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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봄이 온 줄 알고 놀라서 뛰어 나온다는 경칩이 지났다. 그리고 꽃샘추위로 때 아닌 3월 폭설에 개구리뿐만 아니라 사람도 겨울 속으로 다시 잠겨드는 듯 했지만, 시샘 내던 동장군도 땅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었나 보다.

 

눈이 녹는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은 아닐지라도 하루 이틀 만에 푸석푸석 사그라져 버린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집 근처 야채노점상을 무심히 지나는데 긴 잎자루에 달린 초록의 잎나물이 반가운 손님처럼 눈길을 잡아챈다. 새색시 치마폭을 감싼 듯 얌전히 포개져 상자에 담겨있는 나물을 보는 순간 뒤통수로 쫓아오던 쌀쌀한 겨울바람이 시나브로 잦아든다.


'머위순'이다. 반사작용으로 입안에 고여 드는 침을 삼키며 그 앞에 멈춰 섰다. 머위순은 우리 집 밥상에 봄을 맞아들이는 전령사다. 이맘때 쯤 제일 먼저 상에 올라 겨우내 먹던 김치의 곰삭은 맛을 거둬 주는 것은 봄동도 아니고 냉이도 아닌 바로 '머윗잎무침'과 '머윗잎쌈'이다.

 

가지런히 상자에 담겨져 있는 어린 머위순은 잎자루도 야들야들해 보이고 잎도 쌈을 싸먹기에 적당해 보인다. 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젊은 애기엄마가 이름이 뭐며 어떻게 해서 먹는 거냐고 묻는다.

 

 햇것이라 대궁도 여리고 야들야들해 보이는 머위
햇것이라 대궁도 여리고 야들야들해 보이는 머위 ⓒ 박금옥

 

"머위에요. 입맛 떨어지는 때 먹으면 입맛을 돋궈주죠.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쳐먹어요."

 

물건 파는 아줌마의 설명이다. 머윗잎 나물 맛을 아는 내가 보충 설명에 들어간다.

 

"이걸로요 쌈을 싸먹어도 맛있어요. 지금쯤 것은 어린 것이기 때문에 덜 아리고 덜 써서 우리지 않고도 먹기 적당해요. 삶으면 대궁은 쓰지 않지만 잎이 쓰거든요. 하지만 그 쓴 맛 때문에 먹는 거예요. 씀바귀처럼요."

 

이렇게 맛있는 나물을 정보 없이 그냥 사갔다가 쓴 맛 난다고 버릴까봐 노파심에 '씀바귀 같은 쓴 맛'이라고 했다. 젊은 엄마가 씀바귀 맛을 아는지 산다. 사실 씀바귀에 비하면 머위순은 훨씬 순한 편이다.


머위 요리는 보통 굵어진 머윗대를(잎자루) 가지고 한다. 그래서 머위의 쌉쌀한 맛을 보려면 잎이 달려 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 맛이 가장 잘 어울리는 때가 봄이라고 생각된다. 

 

머윗잎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잎이 작은 것들은 골라서 고추장에 파, 마늘,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무쳐 나물을 만들고 나머지는 쌈장과 함께 상에 올렸다. 우리 집 아이들은 무침보다는 쌈에 더 열광한다.

 

 데쳐낸 머윗잎쌈과 고추장에 무친 머위나물
데쳐낸 머윗잎쌈과 고추장에 무친 머위나물 ⓒ 박금옥

 

딸 들은 "오호홍, 이게 뭐야? 내가 완전 좋아 하는 거" 하며 삶아서 오그라져 있는 잎을 살살 손바닥에 펴 들고는 밥 한 술과 쌈장을 얹어 요리조리 사방을 보자기 싸듯 싸서 입에 넣는다. "음,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하며 하는 소리가 "조금 더 쓴 맛이 나야지 좋은데" 한다.

 

덕분에 입맛 없어 하며 밥상 앞에서 깨작거리던 아이들의 숟가락질이 빨라진다. 나도 쌈을 싸서 입 안에 넣어 씹으니 싸한 차가움과 함께 목젖까지 파고드는 쌉쌀한 맛이 겨울 묵은지에 느슨해진 입맛을 바싹 조인다. 경칩에 개구리만 놀라 뛰는 것이 아니라 머위나물의 쓴 맛에 내 혓바닥도 '화다닥' 놀라며 겨울잠에서 깬다.


무친 나물은 남았지만 쌈은 금방 동이 났다. 우리 집에 봄맛을 선사한 머위순은 시간이 갈수록 잎이 쇠지고 커지면서 쓴 맛을 더 강하게 낸다. 아이들이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쓴 맛을 즐기기 위해 앞으로 두세 번 더 상에 올려 쌈을 싸 먹을 거다.

 

그때는 아예 무치지도 않고 쌈만 싸먹는다. 그렇게 먹다보면 입 안에 서늘하도록 쌉쌀한 맛이 가득 차면서 '후~' 불어내는 입김에서까지 쓴 맛이 느껴진다. 그때쯤이면 머윗잎쌈의 우리 집 입맛 도우미 역할도 끝이 난다.

 

머윗잎은 '봄을 타서 입맛 없을 때' 오지랖 넓은 아낙네 같은 넉넉한 잎으로 달아나는 입맛을 살살 싸매고 얼러 입안에 가두고 밥을 보약으로 만들어준다. 밥상에서 봄의 마중물로 대접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나물이다.  


#머위#머윗잎쌈#머위나물#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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