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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영식님, 일식씨, 이식군, 삼식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하루에 한 끼도 밥을 먹지 않고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는 남편은 '님'이라는 존칭까지 써가면서 높여주고,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 아내를 힘들게 하는 남편을 '이'라는 말로 비꼬았습니다. 이런 말이 유행한 것은 그 만큼 가사 노동이 힘들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라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13년 동안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기 때문입니다. 1년에 밖에서 밥을 먹는 날이 한 달이 되지 않습니다. 330일을 집에서 하루 세 끼를 먹는 것도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13년 동안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이 바로 접니다.
13년 동안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이 바로 접니다. ⓒ 이종찬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끼니마다 새 밥을 먹는 것입니다. 식은 밥은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아침·점심·저녁 새 밥을 해달라는 남편 정도면 심장이 두 개는 되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아내도 차츰 습관이 되었는지 귀찮다는 말은 했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집 밥솥은 일반 압력밥솥이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밥을 하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한 순간 정신을 다른 곳에 팔면 밥을 태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집이 여름에는 워낙 더워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면 더 덥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밥을 하는 아내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으니 어처구니없고 속된 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압력밥솥. 아내는 이 밥솥으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밥을 했다. 이런 밥솥을 13년 동안 4개나 샀다.
압력밥솥. 아내는 이 밥솥으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밥을 했다. 이런 밥솥을 13년 동안 4개나 샀다. ⓒ 김동수

밥만 새 밥이 아닙니다. 국도 새로 끓여야 했습니다. 이제 심장이 세 개는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남편이면 삼식이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일을 13년 동안 해왔습니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해 먹으니 밥솥을 13년 동안 4개나 구입했습니다. 아직도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살아있는 것을 보면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전기압력밥솥을 샀습니다.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해보니 일반압력밥솥보다는 밥맛이 없었고, 전기가 많이 소비(1100w)되기 때문에 아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전기압력밥솥에 하고 평소처럼 압력밥솥에 밥을 했습니다. 아내에게 입으로는 전기압력밥솥을 샀으면 사용해야지 모셔두면 무엇하느냐고 타박을 했지만 속으로는 일반압력밥솥보다 밥맛도 떨어지고, 전기가 아까워 아내에게 고마웠습니다.

전기압력밥솥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사용하던 아내가 겨울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압력밥솥을 사용하는 것이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밥도 아침에 해놓고 그것을 저녁까지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밥맛이 별로 없어 아내에게 물었더니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저녁까지 먹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일반압력밥솥은 밥을 매끼마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 밥은 정말 맛있습니다. 그것에 한 번 물든 입은 담배를 피워 본 일 없지만 담배를 끊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해 여름에 산 전기압력밥솥. 아내는 요즘 이 밥솥으로 아침에 밥을 하고 저녁까지 먹는다
지난 해 여름에 산 전기압력밥솥. 아내는 요즘 이 밥솥으로 아침에 밥을 하고 저녁까지 먹는다 ⓒ 김동수

어제였습니다. 새 밥을 해주지 않는 것에 섭섭함은 있었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그냥 넘어갔는데 점심을 먹다가 왜 새 밥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저녁에 새 밥 해 줄 것이니 지금은 그냥 드세요"라는 말을 하던 아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했습니다.

"주는 대로 드세요."
"…!"
"주면 주는 대로 먹으면 될 것을 왜 자꾸 그래요?"
"아니 밥 맛이 없으니까."
"그럼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해야 돼요. 다른 집은 이러지 않아요."
"전에는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새 밥 해주었는데 요즘은 안 그러잖아요."
"전기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면 저녁까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끼니마다 밥을 해달라면 어떻게해요?"
"아니. 밥이..."
"아니는 무슨 아니. 아침에 전기압력밥솥으로 밥을 해놓으면 점심과 저녁 때 밥하는 걱정 안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리고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면 가스레인지에서 국도 끓이고, 다른 것을 조리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요. 압력밥솥으로 하면 다른 것 하나밖에 못하잖아요. 그리고
요즘에 하루 세 끼 챙겨주는 아내가 어디 있어요?"
"맞아요. 당신 같은 아내가 없지요."
"알았어요. 나중에 새 밥 해 드릴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루 세 끼 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우리 집에서 그것은 고역이었습니다. 별로 도와주는 것도 없으면서 밥만 해 달라고 했으니 참 겁 없는 남편이었고, 무심한 남편이었습니다. 13년 동안 하루 세 끼를 새 밥만 찾은 남편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니 기적입니다. 아마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아내 생일을 13년 동안 챙겨준 덕분이 아닌지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여보 13년 동안 하루 세 끼 밥 해준다고 고맙습니다. 힘들었지요. 당신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그래도 새 밥은 맛있어요. 사랑합니다.


#밥#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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