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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설날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길'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살았던 고향으로 갑니다. 이번 설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오는 가운데도 다들 고향을 찾았습니다. 고향을 이렇게 찾는 이유는 부모님과 형제, 친척, 동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이 있습니다. 집에서 하루밤을 자면서 부모 형제 그리고 동무들과 옛 추억을 떠올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그런데 고향 집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이 오래되어 새로 지었거나, 댐이 만들어져 수몰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이 불탄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자라고 태어난 옛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새 집을 짓는 바람에 이제 사진 한 장 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옛집이 사라지고 없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4년 전에 전기 누전으로 불탔습니다. 내가 그 집을 처음 본 것은 1997년 8월 29일이었습니다. 신혼 여행을 다녀온 후 아내가 자기가 살던 옛집을 소개해준다면서 데리고 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던 옛집과 많이 닮아 보는 순간 10년을 살았던 초가집이 떠올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옛집을 기억나게 해주었고, 아내 채취가 풍기는 집이라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도 아파했지만 나 역시 마음 한쪽이 아려왔습니다. 스물다섯 살까지 살았던 집이 하루아침에 다 타버렸기 때문에 보면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 아내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설날을 맞아 처가에 왔는데 아내와 나들이를 갔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불탄 옛집에 가고 싶다면서 발길을 옮겼습니다. 처가에서 옛집까지 걸어 10분이면 가는 길인데 4년 만에 첫 걸음을 했습니다. 13년 전 처가에 처음 왔을 때는 논이었던 곳은 건물들이 다 들어섰습니다. 아내가 뛰어놀았던 놀이터. 작은 개울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불탄 옛집도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뛰어놀았던 골목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이 불탔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타지 않아 집 형체는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 그런지 이곳저곳이 다 허물어졌습니다. 아래채를 보던 아내는 텔레비전 탁자가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4년 전 불탄 아내가 살았던 집 아랫채 모습. 불탄 흔적이 이곳저곳에 보입니다. 텔레비전을 놓았던 탁자가 보입니다.
4년 전 불탄 아내가 살았던 집 아랫채 모습. 불탄 흔적이 이곳저곳에 보입니다. 텔레비전을 놓았던 탁자가 보입니다. ⓒ 김동수

"여보 텔레비전 탁자가 그대로 있어요."
"텔레비전이 아랫채에 있었어요."
"아니요 윗채에 있었는데. 누가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 같네요."
"당신은 어디서 잠을 잤어요."
"윗채에서요. 아랫채는 자고 싶을 때 한 번씩 잤어요."
"생각보다 집이 많이 안 탔네요."
"그래요. 옛날 모습이 남아 있어요."

 주인없는 집 풀만 무성하고 자랐습니다.
주인없는 집 풀만 무성하고 자랐습니다. ⓒ 김동수

마당에 풀이 하늘만큼 자랐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풍기는 숨결이 굉장한 것 같습니다. 2002년까지는 처남 가정이 살았는데 계속 살았으면 불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집이 이렇게까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인데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는 추억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군불을 많이 지펴서 잠을 자다가 불에 발꿈치가 데여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아직도 그 때 흉터가 남아있어요."
"군불을 얼마나 땠으면 살이 데일 수 있어요."
"할머니가 춥다고 불을 땠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그 때는 병원도 가지 않았어요. 생각하면 하면 아찔하지만 그리울 때도 있어요. 기름보일러가 있어도 장작으로 군불을 때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
"당신 벌써 할머니가 다 되었군. 뜨거운 구들을 더 좋아하다니.""아니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면 아침에 얼마나 개운한지 몰라요."

마당 한 쪽에는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지금도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 물은 정말 시원합니다. 요즘도 한 번씩 여름이면 등목을 하는데 감기가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살았던 집 우물은 작은 흔적만 남았을 뿐 메말랐습니다. 우물도 사람이 살지 않으니 막혀버리는 것 같습니다.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우물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우물 ⓒ 김동수

"우물이 있네요."
"아빠가 판 우물이예요. 1년에 한 번씩 우물 청소를 했는데 내려 가본 일도 있어요."

"물은 많았어요."
"그럼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우물 물 맛이 좋다고 정말 인기가 좋았어요."
"우리 집 우물 물은 차가워 여름에 등목을 못할 정도였어요."

"우리 우물 물을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지만 물 맛은 정말 좋았어요. 사람이 살지 않으니까 우물도 말라 버리네요. 아빠가 판 우물인데."

대문을 나오면서 아내가 이 문을 얼마나 들락거렸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옛날에는 대문이 있어도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대문을 열어두면 누구나 오고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습니다. 현관문을 열어 둔 집은 없습니다. 우리 집도 3년 전 추석 때 밤손님을 한 번 맞고 나서 아내가 문을 얼마나 채비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각박해졌습니다.

 대문은 온데간데 없고, 주인없는 집은 다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대문은 온데간데 없고, 주인없는 집은 다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 김동수

아내 채취가 남아 있는 집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돌았습니다. 하지만 골목길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콘크리트 건물만 들어섰습니다. 아내가 큰 나무를 보더니 왜 나무가 저렇게 작아졌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아니 나무 둘레도 줄어들어요. 옛날이 나무 둘레가 엄청나게 컸는데."
"나무 둘레가 어떻게 줄어들어요. 나무는 그대로 있어요. 당신이 키가 컸기 때문이지. 생각해보세요. 초등학교 운동장이 굉장히 넓었는데 요즘 보면 굉장히 좁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그 때는 엄청나게 컸는데. 지금은 아니네.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더 외롭게 보여요."

 아내 동네 어귀에 있었던 나무 가지가 다 부러져 처량할 정도로 외롭게 서 있습니다.
아내 동네 어귀에 있었던 나무 가지가 다 부러져 처량할 정도로 외롭게 서 있습니다. ⓒ 김동수

앙상한 가지만 나무를 보니 왠지 마음도 앙상하지는 것 같습니다. 주위에는 아스팔트로 다 막아버렸습니다. 이렇게 둘 바에 나무를 베어 버리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나무 밑에서 뛰어놀았던 아내 모습이 그려집니다. 개울이 있었는데 개울도 막아버렸습니다. 흐르는 개울에서 발을 씻으면서 동무들과 재잘거렸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것 같다는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쓸쓸했습니다.


#아내집#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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