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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2009년 12월 18일 오후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검찰수사관들에게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2009년 12월 18일 오후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검찰수사관들에게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여야 정치권의 이목이 서초동 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역대 총리로는 처음으로 뇌물 수수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이 8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소 전부터 피의사실 유포 등을 둘러싼 장외 설전을 펼쳤던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이 이제는 법정으로 무대를 옮겨 물러설 수 없는 공방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미 서울시장 출마 뜻을 밝힌 한 전 총리의 재판 결과는 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최대 변수로 꼽힌다. 법원의 유무죄 판단에 따라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의 판도가 급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한 전 총리 지지파는 1심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한 전 총리를 범야권의 단일 후보로 세우려는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최종 확정 판결은 아니더라도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채 선거전을 치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죄 판결이 나온다면 '표적 수사' 논란과 함께,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와 지방선거가 맞물리면서 여권이 거센 역풍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찰과 변호인은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진술의 신빙성,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돈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는지의 여부, 한 전 총리의 공기업 사장 인사 개입 여부 등 쟁점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쟁점 1]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 믿을 만한가

이번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곽영욱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이다.

곽 전 사장은 지난 2006년 12월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대한석탄공사 사장에 임명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원 한푼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뇌물 사건의 특성상 뇌물 공여자의 진술 외에 계좌 추적 자료 등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물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한 법정 공방이 오고갈 수밖에 없고 결국 재판부가 어느 쪽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보느냐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증인 심문을 통해 곽 전 사장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와 진술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서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총리 공관에서 돈을 전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27명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변호인측은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등 7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중복 신청자를 빼더라도 양쪽이 신청한 증인만도 31명에 이른다.

11일에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15일에는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17일에는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19일에는 이국동 전 대한통운 사장, 24일에는 이원걸 전 산업자원부 2차관, 26일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루어지고 29일에는 피고인인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신문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특히 오는 22일 실시될 총리공관 현장 검증은 이번 재판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사장은 총리공관에서 한 전 총리에게 직접 2만 달러와 3만 달러가 든 봉투를 전달했다고 했지만 한 전 총리 측은 여성 옷의 특성상 주머니가 없고 핸드백은 수행비서가 가지고 있어서 돈 봉투를 받아서 숨길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조광희 변호사는 "총리 공관의 구조나 한 전 총리의 동선 등을 고려해 볼 때 그곳에서 돈을 주고 받기는 불가능하다"며 "현장 검증을 통해 당시 한 전 총리가 입고 있었던 옷 등 증거 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쟁점 2] 한명숙-곽영욱 돈 주고받을 만큼 친했나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돈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는지도 쟁점 중 하나다.

검찰은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뇌물 수수의 유력한 정황 증거로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이미 공소장을 통해 1998년께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가 운영하는 여성단체 행사 경비를 후원하면서 인연을 맺은 후 함께 식사하거나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공기업 사장 자리를 청탁할 만큼 친분을 유지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또 법정에서 곽 전 사장이 고가의 외제 골프채를 한 전 총리에게 선물로 줬다는 점도 제시하면서 두 사람의 친분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반면 변호인 측은 골프채 수수는 사실이 아니라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다.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과 알고 지낸 것은 맞지만 돈을 주고 받거나 인사 청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광희 변호사는 "두 사람이 친분은 있었지만 1년에 1~2번 정도 식사를 한 정도가 전부"라며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을 돕거나 돈을 준다고 받을 관계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는 게 돈을 주고받은 혐의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쟁점 3] 인사청탁 있었을까

5만 달러 수수 여부와는 별개로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 대한 공기업 사장 인사에 관여했는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인사 개입 여부가 '뇌물 수수' 여부를 판단할 중요한 정황 증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돈을 건넸다는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에 정세균 민주당 대표(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와 강동석 전 장관이 동석했고 이 자리에서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또 곽 전 사장은 정세균 대표의 지시를 받은 산자부 고위공무원의 전화를 받고 석탄공사 사장 공모에 참여했고 탈락했지만 이후 한 전 총리로부터 '곧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곽 전 사장이 나중에 남동발전 사장으로 가게 된 경위에 한 전 총리의 입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측은 곽 전 사장이 공기업 사장에 선임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맞서고 있다. 곽 전 사장의 남동발전 사장 선임은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의 독립적이고 공개된 시스템을 통해 결정됐는데 검찰이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모르고 억지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공모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강원도 홀대' 여론 등을 감안해 강원 출신을 기용하기로 해 떨어진 후 내가 직접 산자부에 전화해 '적당한 기회에 등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천거했다"며 "한 전 총리나 정세균 당시 장관으로부터 어떤 요청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강동석 전 장관도 한 전 총리가 인사청탁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상태다.

하지만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추천 경위에 대해서 이미 확인했다"며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한 치 양보 없는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한 전 총리와 검찰,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서 치명상은 과연 누가 입게 될까. 한 주에 세번씩 공판을 여는 강행군 계획을 밝힌 재판부는 다음달 9일 유무죄 판단을 내린다.


#한명숙#곽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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