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앉아서, 나는 엎드려서 영화를 보는 중인데 밖에서 마루가 짖어댄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짖을 때와 찾아온 사람을 보고 짖을 때의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마루 녀석에게 길이 들여졌다고나 해야 할까. 낯익은 사람을 보고 짖을 때와 낯선 사람을 보고 짖을 때의 소리가 다르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누가 왔나 보다, 누굴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화에 빠져 있었던 나는 모르는 채 무시하고 영화에 계속 몰입하고자 하는데 어느 순간 아아 참 그렇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일어서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 작년 11월에 결혼한 제수씨가 온다고 했었다. 막내아우가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 신분인 까닭에 지난 설에는 못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제수씨의 아버지가 환갑이라서 혼자 친정을 갔는데 올라가는 길에 어머니를 뵙고 간다고, 목포에서 지금 출발하면 한 시간쯤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는데 어마, 이게 어쩐 일인가. 제수씨의 친정어머니께서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앞장을 서시고 그 뒤로 제수씨가 양 손에 하나씩 또 다른 꾸러미를 들고 따른다. 전화로는 그저 떡이랑 생선이랑 그런 저런 것들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 정도였는데 이게 어쩐 일인가.
꾸물거리다가 늦게 나간 탓으로 막내아우의 장모님, 그러니까 사돈께서는 벌써 마당을 가로질러 문 앞에까지 오셨다. 문을 열자마자 5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시선이 딱 부딪히고 말았다. 멋대로 헝클어진 매무새를 고치고 어쩔 겨를도 없이 황망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얼결에 손을 내밀어 스티로폼 상자를 받아들었는데 하늘이 그만 노래져 버린다.
상황이 너무 낯설다. 임기응변, 능수능란,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런데 나는 영 그런 것들이 안 된다. 안 나와준다. 이렇게도 황망하게, 그야말로 졸지에 안사돈과 바깥사돈이 외부의 무슨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데도 아니고 집에서,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로 바깥사돈이 안사돈을 맞이하는 그림을 꿈에서나 그려 보았던가. 그 어떤 소설에서나 읽어 보았던가.
제수씨는 그 댁의 큰딸이고, 막내아우는 그야말로 막둥이, 그러니까 내게는 아들 같은 녀석이다. 자신의 장모님께서 태어나신 연도가 큰형과 같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민망하게 웃던 막내아우를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갑내기, 사돈이라는 글자만 빼 버린다면 그저 반가운 친구로 맞이할 수도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붙어 있는 사돈이라는 글자를 빼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이 내게 이런 것들을 가르쳤던 것일까. 사돈이란 어려운 관계라고, 어려운 관계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동생의 장모님이라고, 누가 무엇이 왜 그런 것들을 내게 가르쳤던 것인가. 아니다. 굳이 원망할 대상을 찾기로 하자면 제수씨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통보도 없이, 그야말로 불쑥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와 버린 제수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추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간단하지가 않다. 결혼식 전에 어머니를 뵙고 이불이랑 한복이랑 이를테면 혼수를 전해드린다고 제수씨가 혼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제수씨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왔다가 금방 가게 되어 죄송하다면서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서둘러 일어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기다리는 사람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다.
어머니? 어머니라면 나와는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관계나마나 함께 들어오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인가? 그런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영 판단이 안 섰다. 아무튼 제수씨의 말로는 그랬다. "뻘쭘하잖아요." 아 그래, 그놈의 뻘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왜 뻘쭘해야 하는 거지? 이런 의문이 고개를 쳐든 것은 엄벙덤벙 어떻게 제수씨와 헤어지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서였다. 아무래도 섭섭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등등 마음이 어지러워서 제수씨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제수씨 나빠요. 그러면 못 써요. 내 살림이 홀아비에 홀어미 궁상을 떨고 있어서 창피한가보다 그리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때 제수씨는 죄송하다고, 진심이 묻어나는 답을 보내왔는데, 그런데 그 뒤로 백여 일이 지난 오늘, 그날의 문자 한 줄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쳐버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야, 제수씨, 너 이래도 되는 것이냐. 성질(?)대로 하자면 이렇게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제수씨의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수씨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내가 없는 살림에 무엇을 어쩌니 저쩌니 준비를 하느니 마느니 부산을 피울 게 뻔한 까닭으로 그냥 밀어붙이기로 한 것일 터이었다.
그리고 사돈양반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신의 큰딸과 짝을 맺은 사위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든 계기를 만들어서 한 번은 대면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조차도 있었을 것이다. 사위될 사람의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을 한다는 사실 정도야 알고 있었다지만, 어쨌든 상견례도 없이 결혼 날짜를 잡았고, 결혼식장에서조차 만나볼 수 없었던 사돈에 대한 궁금함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따지고 보면 상황을 이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어머니가 하필 막내아들 결혼식 즈음에 일어서지도 잘 못하는 등 최악의 상태였다고, 이런 변명 아무리 해봐도, 꼭 그렇게 어머니의 불참 쪽으로 정리를 했어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 것이다. 게다가 친척들은 그때 업어서라도 모시고 가야 한다는 쪽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갈라져서 갑론을박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발휘해서 이렇게 매정하게 정리를 했던 것이다.
"예식장은 화려하되 공기는 별로 안 좋습니다. 최악의 경우 어머니가 식장에서 쓰러진다는 가정까지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웃음만 있어야 할 예식장이 졸지에 눈물로 가득 차 버리지 않겠어요."
이렇게 해서 양가 어머니의 상면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실망을 나는 그날 제수씨 어머니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눈도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로 엄벙덤벙 어떻게 예식을 끝내고 말았다. 고생하셨다는, 수고하셨다는 그런 인사말 한 마디 건넬 시간조차 내지 못한 채로 도망치듯 돌아온 뒤에는 전화로나마 인사를 드려야지, 드려야지 하면서도 오늘 내일 미루기만 하다가 기어이 사돈댁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게 된 것이었다.
어디 땅 속으로라도 숨어들고 싶은 내 마음을 사돈께서는 아마 금방 눈치를 채셨나 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인사를 밖에서 잠시 나누고, 책이며 양말짝이며 수건 같은 것들이 뒤섞여진 채로 뒹구는 까닭에 나 자신도 차마 선뜻 들어서기가 어려운 실내를 손으로 가리키며 들어가시자고, 꼴에 부끄러운 줄은 알아서 큰소리도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청을 하는데, 고맙게도 사돈께서는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와 주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에 만일 사돈께서 영점 영영일초라도 '뻘쭘한' 기미를 보이셨다면 나는 아마 나도 모르겠다고 도망을 쳐 버렸을 것 같은데, 어쨌든 사돈께서는 스스럼없이 들어와 주셨다. 그런데 막상 방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나니 이게 아, 소리만 내부에서 마구 터질 뿐 뭔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정작 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어머니는 그저 벙긋벙긋 웃고만 계신다. 아, 엄마, 엄마, 나 어떻게 해? 눈으로 제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어머니는 나도 몰라, 하는 듯이 며느리가 꺼내놓은 예식장에서의 사진들을 보며 "오매, 얘가 우리 막둥이 같은디, 영낙없이 닮았네"하실 뿐이다.
그때 문득 내 입이 절로 열리는데, "막둥이 맞아요. 엄마가 돼 가지고 아들도 몰라보고 뭐여?" 이렇게 짐짓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며 싱글싱글 웃어대고 있었던 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바보 같지만, 그때는 죽음의 직전에서 살아난 기분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어머니는 그날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응, 그려어? 막둥이여? 근디 옆에 이 여자는 누구여?"
"아따 참말로, 막둥이 색시, 엄마 며느리, 아 방금 옆에서 엄마에게 떡도 주고 산자도 주고 그랬잖여. 여기 이 분은 며느리의 어머니, 그러니까 사돈양반이시고. "
"오매 그려어? 아따 고생하셨소 이. 그런디 우리 아그들은 결혼도 다 즈그덜이 알아서 하고, 떡이 참 달고 맛나네. 이것이 모찌 같은디?"
백 리도 넘는 마라톤 코스를 백 미터 달리기 정도로 순식간에 축소시켜 버린다고나 할까. 여기서 저기로 금방 넘어가 버리는 어머니의 일방적인 화법이 나는 내심 미안스럽고 당혹스러운데, 그런데 사돈께서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벌써 헤아리고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자녀들이 모두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도 하고 제 갈 길을 찾았다는 말씀이시네요. 맞아요. 우리 사위만 해도 자립심이 상당해요. 제가 인정해요."
사돈께서는 그렇게 열심히 막내아들을 칭찬하고 계시지만, 어머니의 관심사는 벌써 아들을 떠나 사돈께서 손수 풀어놓은 선물에 집중해 있다. 어찌나 말랑말랑한지 손으로 잡기만 해도 소화가 벌써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찹쌀떡이며,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는 바삭바삭한 유과 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선물 하나하나가 다 어머니에 대한 사돈의 깊은 마음이 배여 있다. 그저 의례적인 선물이라면 어머니의 치아 상황 같은 것은 고려할 필요 없이 아무 것이나 보기에 좋은 것만을 취했을 테니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이제 가셔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질 즈음부터 나는 다시 좌불안석, 죄인의 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드려야만 할 것 같은데, 그래야만 내가 살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는 물건이 없는 것이다. 차나 한잔 달랑 대접하고 마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의 예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내심 허둥거리고 있는데 문득 옥천에 사는 누이가 먹고 싶다고, 보내 달라고 한 봄동 생각이 난다.
마당 도처에 파릇파릇 노랗게 자라고 있는 봄동이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내 입에서 "제수씨 봄동 좀 가져갈래요?" 소리가 나오는데, 그런데 무정한 제수씨는 젊은 여인 특유의 깔끔함이 작동했는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아니에요, 아니에요" 손사래까지 쳐가며 거절을 한다. 그러자 사돈께서 그 무슨 방정이냐는 듯 "너는 봄동이 얼마나 맛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냐" 하시는데 그 순간 내 마음은 마치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즉시 사면통보라도 받은 듯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세대 차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수씨는 아주버니를 굳이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거절을 한 것이겠지만, 정작 아주버니에게는 거절당한 자로서의 애달픈 원망이 안개처럼 깔릴 수도 있다는 데까지는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그런데 그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금방 아시는 것이다. 주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것을 받아주었을 때의 충만감을.
그로부터 벌써 여러 날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그날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 가슴의 성격을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