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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전>(돌베개 펴냄)
 ├ 글 : 김규항
 └ 책값 : 13000원

이삿짐 나르기를 거들려고 인천에서 일산까지 다녀왔습니다. 아침 아홉 시에 집을 나섰고, 밤 열두 시 반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옆지기는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지냈습니다. 요즈음은 바느질로 인형 만들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혼자 아이를 보자면 바느질하기란 만만하지 않으며 밥 차리기에다가 밥 먹이기가 무척 버겁습니다. 둘이 함께 아이를 보아도 버겁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앞서도 언제나 집일을 많이 맡아서 하기는 했으나, 아이를 키우면서 맡는 집일이란 더없이 고단합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오로지 고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무거워도 아이 볼따구를 쓰다듬고 궁둥이를 어루만지며 "우리 돼지야, 우리 돼지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즐겁습니다. 아이한테서 새 얼굴을 보고 아이와 함께 새 모습을 느낍니다. 고단하게 아이를 보기 때문에 얻는 보람은 아니나, 아이는 아이대로 늘 맑고 웃는 얼굴이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한편, 어른들이 잃기 쉬운 웃음과 느긋함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길동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란, 아이를 낳는 경험이 몹시 크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할 터이나, 이보다는 우리 스스로 더욱 고단한 새삶을 열면서 더욱 고단하기에 더욱 기쁘며 새삼스러울 수 있는 새길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우리들 목숨이기에, 이 목숨값이 얼마나 크며 거룩하고 아름다운가를 깨닫는 일은, 나 스스로 어버이가 되는 데에 있을 테니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를 생각하고, 나 스스로 어버이가 된 뒤, 내 아이 또한 어버이가 될 앞날을 헤아리면서, 우리들은 저마다 우리 목숨이 얼마나 곱고 거룩하며 놀라운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민주화 정권'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온전한 부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참혹한 풍경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 중세 교회는 실제로는 매우 타락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돈과 물질적인 부를 영혼을 더럽히는 짓이라고 여겨 경계하고 죄악시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런 종래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돈과 물질도 하느님의 축복'이라 주장했다 ..  (9, 160쪽)

 옆지기는 아기가 갖고 놀 인형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꿰매었습니다. 거의 열흘 만에 하나를 꿰매었습니다.
옆지기는 아기가 갖고 놀 인형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꿰매었습니다. 거의 열흘 만에 하나를 꿰매었습니다. ⓒ 최종규

하루하루 쉬지 못하고 보내는 나날인 채 일요일 아침부터 이삿짐을 나른다며 먼길을 나선 다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전철길에서 도무지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3호선 첫역 대화역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으니 눈이라도 감기는 감았으나, 인천으로 돌아가자면 종로3가에서 갈아타야 하니 느긋하게 눈을 붙이지도 못합니다. 무릎에는 책 하나 올려놓고 잠깐 잠들었다 깼다를 되풀이합니다. 안국역에서 가까스로 깨어나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종로3가에서 인천 가는 전철을 겨우 잡아탑니다. 막차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전철을 올라탑니다. 빈자리가 있으나 앉지 않습니다. 자칫 동인천역에서 못 내리고 인천역까지 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졸음을 멀리하면서 책을 붙잡습니다. 어떻게든 한 시간 이십 분을 책읽기로 버티어 보자고 다짐합니다. 마침 오늘 들고 나온 책은 '읽다가 잠들기 좋은 지루한' 책입니다. 그나마 마음에 쏙쏙 스며드는 이야기책이었다면 잠이 확 깰 수 있으련만, 더 고됩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무거운 몸으로 동인천역까지 잘 버티어 냅니다. 드디어 전철표를 끊고 밖으로 나옵니다. 자정을 훌쩍 넘고 한 시로 달려가는 때이니 술집을 빼놓고 문을 연 가게가 없습니다. 술 얹힌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 하며 고요한 골목을 걷습니다. 우리 집이며 이웃집이며 모두 불이 꺼져 있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벗습니다. 먼지 잔뜩 묻은 옷은 모두 벗어 담가 놓습니다.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는데 옆지기가 깼습니다. 오늘 있던 일을 짤막하게 들려주고 옆지기 다리를 조금 주무릅니다. 곧바로 곯아떨어져야 하지만, 오늘 하루치만큼 밀린 일이 있어서 셈틀을 켭니다. 한 시간 반쯤 다시금 졸린 눈을 비비며 일을 하고 나서야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제 깜냥으로는 곯아떨어진다고 곯아떨어지지만, 간밤에 아이가 오줌을 누어서 잠을 깰 때에 함께 깨고, 새벽 다섯 시에 아이가 똥을 눌 때에도 함께 깹니다. 어제도 새벽에 똥을 누더니 오늘도 새벽에 똥을 누는군요.

아침 여덟 시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조금 일손을 붙잡자니, 아이는 어느새 따라서 깨어 납니다. 함께 놀자며 엄마한테 붙고 아빠한테 붙습니다. 거의 아무런 일손을 붙잡지 못한 끝에 아침 열한 시 넘어갈 때에 아침밥을 마련합니다. 어제 새벽에 해 놓은 밥에다가 떡과 당근과 고구마를 썰어 넣은 볶음밥을 합니다. 아이는 어제처럼 밥은 안 먹겠다고 도리질을 하고, 두부만 낼름낼름 집어먹습니다. 죽을 줘도 밥을 줘도 왜 이렇게 안 먹는다고 떼를 부리는지 힘겹습니다. 그래도 용케 콩은 아주 좋아하고 두부나 묵은 신나게 잘 먹습니다.

.. 예수에게 하느님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와 같은 존재다 …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 … 예수는 특이하게도 바느질, 술 담그기 등 여성이 전담한 노동의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성 노동을 부각함으로써,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집중하는가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낸다 … 예수는 마음의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 진리를 받아들이고 삶에 새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힘을 가진 소수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많이 먹기 때문에 힘없는 다수가 모자라고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무소유의 추구, 자발적 가난의 추구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  (32, 39, 52, 77, 98쪽)

 겉그림. 이 책이 '좀더 수수하고 낮게'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겉그림. 이 책이 '좀더 수수하고 낮게'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 돌베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느끼며 낮나절에 다시금 일손을 붙잡습니다. 이웃 누리집 마실을 하다가 김규항 님 누리집에서 "<예수전> 읽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정중히 부탁합니다. 천천히 한 번 더 읽어 주시길"이라는 짤막한 글월이 며칠 앞서 올라와 있습니다. 피식 웃고는 책상맡에서 노란 책 <예수전>을 다시금 들춥니다. 책을 읽으며 제 나름대로 밑줄을 그은 대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훑습니다. 이 책을 한 번 다 읽었던 지난 11월 25일에 적바림한 한 줄이 맨 마지막 쪽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 남아돌면 딱 한 번 슥 읽어 줘도 되는 책이란. 참 얕다.'

김규항 님이 쓴 <예수전>을 놓고 섣불리 '얕다'느니 '깊다'느니 하고 따지는 일은 알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예수전>을 다 읽고 나서, 이 부피 자그마한 책을 이렇게 엮어내어 만삼천 원이나 붙여야 했는가 싶어 몹시 슬펐습니다. 글부피도 적은데 굳이 양장으로 꾸며야 했느냐 싶습니다. 이 책을 이렇게 엮거나 꾸민 뜻은 알겠으나, 더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믿음을 나눌 수 있어야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180쪽)"라는 꾸지람을 꾸지람 그대로 나눌 만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책을 한결 보기 좋게 꾸미거나 엮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하느님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하여 반드시 수수하거나 풋풋하거나 단출하게만 엮거나 꾸며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야기하거나 하느님을 돌아보는 책이라 할 때에 좀 더 수수하거나 한결 풋풋하거나 더욱 단출하게 엮거나 꾸밀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어제 아침에 일산으로 가는 길에 다 읽은 <양희은-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우석,1993)이라는 책에서, 양희은 님은 "왜 성당들은 번쩍이는 장식,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는 걸까? 엄청나게 꾸며진 성당에 들어가면 사람이 새끼손가락만 하게 찌부러져서 초라해만진다. 그 엄청난 장식들이 사람과 창조주 사이에 오히려 두터운 벽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많은 이들과 같이 계셨던 곳은 들판이나 언덕 위였을 텐데. 들꽃 내음이나 밀 내음이 은총처럼 퍼지는 야외였다는데(264쪽)"하고 이야기합니다. 양희은 님은 "비싼 장식으로 화려한 교회를 지을 그 돈이면 많은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도 있건마는(264쪽)." 하고 말을 잇습니다.

저 또한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 하나 만들거나 내놓을 때에 늘 '책 하나에 드는 돈'과 '이 책 하나에 붙이는 값'을 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책값 500원이나 1000원을 더 붙이면 저한테 떨어지는 고물은 조금 더 커집니다. 반양장이 아닌 양장을 하고, 겉종이에 코팅을 입히거나 금박을 넣거나 누름글자를 넣으면 그만큼 인쇄ㆍ제작ㆍ편집ㆍ디자인에 돈이 더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값을 조금 더 올려붙여도 사람들은 덜 투정'합니다. 뭔가 '고급스러움'을 느끼고 '책꽂이에 꽂았을 때에 품위가 느껴진다'고 하니까요.

 '대운하'를 비판하는 큼직한 걸개천을 한 해 삼백예순닷새 걸고 있는 천주교 인천주교좌인 답동성당 교육관.
'대운하'를 비판하는 큼직한 걸개천을 한 해 삼백예순닷새 걸고 있는 천주교 인천주교좌인 답동성당 교육관. ⓒ 최종규
책 줄거리를 놓고 따지는 말이 아니라, 책 만듦새를 놓고 따지는 말이란 부질없을 수 있습니다. 아니, 부질없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나 개성을 건드린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 줄거리가 괜찮은 책이라 할 때에는 책 만듦새 또한 안 살필 수 없습니다. 더 너른 사람한테 더 낮은 삶자락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책이 껍데기를 더 들쓰고 있다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지요? 더 속깊은 사람한테 좀 더 너른 마음씀을 바라는 이야기를 펼치려 하는 책이 겉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요? <예수전> 같은 글부피라면 만삼천 원짜리 책이 아닌 만 원짜리 책이나 팔천 원짜리 책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습니다. 책 줄거리에 앞서 책 만듦새를 돌아볼 때에, 이 책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느꼈습니다.

..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을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구는 태도가 아니다 …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하고 느끼는 건 물론이려니와, 삶에 새겨 실천하는 것이다 …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 껍데기를 벗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의 귀를 닫아 놓은 사람에게 매달려 내내 시간만 보내는 건 현명하지 않다 ..  (69, 73, 96, 103쪽)

옆지기와 함께 <예수전>을 읽었습니다. 나 혼자 외곬로 바라보는 눈길이 될까 걱정하면서 옆지기 이야기를 묻고, 내 생각을 들려주면서 우리 세상에서 예수님과 하느님을 어떤 매무새와 눈길로 헤아리며 받아들이고 곰삭이는 삶이어야 좋을까를 돌아보았습니다. 옆지기는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마땅한 이야기를 아주 마땅하게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책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책을 애써 써냈어도 제대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옆지기와 책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는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상은 참다운 길보다는 유행이라고 하는 물결에 쉽게 휩쓸립니다. 김규항 님은 '사람들이 성경읽기를 너무 못한다'고 느끼며 <예수전>을 썼는데, 김규항 님이든 미우라 아야코 님이든 우찌무라 간조 님이든 김교신 님이든 하는 사람들이 풀이한 '성경읽기 책'을 읽지 않고 '우리 스스로 성경을 옳게 읽으'면 되는 노릇입니다. 성경에는 온갖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만, 한결 쉽게 알려주고자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를 다루지, 무슨 꿍꿍이가 있다거나 무슨 속셈이 있어서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를 펼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제가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성경말씀을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가슴이 따끔하도록 건드리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따끔하다고 느끼고, 눈물겨운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웃음이 터지는 대목에서는 웃으면 됩니다. 내 잘못을 뉘우쳐야겠다 싶은 대목에서는 내 잘못을 뉘우치면 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이나 제대로 못 느끼고 있었다면 '자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으로서 내가 잘하는 일을 흐뭇하게 섬기면 되며, 앞으로도 꾸준히 잘해 나가면 됩니다.

성경뿐 아니라 교과서도 매한가지입니다. 교과서에 이런저런 말썽거리가 있습니다만, 말썽거리가 있는 책이라 한달지라도 이 교과서를 다루는 사람이 슬기롭게 다루면서 올바르게 가르치는 도움이로 삼으면 됩니다. 우리한테는 빈틈과 모자람 하나 없이 옹근 책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훌륭하거나 거룩한 길을 모르거나 지나치거나 등돌리지 않으니까요.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경은 성경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람은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잘한다고 북돋우면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됩니다. 잘한다고 북돋우되 눈먼 채 뒤따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한다고 나무라되 그이 마음밭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마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한겨레신문 홍세화 님을 마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더 섬겨야 하지 않고, 누구를 마냥 깎아내려야 하지 않습니다. 왼날개이든 오른날개이든, 옳고 바르고 아름답게 잘한다면 손뼉칠 일이요, 그릇되고 엉터리에다가 어줍잖게 하고 있으면 따끔하게 꾸짖으며 바르게 접어들도록 도와줄 노릇입니다.

 인천 중구 선린동에는 '해안성당'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신도도 그리 많지 않고, 크기도 퍽 작습니다. 이러한 작은 성당으로 미사를 다니면서 '천주교회이든 개신교회이든' 동네사람들이 조촐하게 어울리며 '하느님 사랑'을 참되게 나누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고 꿈을 꿉니다.
인천 중구 선린동에는 '해안성당'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신도도 그리 많지 않고, 크기도 퍽 작습니다. 이러한 작은 성당으로 미사를 다니면서 '천주교회이든 개신교회이든' 동네사람들이 조촐하게 어울리며 '하느님 사랑'을 참되게 나누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고 꿈을 꿉니다. ⓒ 최종규

.. 하느님 앞에선 누구든 귀하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권력자든 차별 없이 귀하다. 하느님 앞에서 빈부 격차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란 왜 생기는가? 고루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 때문에 생긴다 … 부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때 이미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하는 셈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으로 겪는 불편함에 더해 인간적으로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야 하는 것이다 … 그러나 돈과 물질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수록 이상하게도 정작 자유는 점점 멀어져 간다 … 사람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부는 생각보다 적다. 그걸 넘어서는 부는 실은 사람에게서 자유와 평화를 앗아 간다 ..  (162∼165쪽)

김규항 님은 <예수전>이라는 책을 비롯해 강연자리나 다른 책에서 빠짐없이 '우리 마음속에 깃든 이명박(또는 대운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저어기 노옾으신 자리에 궁뎅이 붙이고 있는 양반 한 사람한테 손가락질을 한다고 풀리는 우리 삶터 말썽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옳게 가꾸며 아름답게 일구어야만 풀리는 우리 밝은 앞날이라고 힘주어 거듭 말합니다. 이는 권정생 님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을 비롯한 모든 책에 어김없이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권정생 님뿐 아니라 이오덕 님이나 이원수 님도 늘 펼치던 이야기요, 송건호 님 글이나 리영희 님 글이나 성내운 님 글에서도 한결같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게을러서 가난뱅이가 되었'으니 '내가 부지런해야 부자가 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가난이든 넉넉한 살림이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으면 좋은 삶'이라는 소리이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몫을 다 하면서 아름다움을 이웃들과 꽃피우면 좋다'는 소리입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어 낸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늘 즐겁고 아름다이 붙잡는 바탕이 먼저 튼튼하게 서 있은 다음에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든 백 해나 즈믄 해에 걸쳐 세상을 바꾸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다음 혁명을 외치든 개혁을 말하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맑은 길을 찾고 밝은 꿈을 품으며 고운 넋을 건사하면서 정치를 하든 학문을 하든 운동을 하든 문학을 하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 구원은 가진 게 없는 사람, 가진 것을 스스로 모두 비운 사람들만의 것일 수밖에 없다 ..  (114쪽)

<예수전>을 다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김규항 님은 사람들한테 당신 책을 다시금 천천히 읽어 주기를 바라지만, 천천히 다시 읽어 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두 번째 예수전'과 '세 번째 예수전'을 더욱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네 번째 예수전'과 '다섯 번째 예수전'을 더더욱 낮은 매무새로 조곤조곤 들려주면 넉넉할 테고, '여섯 번째 예수전'과 '일곱 번째 예수전'은 훨씬 더 다소곳하면서 쉽고 부드러운 우리 말글을 한껏 빛내면서 수수하고 풋풋하게 나누는 길을 찾으면 되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예수전

김규항 지음, 돌베개(2009)


#책읽기#예수전#김규항#종교책#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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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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