처럼 시인이나 소설가를 따로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곧 글을 쓴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굳이 시나 산문, 소설 등 장르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까닭에 그는 그저 '글쟁이'로 불러달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시인이었던 김선우가 소설을 쓰게 된 까닭은 지금으로부터 5년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재 춤꾼 최승희를 밑그림으로 삼아 시나리오를 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촛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이 시나리오를 붙들고 지난 2008년 첫 번째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를 펴냈다.

 

그는 그해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눈과 귀가 한꺼번에 쏠렸던 '촛불집회'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촛불을 든다. 그가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플라워>를 쓰게 된 주춧돌이 '촛불집회'라는 그 말이다. 이 소설은 지난 해 8∼11월 인터넷도서 Yes24 웹진 '나비'에서 넉 달 동안 연재되며, 편당 4000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촛불, "작가이기에 다뤄야만 했다"

 

김선우 장편소설 <캔들플라워> <캔들플라워>는 초와 꽃이란 영어 합성어이다
김선우 장편소설 <캔들플라워><캔들플라워>는 초와 꽃이란 영어 합성어이다 ⓒ 이종찬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2008년 촛불의 밤들입니다. 같은 불이되, 소돔과 고모라에 쏟아진 화염비가 도시를 소탕한 폐허의 불이었다면, 자그마한 불꽃을 피워 서로의 심장을 밝히고 먹을 것을 나누고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를 유지하던 촛불은 생명의 감도를 아는 불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작가의 말' 몇 토막

 

시인이자 소설가 김선우(40)가 새로운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예담)를 펴냈다. <캔들플라워>는 초와 꽃이란 영어 합성어이다. 이 소설은 지난 2008년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맞서 초, 중, 고, 대학생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들었던 촛불, 그 촛불집회를 작가가 씨실과 날실로 꼼꼼하게 엮고 있다.

 

모두 18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소설은 지난 2008년 봄과 여름에 걸쳐 광화문, 청계천, 시청 앞, 서울역 앞을 환하게 밝혔던 촛불집회를 다룬 '첫' 장편소설이다. '바람농장의 아이', '지오, 열두 살의 자서전', '자정의 광장으로', '비 그치고 레인보우', '이매진, 촛불자연', '푸른 새벽', '사랑해 우리들' 등이 그것.

 

작가 김선우는 "촛불이라는 소재에 솔직히 부담감이 있었지만 작가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었고, 또 다뤄야만 했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을 통해서, 문화를 통해서 대화할 수 없다면, 그러니까 문학을 통해서조차 대화할 수 없다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로 암담한 일"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캐나다 소녀 지오 눈에는 '촛불집회'가 어떻게 비쳤을까

 

"공항이야."

"와우, 드디어! 몇 시 도착이야, 언니?"

연우는 오늘 촛불 문화제에 갔다가 단짝친구인 수아와 함께 밤늦게 희영의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희영이 키우는 개 덕분에 알게 된 연우는 희영보다 세 살이 어렸지만 속이 깊고 야무진 친구였다.-67쪽

 

이 소설은 열다섯 살 먹은 캐나다 소녀 지오가 한국을 찾으면서 첫 머리가 시작된다. 지오는 한국에 와서 직장에서 일하는 희영과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카페를 꾸리고 있는 수아 등 여러 여자들을 만난다. 지오는 이들과 함께 광화문과 시청 앞, 청계천 광장, 서울역 등지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든다.

 

지오가 한국에 온 것은 엄마가 한국 남자를 만나 낳은 쌍둥이 중 잃어버린 쌍둥이 한 쪽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오는 공짜로 잠자리를 내주기로 약속한 여자 희영을 만나 아현동 그 여자네 집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촛불집회가 열리는 청계천 광장과 마주치게 된다. 청계천에는 내를 따라 "군데군데 촛불이 흔들리며 피어" 있다.

 

희영은 IMF로 파산한 부모가 4년 앞 도피 이민을 떠난 뒤 홀로 남아 초등생 특목고 대비 문제 출제회사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이다. 스물아홉 먹은 희영은 월급을 모아 언젠가는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꿈을 키우는 여자다. 지오는 희영이 사는 아현동 달동네 집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희영 친구 연우와 연우 친구 수아를 만나 촛불집회장으로 가는데...

 

지오가 든 촛불은 프랑스 68혁명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빨갱이가 뭐야?"

조그만 목소리로 지오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어깨를 으쓱한 찰나였다.

"혹시 내 머리색 때문?"

조심스러운 지오의 물음에 푸하하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106~107쪽

 

지오, 연우, 수아는 저마다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 촛불을 든다. 그런 어느 날 지오는 "이 뺄갱이들"이라고 내뱉으며 노발대발하고 있는 중절모를 쓴 노인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본다. 지오가 "뺄갱이가 뭐야?"라고 아이들에게 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때 지민이가 "저번에 어떤 아저씨도 나한테 뺄갱이라 그러던 걸"이라고 말한다.

 

지우는 뺄갱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 "엉?"하며 지민에게 묻는다. 지민은 "도서관 갔다 오느라 좀 늦었거든. 근데 어떤 아저씨가 시청역 입구에서 갑자기 날 부르는 거야"라며, "너도 촛불집회에 가느냐며 뺄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말했다는 것.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뺄갱이라는 투로 말이다.

 

이쯤에서 지오 가족사를 살펴보자. 지오가 왜 한국에 와서 촛불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다. 프랑스 68운동 세대인 지오 할머니 마리는 파리에서 윤이상 구명운동을 하다 지오 엄마를 낳았다. 지오가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은 지오 할머니가 참여했던 68혁명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미친 소 싫어 VS 미친 소라고 말하지 마

 

작가 김선우 촛불이라는 소재에 솔직히 부담감이 있었지만 작가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었고, 또 다뤄야만 했다
작가 김선우촛불이라는 소재에 솔직히 부담감이 있었지만 작가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었고, 또 다뤄야만 했다 ⓒ 이종찬

을지로에서 숙자씨를 처음 본 날, 숙자씨는 마지막 남은 온몸의 힘을 짜내어 한마디 말을 하고 싶어 했다. 간첩이 으레 찬양 고무한다는 북한체제와 김일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숙자씨는 온 힘을 짜내어 말했다. 함부로 미친 소라고 말하지 말아달라고.

 

'미친 소 싫어'. '미친 소 너나 먹어' 그런 말들이 거리에 흘러넘칠 때, '함부로 미친 소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진 노파는 온몸의 진액을 짜내 그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아주 먼 길을 걸어온 고행자 같았다-303쪽

 

지오는 '미친 소 싫어'라고 외치고 있는 촛불집회 속에서 숙자가 한 말을 새긴다. 그리고 시민들이 촛불로 장식한 이스팔트 바닥에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분필로 그린 낙서 그림 속에서 '미친 소 미친 소 하며 빨간 딱지 달지 마세요. 사람의 탐욕 때문에 병 걸린 소가 무슨 죄람'이라고 씌어진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 지오 머리속에 '북한의 지령에 따라 도심으로 짐입...'이라는 기사 내용이 맴맴 돌면서 머리가 어지럽다. '미친 소' VS '미친 소라 하지 말아'와 '촛불을 든 시민과 뺄갱이, 북한 지령' 그리고 아현동 고갯길에 붙은 플래카드에 씌어진 '철거 고시'라는 낱말들이 모두 혼란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정부와 촛불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뺄갱이라 부르는 사람들처럼 '미친 소라 하지 말라'고 한 숙자는 왜 간첩 혐의를 받고 있을까. 숙자가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까닭도 기가 막히기만 하다. 숙자 집에서 노트에서 찢어낸 자국이 또렷한 '지령문서'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이 나왔다는 것인데... 

 

촛불집회장과 아현동 고개 오가며 느낀 자기 고백  

  

작가 김선우가 쓴 장편소설 <캔들플라워>는 주인공 지오와 지오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100일을 훨씬 넘게 타올랐던 촛불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면서 보고 듣고 느낀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지오를 통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을 돋보기처럼 큼직하게 비춰내고 있다.  

 

작가 김선우는 "저는 이 소설이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미래의 얘기이길 바란다"는 꿈을 품는다. 그는 "이 땅에 놀러온 '자연의 아이' 지오. 이 땅의 사랑스러운 젊은이들, 소녀들, 소년들, 희영, 연우, 수아, 민기, 태연, 지민, 술래... 이 모든 미래 세대 아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장정일은 "대개의 우리나라 작가는 현실이나 징후를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화적 지체를 고질병으로 앓고 있다"며 "김선우는 마치 기동타격대인양 빠르게 현실에 접근해서, 현실과 반영(작품) 사이에 벌어져 있는 한국문학의 지체 현상을 가차 없이 메우고 있다. 언젠가 촛불집회를 소재로 삼은 문학을 정리한다면 <캔들 플라워>는 일착으로 검토되어야 할 소설"이라고 평했다.

 

작가 김선우는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 '대관령 옛길' 등 10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가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을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나는 춤이다>가 있으며, 어른을 위한 동화 <바리공주>, 칼럼집으로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를 펴냈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 천상병시상을 받았다. 이번에 '꺼진 촛불'을 다시 활활 태우고 있는 <캔들 플라워>는 그가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예담(2010)


#작가 김선우#캔들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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