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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
차디찬 꽃샘 바람에
우수수 꽃들이
떨어지듯이,
 
단추꽃 문양 
내 스무살 원피스 입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만원 지하철 탔다가
꽃단추가 떨어졌습니다. 
 
주부라서 IMF로
다니던 회사에서

1차 해고 정리되어

직장 주부 동료들과

우수수 함께

세찬 바람에

지는 꽃처럼 떨어졌듯이….

 

어머니,

세상의 모진 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요, 

 

내 딴은 밀리지 않으려고

입술 깨물수록

세상 밖으로

세상 밖으로...

 

한 잎 두 잎

세월에 녹슨 꿈들이

더는 여밀 수 없는

헐거운 꽃단추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어느 시인은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지만,

첫단추 채우기 전에

요즘 중국산 헐 값의

만냥 옷들은 

첫단추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평생 나를

다독이며 여미어 주셨으나,

이제 단 한시도 단추 채워 

내가 나를 여미지 않으면,

 

세상의 언짢은

한마디에도

치부를 겁 없이

드러내고 삽니다.

 

(어머니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몰라요…)

 

우수수 창 밖의

가로수들은 

살점을 찢고 나와

화약냄새 풍기며

꽃폭탄 터트립니다.

 

어머니 저 우수수 

실업처럼 꽃들이

떨어진 자리,

 

내년이면

다시 촘촘하게

매달릴 꽃들은 

 

작년에 떨어진 꽃보다, 

더 목줄기 튼튼한

꽃들이 필 것입니다.

 


#천일홍#계약직#주부#해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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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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