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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어머니인 최숙빈(숙빈 최씨, 한효주 분)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MBC 드라마 <동이>.
 영조의 어머니인 최숙빈(숙빈 최씨, 한효주 분)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MBC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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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 출신의 후궁으로 알려져 있는 여인. 영조라는 걸출한 임금을 낳았는데도 기존 사극에서는 언제나 인현왕후·장희빈에게 가려져 있었던 여인. 그래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인, 최숙빈(숙빈 최씨).

바로 그 최숙빈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동이>가 22일부터 MBC를 통해 첫 전파를 탄다. 최숙빈의 이름이 '최동이'였을 것이라는 허구적 전제 하에 그의 일생을 다루는 드라마다. <허준> <상도> <대장금> <이산> 등을 통해, 비록 픽션으로나마, 전통시대의 의술·상술·음식·미술 등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던 이병훈 PD의 신작이기도 하다.

<동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번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최숙빈의 인생역정과 영조의 성장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역사상 최초로 무수리 출신에서 내명부 최고의 품계 즉 정1품 빈(嬪)에 오른 최숙빈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것이며, 셋째는 '왕립 음악원'인 장악원을 무대로 아악·향악·당악 등 조선의 음악세계를 묘사하겠다는 것이다.

영조의 어머니에 대해 다루는 드라마 <동이>

예전 사극인 1988년 MBC <인현왕후>, 1995년 SBS <장희빈>, 2003년 KBS <장희빈>등에서도 최숙빈은 항상 등장했다. 하지만, 기존 사극에서 최숙빈의 비중은 미미했다. 그런 점을 볼 때 최숙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래서 숙종시대의 '여인천하'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동이>가 갖는 의의는 꽤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최숙빈이 무수리 출신이었다고 하는 부분 말이다. 우리 중 누가 확인해본 사람이 있는가? 그가 무수리 출신이었는지를 말이다.

최숙빈(1670~1718년)에 관해 짤막하게나마 언급한 학술서적이나 논문들에서 무수리 출신설(說)을 다루는 방법은 대개 다 비슷하다.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무수리였다는 설이 있다'고 처리하는 식이다.

예컨대, 영조시대를 다룬, 비교적 유명한 역사 서적에서는 최숙빈의 출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숙빈 최씨는 ……궁녀가 부리는 종(하인)인 무수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록에는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최숙빈의 출신에 관한 한, 위와 같이 '무수리라고들 하지만, 출처는 잘 모르겠다'고 처리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접근법인 것으로 보인다. 

최숙빈이 무수리였음을 증명하는 자료는 없다

한편, 국립 학술기관에서 발행된 어떤 논문은 앞뒤가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 논문 서두에서는 "지금까지 숙빈 최씨는 무수리의 신분으로 입궁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무수리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면서 위의 일반적인 접근법을 취했지만, 맺음말에 가서는 앞의 진술을 잊어버리고 "무수리에서 후궁에 오른 왕실 여성은 숙빈 최씨가 유일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숙빈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막연한 선입견이 학문적 오류로까지 연결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최숙빈의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직까지 최숙빈이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자료를 찾아내지 못했다.

처음에 입궁할 당시의 최숙빈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숙빈최씨신도비'에 나오는 내용뿐이다. 이 신도비는 영조 1년(1725)에 세워졌다. 신도비(神道碑)란 말 그대로 '신령을 인도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현재 이 신도비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소령원(최숙빈의 무덤)에 보존되어 있다.

혹시라도 "이번 주말에 소령원에나 놀러가자"며 가족들을 설레게 하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은 며칠 내로 집안 내에서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임의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사전에 관람을 신청하더라도, 주무 부서에서 매월 1회 열리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조선왕실의 능은 홍릉·유릉을 제외하고는 대개 다 비슷하므로,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이나 구리시의 동구릉 같은 데를 방문해보면 소령원의 모습도 대략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침방나인으로 입궁한 것으로 보이는 숙빈 최씨

최숙빈의 신도비가 보관된 신도비각.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소재 소령원 안에 있다.
 최숙빈의 신도비가 보관된 신도비각.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소재 소령원 안에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 <숙빈최씨자료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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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소령원에 있는 '숙빈최씨신도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병진년(숙종 2년, 1676)에 뽑혀 궁궐에 들어가셨으니, 겨우 일곱 살이셨다."

이에 따르면, 입궁 당시의 최씨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그가 7세의 나이로 궁궐에 들어갔다는 사실 뿐이다. 무수리로 입궁했다고 알려주는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입궁했으면, 궁녀의 보조역인 무수리에서부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질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입 궁녀의 평균연령이 7~8세였으므로 나이가 어리다 하여 무수리로 입궁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을 긷거나 불을 땔 수 있는 '힘 좋은 아줌마'들이 주로 무수리로 충원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최숙빈과 관련하여 전라북도 정읍시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전해지는 설화나 전설에도 그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1930년도 <정읍군지>에 실린 정읍 지방의 설화에서는 그가 처음부터 인현왕후의 시녀로 입궁했다고 했다. 담양군에 있는 용흥사라는 절을 무대로 전해지는 전설에서도 그가 인현왕후의 시녀로 입궁했다고 했다. 이런 전설과 설화의 구체적 내용은 이후의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될 것이다.

물론 위의 설화나 전설에서처럼 최숙빈이 처음부터 인현왕후의 시녀로 입궁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이나 고종시대 궁녀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에, 최숙빈은 인현왕후의 시녀가 되기 전에 침방(바느질 부서)을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의 구체적 내용 역시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문헌이나 유물은 물론이고 민간전승에서도 최숙빈이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써는 최숙빈이 일반 궁녀로 입궁했다고 판단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역사해석이 되리라 생각한다.

<동이>, 숙빈의 삶을 어떻게 조명할까

"그래도 무수리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치면 "최숙빈은 어느 고관대작의 숨겨놓은 딸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식으로 대충 아무렇게나 추측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 아닌가.

물론 드라마 같은 문학작품에서 무수리설을 근거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는 있다. 천한 신분이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무수리나 궁녀나 오십보백보였다. 하지만, 최숙빈의 실제 역사를 구성할 때에는, 그가 일반 궁녀였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가장 실증적이고 안전한 접근법이 되리라 본다.

그러나 최숙빈이 애초에 무수리로 시작하지 않았다 하여,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둔 여인이라는 그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수리로 시작해서 후궁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그에게 그런 가치를 부여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존재한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 개인 간의 경쟁을 100m 달리기에 비유하면, 최숙빈의 상전인 인현왕후 민씨는 결승선으로부터 10m 앞에서, 당시의 일반 서민들은 100m 앞에서, 최숙빈은 일반 서민들보다도 100m 뒤에서 출발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최숙빈은 갖가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드라마 말고 실제 역사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처럼 파란만장했던 최숙빈의 삶을 얼마나 멋있게 묘사할 것인가에 주목하면서 드라마 <동이>를 시청한다면, TV를 보는 즐거움이 한층 더 배가될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2회 정도 발표될 <오마이뉴스>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시리즈를 통해 드라마 <동이>의 픽션과 실제를 구분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조선시대의 실록·비문·왕실기록·문집·정치비평서 등은 물론이고 설화나 전설까지 동원해서 최숙빈의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태그:#동이, #최숙빈, #숙빈 최씨, #숙종,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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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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