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와 4·11민주항쟁 50주년을 맞이하여 그날의 현장을 사실대로, 그리고 생생하게 표현한 동상이 새롭게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상 퍼포먼스'를 벌인다."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와 4·11민주항쟁50주년행사준비위원회는 17일 오전 마산 3·15의거기념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잊혀진 민중들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해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이 자행한 '부정선거'에 분노해 민중들이 일어난 '3·15의거' 50주년 되는 해다. 3·15의거는 전국적으로 일어난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마산에서는 전시민적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게 4월 11일이었고, 마산사람들은 이날을 '4·11민중항쟁'이라 부른다.
마산시와 3·15의거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은 3·15의거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와 4·11민주항쟁50주년행사준비위원회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15의거 기념탑 앞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청년과 남·녀 학생 등 총 3명이 표현되어 있다.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이 동상이 마산 3·15의거의 상징으로 전 국민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며 "이로 인해 3·15의거를 학생들의 의거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2명의 학생이 검정색 옷을 입고, 얼굴에 검정색 페인트를 바른 뒤 동상 옆에 서 있었다. 강민정(창원 용호고 2년) 양은 몸 파는 여성으로, 임장균(창원 대산고 2년) 군은 구두닦이 소년으로 분장했다. 또 동상 바닥에는 돌멩이가 놓여 있었고, 이들은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
김영만 Corea평화연대 대표는 "당시 학생만 참여한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더 많았다, 지금 동상의 모습을 보면 학생과 인텔리 청년으로 묘사되어 있다"며 "당시에는 돌멩이와 최루탄이 날아오는 상황이었는데, 동상에는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3·15의거 때 소요 주모자로 구속된 사람은 총 28명이었다. 당시 민주당원 5명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20세 미만의 학생화 청년노동자, 무직 청년들이었다.
4·11민중항쟁 때 1000여명이 경찰에 검거되고, 이들 중 32명이 구속되었으며, 35명이 불구속되었다. 이들을 직업별로 보면, 18명은 무직이었고, 공장·품팔이 노동자 15명, 학생 14명, 공업 4명, 행상 3명, 창녀 3명, 이발사 2명, 회사원 2명, 간호사·요리사·식모·세탁업·상업이 각 1명이었다.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당시 자료를 보더라도, 현재 동상에서 학생들의 뒤에 서 있는 인텔리 청년 한 명이 시민을 대표하기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면서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다양한 시민들이 동상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