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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2세 환우를 돕기 위한 '합천평화의집'이 경남 합천에 문을 열었다.
일본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2세 환우를 돕기 위한 '합천평화의집'이 경남 합천에 문을 열었다. ⓒ 윤성효

"올해(2010년)는 경술국치 100주년이되는 해입니다. 해방 후 65년이 흘렀지만 한일간에는 아직도 미해결 과거사가 남아있습니다. 원폭1세대와 2세 '환우'가 이들입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은 물론 사회적·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문제를 함께 하고자 '위드아시아(대표 지원스님, 문수사 주지)'에서는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에 원폭2세 환우를 위한 쉼터 '합천 평화의 집'을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대표와 '위드아시아' 대표 지원 스님의 발언 갈무리

 

오늘(3월1일)은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자주와 독립, 인권과 평화를 외치며 혁명적으로 일어섰던 3·1독립 만세운동 기념일이다. 3·1절을 맞이해 경남 합천으로부터 작지만 소중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과 침략전쟁, 조선인 강제연행 등이 낳은 인류사에 유례없는 비극 원자폭탄 투하와 그곳에서 피폭자가 된 7만 여명의 조선인 피폭자들을 기억하는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원폭투하가 준 비극은 원폭2세환우들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다행히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피해자 및 시민운동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환우들을 위한 쉼터 '합천 평화의 집'이 문을 여는 것이다.

 

식민지 수탈로 인해 삶의 뿌리마저 뽑힌 조선 민중의 도일(渡日), 그리고 이어지는 강제연행과 징용 등으로 1945년 당시 일본에는 236만 여명의 재일조선인이 머물고 있었다. 그중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조선인 7만 여명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의해 피폭당하였고 4만 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원폭2세 환우들

 

나라를 잃고, 토지도 빼앗기고, 거듭되는 가뭄과 홍수, 일제의 착취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선 반도. 현지의 자연 지형과 전통적인 생존방식에 철저히 어긋나는 일제의 수탈적 정책에 삶의 뿌리마저 뽑힌 합천 사람들 역시 점차 일본으로 도항하여 각지의 공장과 일터에서 생계의 수단을 찾게 된다. 합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강제연행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보내진 조선인도 많았다.  

 

간신히 그 불지옥에서 살아남은 3만 명의 조선인 중 2만 3천 여명이 귀국했고, 7천 여명이 일본에 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도 '죽음의 재'로 불리우는 방사능이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장기간 도심에 남아 인체를 습격한 결과, 수십 년에 걸쳐 후유증으로 고통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원폭 투하 후 일본으로부터도, 한국 정부로부터도 방치된 채 살아온 탓에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당사자는 물론 그 자녀 세대로 빈곤과 질병, 차별과 소외 등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 연구 사업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특히 합천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 2~3세들의 질병율은 유난히 높았다. 또 유사한 형태의 질병군이 상당수 관찰되었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원폭피해자 복지시설인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운영 대한적십자)조차도 현재로서는 직접 피폭자인 1세대만을 위한 요양시설이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자활이 불가능한 시각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2세들, 병마로 인한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생활에 곤란을 안고 살아가는 2세들을 위한 공간은 지금까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원폭2세 고 김형률씨는 2003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했다. '2세환우회'를 설립한 그는 국가에게 정확한 실태조사를 요청했고, 2세들에 대한 건강검진 및 의료·생계 지원 확대 법제화가 시급함을 언급했다. 또 원폭2세 환우들을 위한 쉼터 및 반핵평화박물관 건립 등을 요청하는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2005년 미처 꿈을 다 이루지 못한 채 평생 짊어져온 병마로 인하여 숨을 거두었다.그러나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생존 당시 60여 명이었던 환우회의 회원은 2년 전인 2008년 500명을 넘어섰으며, 1일 드디어 작은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국회에서 원폭피해 특별법이 꼭 통과됐으면 한다"

 

'합천 평화의 집' 건립에는 인도와 베트남, 중국 조선족, 라오스 등 아시아 각국에 국제적 구호와 나눔의 손길을 이어온 국제구호단체 '위드 아시아'가 앞장섰다. 또 지난해부터는 합천 일대 현지조사 및 준비 활동에 마라도 기원정사의 주지 혜진 스님을 비롯, '한국원폭2세환우회'(대표 한정순)와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한홍구, 강제숙) 그리고 합천 현지의 군의원과 뜻있는 주민들이 참여했다.

 

1일 낮 12시부터 열린 개소식에는 합천 주민과 원폭피해자들, 원폭2세환우들, 일본에서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시민운동가들, 대구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 이용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120여 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개소식을 마친 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대표는 "환우분들이 모여서 쉬어가는 공간, 속을 풀어놓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올해는 꼭 국회에서 원폭피해자와 2세 환우들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위드 아시아'는 앞으로 '합천 평화의 집'을 거점으로 시민과 원폭2세환우들을 연결하고 2세환우들의 복지에 힘쓰면서, 점차 실제로 아픈 환우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치요와 전문요양을 받을 수 있는 전문시설을 건립해 나갈 계획이다.

 

아직은 국민 대다수가 잘 모르고 있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들의 삶. 지원 스님은 "이곳이 시민들에게 한국 원폭 2세 환우의 문제를 알려나가는 사랑방이자, 실제로 2세 환우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10일, 국회에서는 '원자폭탄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된 바 있다. 원폭2세환우와 원폭피해자 그리고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이토록 어려운 조건 속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 중인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합천평화의집#원폭2세환우#삼일절#경술국치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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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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