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는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에서 따온 것입니다. 노자 45장에서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다(大直若屈 大巧若拙)' 하였습니다.

가장 곧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최고 수준을 나타냅니다. 대직(大直)과 대교(大巧)는 그 상대개념으로 전화(轉化)해 갑니다. 최고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못되고 상대적인 것이어서 곧은 것과 굽은 것, 뛰어난 기교와 서툰 것은 자연이 생성하고 소멸하듯 상호 전화(轉化) 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절대적인 대직과 대교는 없는 것입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작위(作爲)적인 것이어서 자연을 거스르고 자연의 질서를 해치는 것입니다.

위의 사상을 눈으로 보면서 음미할 만한 두 걸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서산 개심사(開心寺) 심검당 부엌이고 다른 하나는 추사(秋史)의 봉은사 판전(板殿) 글씨입니다.

'굴미의 극치' 심검당 부엌

개심사 못나고 굽은 나무로 천연덕스럽게 지어 놓은 절집이 개심사입니다
개심사못나고 굽은 나무로 천연덕스럽게 지어 놓은 절집이 개심사입니다 ⓒ 김정봉

못나고 굽은 나무를 아무 거리낌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다 천연덕스럽게 지어 놓은 절집이 개심사입니다. 범종각 네 기둥은 모두 굽은 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무량수전바깥기둥과 해탈문은 굽은 것과 곧은 것이 함께 합니다. 이 정도는 여느 절 집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길이 심검당 부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심사의 진짜가 보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부엌 굽은 멋을 굴미(屈美)라 표현한다면 심검당 부엌은 굴미의 극치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부엌굽은 멋을 굴미(屈美)라 표현한다면 심검당 부엌은 굴미의 극치입니다. ⓒ 김정봉

앞서 얘기했듯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개심사에서는 굽은 것이 곧은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요즈음 정자를 지을 때 '일부러' 그러는지 네 기둥 모두 굽은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곧은 것보다 굽은 것이 더 상품가치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일부러'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일부러 굽은 나무를 사용했다면 그것 또한 작위적이고 자연적이지 못해 눈에 거스르게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판매용으로 만들어 놓은 '굽은 기둥' 정자를 보면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심검당 부엌은 굴미(屈美)라 표현하는 것이 무리가 될지 모르지만 굴미의 극치입니다. 인위적인 것과 작위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굽은 것도 가장 곧은 것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개심사 범종각 네 기둥 모두 굽은 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만 아직 굽은 멋을 느끼기에는 이릅니다.
개심사 범종각네 기둥 모두 굽은 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만 아직 굽은 멋을 느끼기에는 이릅니다. ⓒ 김정봉

개심사 무량수전 바깥기둥 '곧다', '굽다'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기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죠. 사람 같으면 곧은 사람은 대쪽 같아서 타협의 여지가 없는 반면 굽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은 소통이 원활히 되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겠지요.
개심사 무량수전 바깥기둥'곧다', '굽다'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기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죠. 사람 같으면 곧은 사람은 대쪽 같아서 타협의 여지가 없는 반면 굽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은 소통이 원활히 되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겠지요. ⓒ 김정봉

옷으로 따지면 정장차림은 아닐 것이고 헙수룩하고 자유로운 헐렁한 옷차림에 해당됩니다. 사람 같으면 대쪽 같아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고 여유가 있어 대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은 유연한 사람, 소통이 원활히 되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겠지요.

심검당 부엌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그린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집입니다. 힘 빠진 손으로 그저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말입니다. 한쪽 기둥은 굵게 다른 쪽은 가늘게, 아랫부분은 넓고 윗부분은 좁아 비례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천연스럽게 그린 그림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노자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進)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歸)을 의미합니다. 심검당은 지은이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서(歸) 지은 집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말한 '단련된 천진성'과 통하는 말입니다. 유 교수는 '추사의 판전 글씨는 순진 무구한 어린아이의 글씨같은 분위기가 난다'고 하면서 이를 '단련된 천진성'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졸미의 극치', 봉은사 '판전' 글씨

봉은사 판전 글씨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봉은사 판전 글씨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 김정봉

심검당 부엌이 굴미의 극치라 하면 졸미의 극치는 봉은사 '판전'(板殿)글씨입니다. 완당이 세상을 등지기 3일 전에 쓴 것입니다. 완당은 말년에 과천의 과지초당에 머물면서 봉은사를 오가며 여생을 보냅니다. 완당이 세상을 등지기 몇 달 전, 1856년 여름부터는 아예 봉은사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면서 판각불사에 관여하게 됩니다. 1856년 9월에 판전이 완공되고 얼마 후 완당은 생애 마지막 작품인 판전의 편액글씨를 남깁니다.

판전의 편액글씨 옆에는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라 써 있습니다. '71세 된 과천 사람이 병중에 쓰다'라는 의미인데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합니다. 하긴 불가와 관련된 글씨를 쓰거나 승려들에게 글을 보낼 때 병거사(病居士)라고 흔히 쓰기도 합니다. 완당의 다른 작품에서 그랬듯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겸손한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썼을 수도 있습니다.

 봉은사 판전글씨 중 '전'자(殿字) 심검당부엌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그린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집인데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한' 판전 글씨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봉은사 판전글씨 중 '전'자(殿字)심검당부엌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그린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집인데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한' 판전 글씨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 김정봉

<완당평전>에서는 판전 글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판전의 글씨를 보면 추사체의 졸(拙)함이 극치에 달해 있다.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한데 졸한 것의 힘과 멋이 천연스럽게 살아 있다. … 아무튼 나로서는 감히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조차 없는 신령스러운 작품이라 할 수 밖에 없다."(완당평전 2권, 학고재)

판전 글씨는 기교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기교를 감추고 서툰 것을 존중하는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가장 뛰어난 기교는 서툴게 보인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과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라는 문구에 가장 어울리는 본보기입니다.

이 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광사가 쓴 해남 대둔사 대웅전 현판 글씨에 독설을 퍼붓던 완당의 기고 만장한 기개는 쏙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추사는 제주도 귀양 길에 해남 대둔사에 들러 초의 스님에게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 놓은 게 이광사인데 어찌 저런 촌스러운 글씨를 달고 있는가?"라고 하면서 자신이 쓴 글씨로 바꿔 달게 하였습니다. 

9년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온 완당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시 대둔사에 들러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 보았어. 예전의 현판이 있거든 다시 달아주게" 하였다 합니다. 기고만장한 기개는 사라지고 완숙한 인물로 다시 태어납니다. 판전 글씨에는 이런 완숙함 아니 그 보다는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봉은사 판전 추사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판전 글씨 하나만으로도 봉은사는 '부자' 절로 불릴 만합니다.
봉은사 판전추사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판전 글씨 하나만으로도 봉은사는 '부자' 절로 불릴 만합니다. ⓒ 김정봉

봉은사   누가 말한 대로 '강남 부자 절'인 봉은사 정경입니다.
봉은사 누가 말한 대로 '강남 부자 절'인 봉은사 정경입니다. ⓒ 김정봉

이야기를 더 진전해 봅니다. 두 걸작을 따로 따로 보지 말고 함께 보면 굽은 맛과 서툰 멋은 서로 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조선 후기 서화가인 유최진은 <초산잡저>에서 추사의 영어산방(潁漁山房) 편액을 보고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추사 글씨를 보고 쓴 글인데 마치 심검당 집을 그림으로 그리듯 쓰고 있습니다.

"영어산방이라는 편액을 보니 거의 말(斗)만한 크기의 글씨인데 혹은 몸체가 가늘고 곁다리가 굵으며 혹은 윗부분은 넓은데 아래쪽은 좁으며 털처럼 가는 획이 있는가 하면 서까래처럼 굵은 획도 있다. 마음을 격동시키고 눈을 놀라게 하여 이치를 따져 본다는 게 불가하다. 마치 머리를 산발하고 의복을 함부로 걸쳐서 예법으로 구속할 수없는 것과 같았다. 감히 비유해서 말하자면 불가(佛家), 도가(道家)에서 세속을 바로잡고자 훌쩍 세속을 벗어남과 같다고나 할까?"

심검당 부엌과 판전 글씨는 참 많이 닮았습니다. 굽은 것과 서툰 것은 서로 통하나 봅니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면 굽은 것이 가장 곧은 것이 되고 서툰 글씨가 명필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못난 것, 가장 약한 것이 반전을 노리고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새심사심검당#봉은사 판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