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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에게 홀아비 오빠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잔소리의 소재가 되는 것 같다.
 누이에게 홀아비 오빠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잔소리의 소재가 되는 것 같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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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누이는 애린하다. 그 이름만으로도 슬플애자가 절로 자꾸 그려진다. 시집간 누이라니, 이게 뭐냐, 그놈의 시집 안 갈 수는 없었던 것이냐. 안 가면 안 되는 것이었던 거야? 그래, 억지다. 괜한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쯤은 부려보고 싶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도 애린한데, 쫓겨났다고 해야 하나, 그냥 집을 나갔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제 몸을 빌려 나온 새끼들을 내버리고 떠났던, 떠나야만(?) 했던, 이중 삼중으로 애린해져 버리는 그런 누이가 왔다. 얼굴을 보니 우선은 반갑고,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시선을 마주치기가 두려워서 외면하고 나니 그냥 한 대 쥐어박고도 싶고, 뭐 그렇다.

시집간 누이를 대하는 오라비의 심사가 이렇다면, 시집간 딸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 삼천 년이나 전에 말라버린 우물 바닥처럼 금방 뭔가가 드러나 버릴 듯이 아슬하고 위태하지만,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니 어쩌면 불행스럽게도, 어머니의 눈은 화장지도 손수건도 오래 전에 다 소진되어 버렸다는 듯이 끔뻑끔뻑, 방금 전에 파리를 잡아먹은 두꺼비도 저렇게까지 태연하지는 못하겠다 싶게 아무런 깊이도 색깔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모르겠다는 표정이다가 이름을 듣고서야 "오, 너냐. 왔냐"하시는 어머니. 아, 참 좋기도 하다. 치매라는 것은. 기억을 선별해서 꺼내고 싶은 것은 꺼내고, 묻어 버리고 싶은 것은 내치는 것이 치매라면, 이것은 질병도 장애도 아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정리하는 게 옳을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 하나가 꿈틀거리기도 한다.

"아니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딸년'은 오랜만에 대하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주물주물 무슨 빨래라도 하듯이 주물러대다가 얼굴을 두 손으로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눈이 무슨 연못이라도 된다는 양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골골이 패인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하나하나 더듬다가 절반도 넘게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기가 막히다는 듯 쓸어보다가는 불쑥 제 오라비를 노려보며 기어이 한 마디 토해놓는다.

"아니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어찌 아냐."
"오빠가 모르면 누가 알아?"
"허허 참 내, 지랄하고 있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가고, 뒤를 이어 피시, 피식, 웃음소리도 아니고 비웃는 소리도 아닌, 무슨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잇따라 내 입에서 터지는데, 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슬쩍 외면한 채로 다시 어머니의 손을 주물러댄다. 그제야 어머니는 뭔가 생각이 돌아온 듯 "그놈이 시방도 너를 때리고 개지랄 헌다냐?" 불쑥 한 마디 하신다. 그러나 대답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듯 무연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이나 응시한다.

보다 못한 내 입에서 "밥이나 먹자" 소리가 나오고, 밥을 먹은 뒤에는 "떡이나 먹자" 소리가 나오고, 떡을 먹은 뒤에는 "사과나 깎아 먹자" 소리가 또 나온다. 이러는 나 자신이 문득 어이없다 싶어서 짐짓 엄숙한 표정에 엄숙한 목소리로 "어떻게 사냐" 이 한 마디를 겨우 토해놓았다. 다 늙은 오누이가 마주앉아 신경전도 아니고 뭣도 아닌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어머니는 간간이 "그놈이 시방도 너를 때리고 개지랄 헌다냐"하신다.

오라비란 누이에게 '잡아먹기' 딱 좋은 그 무엇

어머니의 '딸년'에 관한 기억은 아마 거기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그 '딸년'이 낳은 새끼들도 셋이나 되건만, 어머니 당신이 손녀딸들을 품에 안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했건만, 그런저런 섬세한 기쁨들을 다 어디에 버려 버렸는지, 빼앗겨 버렸는지 어머니는 오직 하나 "그놈이 시방도 너를 때리고 개지랄 헌다냐" 이 한 마디에서 나아갈 줄을 모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손수레 하나 놓고 커피며 토스트 같은 것들을 판다고, 자릿세가 장난이 아니어서 매달 그놈의 자릿세 벌어주는 것이 그만 직업이 되고 말았다는 누이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어머니에게는 아무 중요할 이유가 없는 모양이다. 오직 "그놈이 아직도 너를 때리고 개지랄"하느냐 아니냐, 이것이 중요할 뿐이다.

"뭔놈의 집구석이 옷가지 하나 걸어놓을 자리는 없고, 오빠는 지금도 책벌레나 해? 먹을 것도 안 나오는 책들은 무슨 보물이라도 된다고 저렇게 많이 쌓아놓고, 그리고 비디오는, 오빠 무슨 비디오 가게 했었어? 아니면 할 거야? 요새 누가 비디오를 본다고? 고물장사도 안 가져가겠다. 귀신 나오겠네, 정말."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아니 어쩌면 시간이란 마술사의 손을 거친 환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재회의 감격도, 아픔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모두 거쳐낸 뒤의 누이는 이제 드디어 제 오라비를 공격해대기 시작한다. 오라비에게 '마누라 같은 것'이라도 있다면 저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겠지만, 공격거리가 오히려 존경의 거리로 승격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마누라도 없는 오라비란 누이에게 있어 '잡아먹기' 딱 좋은 그 무엇일 뿐이다. 그 앞에서 오라비란 사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딱 하나, 이것이다.

"야, 너 가라. 얼른 가야."
"하이고 참 내, 할 말이 그렇게도 없지?"

그러고 보니 그렇다. 할 말이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나. 그런대로 제법 꼿꼿하게 살아왔던 내가 지금 어디로 어떻게 처박혀 버린 것인가? 갑자기 누이가 괴물 같다. 저 괴물이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난 것인가.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겠다. 내가 나를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나를 공격하는 누이의 허점을 찾자는 것인지 어쩌자는 것인지 하여튼 입을 꾹 다물고 녀석의 하는 짓이나 지켜보고 있는데 그것 참, 가관이 아니다. 무슨 빚쟁이라도 되는 양, 상급 기관의 감사관이라도 되는 양 집안을 구석구석 살피고 다니는가 싶더니 여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듯 부엌에서 떡 자리를 잡는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싱크대에 붙은 서랍을 일일이 하나씩 다 열어보고, 개수대며 가스기구 같은 것들을 죄다 한 번씩 훑어보고는 감사결과를 내놓듯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이것이 다 뭐여. 이것이 사람 사는 집이여?"

여태까지 잘도 해온 표준말을 포기하고 전라도 사투리 모드로 들어가는 누이, 내가 아무래도 크게 잘못 걸린 것 같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를 지적하면 변명이든 항의든 뭔가 할 말이 있겠는데 누이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도 없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크게 한 판 붙거나, 아니면 나는 죽었네, 하고 그만 방으로 들어가 버려야만 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말도 있듯이, 그동안 내가 해온 부엌살림이라는 것이 썩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만 후자 쪽으로 정리하고 말았다.

한 시간 동안 100번 넘게 "자자"를 말씀하신 어머니

누이는 텔레비전 연속극을 본다는 핑계로 혼자서 속을 삭히는 눈치인데, 자자, 얼른 자잔 말이다. 보채고 또 보채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딸년'이 미워서 뒤로 물러앉은 어머니
 누이는 텔레비전 연속극을 본다는 핑계로 혼자서 속을 삭히는 눈치인데, 자자, 얼른 자잔 말이다. 보채고 또 보채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딸년'이 미워서 뒤로 물러앉은 어머니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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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얼마나, 불안한 심사로 부엌에 귀를 기울인 채 보이지도 않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멍하니 응시하고 있기를 얼마나 했던가. 그동안 저 혼자서 뭐라고 수백, 수천 마디나 내 험담을 하고, 살림을 아예 때려부실 듯이 거칠게 문지르고 닦고 씻기를 되풀이하던 누이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에이, 속상해서 못하겠네 그냥" 소리와 함께 고무장갑을 벗어든 채 방으로 들어와 버린다.

"도대체 냄비는 무엇을 얼마나 맛나게 해 먹었기에 타고, 또 타고 바닥이 아예 누룽지 공장이 되었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아 그거. 감자 찐다고 불 켜놓고 밖에서 뭣 좀 하고 들어오니 타 버렸더라. 숟가락으로 긁어도 잘 안 긁어지고, 그래서 그냥 썼던 것인데, 또 타고, 하여튼 뭐 냄비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건 아니란 말이거든. 그래서 그냥 써온 것이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잘못된 거냐?"

나는 짐짓 호기롭게 지껄여 보지만, 누이는 이미 대화를 포기했다는 눈치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피식, 소리나 한 번 내고는 텔레비전 채널을 바꾼다. 연속극이다. 나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누이는 평소에 아마 그것을 즐겨 봐 왔던 모양이다. 한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물럭거리면서 연속극에 빠져드는 누이의 표정이 제법 복잡하다. 짐짓 연속극에 빠져드는 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냄새가 짙게 배여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과 딸내미가 무슨 신경전을 벌이고 있건 당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느닷없이 잠을 자자고 하신다. 연속극을 보고 있는 '딸년'의 옆구리를 살살 찔러가며 "자자" 한 마디 하시더니 잠시 뒤에 또 "얼른 자자" 하시고는 또 조금 있다가 "아이 얼른 자잔 말이다" 하시는 거였다.

그 간격이 길면 일 분, 짧으면 십 초나 이십 초쯤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연속극 한 편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적어도 백 번은 "자자, 얼른 자자, 나란히 누워서 자잔 말이다" 소리를 하고 있었고, 끝내는 토라져서 '딸년'이 잡아준 손도 뿌리치고 뒤로 물러 앉아서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는 다시 "얼른 자잔 말이다" 그러신다.

누이의 손이 거치자, 다른 집이 되었다

아들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나로서는 놀랍고, 신기하고, 그리고 낭패스럽기까지 해서 입을 쩍 벌린 채로 그저 보고나 있었지만, 누이는 마치 보채는 어린아이라도 달래듯이 "알았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이고 애통 터져 죽겄네, 얼른 자잔 말이다"하시는데 누이는 그 뒤로도 "가만 있어" 소리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가는 어느 순간 쓰러지듯이 어머니 옆으로 눕는다 싶더니 이내 정말로 잠이 들고 있었다.

피곤했던 것일까. 그래,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옥천에서 대전으로 갔다가 전주로, 다시 고창으로, 고창에서도 한 번 더 버스를 타야만 하는 아주 길고도 복잡한 여행을 위해서 누이는 아마 새벽같이 길을 나섰을 것이다. 나란히 누워서 잠든 모녀를 바라보는 나는, 나는 아무래도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던 것인지,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와 있었다. 그리고 누이는, 언제 일어나서 그렇게도 많은 사건을 벌였던 것인지 부엌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었다.

내 손으로는 그렇게 닦아도 안 닦아지던 냄비뚜껑이, 솥뚜껑이, 싱크대가, 냉장고가 어찌 그렇게도 누이의 손으로는 잘 닦여졌는지 아주 다른 집 같았다. 간밤에 무슨 우렁각시라도 다녀갔나, 어쩌고 흰소리를 해대는 내게 누이는 흰자위가 온통 드러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눈을 흘기는데 그 모습이 숨 막히게 아름답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제 그만 가봐야 한다고 길을 나서는 '딸년'을 보고서도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인지 "그려, 또 놀러와"하고 마치 이웃집 아낙이라도 대하듯이 달랑 한 마디만 떨구고 만다.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해 버린 것인지, 나로서는 추리를 해보는 것조차도 버겁다.


태그:#모녀, #누이,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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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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