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30여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
취재정리 : 손병관 기자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각 나라의 출산율을 비교해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국제전문가의 눈에 한국의 '세계최저 출산율 1.15명'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지난 2일 오전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취재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경제개발협력기구)본부를 방문했다.
이 곳에서 우리는 OECD에 속해 있는 30개 나라의 출산율과 출산대책을 모니터링하고 대응전략을 권고하는 것을 주업무로 담당해온 윌렘 아데마(46, Willem Adema) 수석 연구원을 만났다. 벌써 8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고 하니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만 하겠다.
- 최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한국 대통령이라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인터뷰 도중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갑작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자 윌렘 아데마(46, Willem Adema) 수석연구원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답을 이어갔다.
"(현재와 같은 한국 상황에서) 출산율을 올리는 게 가능할지나 모르겠다. OECD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정부 정책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집과 직장의 문화, 더 나아가 남자들이 퇴근 후 집에 안 가고 '한 잔' 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대통령이라도 이런 걸 바꾸기는 어렵지 않겠나?"
옥스퍼드대 박사출신인 아데마 연구원은 OECD에서 17년간 근무했다.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한 후 3년간 서울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의 '저출산 상황'에 대한 연구에 무척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가족 문화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분석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연구) 의욕을 더 생기게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엄마의 취업률은 72.8%... "한국은 자료도 없더라"아데마 연구원은 그 예로 '엄마들의 취업률' 통계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생긴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문화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통계청은 엄마들의 취업률에 대한 자료를 OECD에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추정치라도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현재 16세 이하 자녀를 둔 프랑스 여성의 취업률(72.8%)은 여성의 평균취업률(75.1%)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1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52.5%)이 여성의 평균취업률(64.3%)에 11.8%의 격차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이에 대한 통계가 없으니,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왜 그럴까 하고 더 한국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그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25~34세)의 교육수준과 업무에 대한 열의는 남성들에 못지않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 정부의 열악한 가족예산 지원 ▲ 가사 분담의 불균형 ▲ 왜곡된 직장문화라는 3중고에 직면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형편이 안된다"고 분석했다.
아데마 연구원은 "이중에서 가족예산(특히 육아예산)을 늘리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출산율 대책"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열어 우리 취재팀에게 OECD의 '일과 가정의 양립' 보고서(2007년)를 보여줬다.
"여기를 보자. 이 그림을 보면 프랑스는 맨 앞에 있는데, 한국은 맨 뒤에 있지 않나?"
그는 보고서에 담긴 한 표(윗 그림 참조)를 가리켰다. 즉 2005년 GDP 대비 가족예산 비율을 보여주는 표에서 한국(0.27%)은 꼴찌에 있었고 프랑스(3.79%)는 1위였다. OECD 평균은 2.33%.
아데마 연구원은 그 표를 보면서 또 하나의 포인트를 지적했다. 정부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출산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모두 3% 대의 가족예산을 투자하는데 프랑스는 고출산 효과를 봤고, 독일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프랑스의 경우 가족수당(1.39%)보다는 보육시설 유지·확충(1.62%)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한 데 비해, 독일은 가족수당(1.43%)에 비해 보육시설(0.74%)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2008년 프랑스와 독일, 한국은 가임여성 1인당 2.0명, 1.38명, 1.19명의 출산율을 각각 기록했다.
아데마 연구원은 "정부가 육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국민들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게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남성주도 문화 바꿔야 출산율 높아진다"1시간 가량 계속된 인터뷰에서 아데아 연구원은 특히 한국의 '남성주도 모델'이 저출산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족의 생계를 남성이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이 OECD 회원국들이 주로 몰려있는 유럽과 한국의 큰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남성주도모델은 한국 특유의 직장문화와 결합돼 저출산에 더욱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들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도 길지만, 퇴근 후 동료들과 '한 잔' 하는 문화가 있더라. 이런 구조에서는 남성들이 가사를 도울 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배우자가 아이 키우는 것을 돕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그러면서도 아데아 연구원은 한국의 평균적인 직장남성들의 하루와는 사뭇 다른 그의 하루를 소개했다.
"나 같은 경우 매일 오후 4:30~5:00에는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다. 애들이 잠든 후 다시 일을 하는데, 적어도 하루 2시간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편이다."
아데아 연구원은 한국의 남성주도모델이 가정내의 가사분담을 불공평하게 하는 것은 물론 회사에서의 직장여성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고 이것이 결국 저출산과 연결된다고 했다.
"한국은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직장여성이 임신하면 사표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풍조가 아직 남아 있다. 프랑스·북유럽·미국 등 여타 출산율 높은 나라들에서는 그런 풍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그는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이건 정말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데마 연구원은 이외에도 ▲ 한국의 높은 사교육비와 집값 ▲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권에서의 긴 출근시간 등을 저출산율의 원인으로 들었다.
그렇다면 아데아 연구원이 한국의 저출산 극복 대책으로 거론한 것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한국 여성들에게 '일과 보육을 함께 하는 것을 허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녀 모두 대학에 가서 학위를 따고 (사회에서) 뭔가 하려고 하는데, 일과 가사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잘 모르는 것같다. 출산율 높이려면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취재팀은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 만약 당신이 한국인이었다면 아이를 몇이나 낳았겠는가?
그는 망설임없이 답하면서 웃었다.
""아내에게 물어봐야겠다."
그의 책상 뒤편에는 남자아이 셋을 주렁주렁 안고 찍은 그의 가족 사진이 걸려있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