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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부분 캡쳐
4월 14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부분 캡쳐 ⓒ 조선일보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첫모임을 가진 핵안보 정상회의가 2년 후인 2012년 서울에서 다시 열린다고 합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하나같이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유치'했다고 다들 난리입니다.

13일 오후 방송들이 이 소식을 '속보'로 내보내고 그 다음날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대적으로 떠들어대는 걸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중요한 대회를 다른 나라들의 경쟁을 뿌리치고 가져온 것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유치'란 말을 이때 써도 되는 것일까요? '유치'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꾀어서 데려오다" 혹은 "행사나 사업 따위를 이끌어 들인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지만 여기에는 무언가를 어떻게든 꾀어서 데려오거나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 이의 강한 의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로 동·하계올림픽이나 월드컵, 만국박람회같은 비중 있는 국제대회를 서로 제 나라에 가져 오기를 원할 때 "유치경쟁을 벌인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핵안보 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내건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도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급조해서 만들다 보니, 2차 회의가 계속해서 열릴 수 있을지 그조차 불투명했을 정도지요.

지난 1일 오바마가 천안함 사고 및 핵태세 검토보고서(NPR) 채택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제2차 핵안보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 의사를 넌지시 타진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습니다.

"2차 회의 한국 개최는 지난 1일 오바마 대통령이 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2년에 한 번씩 핵안보 정상회의를 열고자 하는데 한국이 차기 회의를 여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이 대통령이 긍정 검토 입장을 밝히면서 성사됐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중앙일보, <2012 핵안보 정상회의 한국서>, 2010.04.14, A1)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걸 이어받아 해줄 만한 '믿을 만한 친구'로 이 대통령을 택한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조선일보, <2차 핵안보 정상회의 한국 개최 의미는>, 2010.04.14, A3)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러시아에도 개최 의사를 타진했으나 여의치 않자…이 대통령을 떠올린 것으로 전해졌다…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불구하고...즉각 '긍정 검토'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동아일보, <오바마, MB에 1일 전화 제의… 정상들 만장일치 확정>, 2010.04.14, A5)


죠셉 바이든 미 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이 대통령을 맞아 "오바마 대통령이 좋아하는 분(favorite man)이 오셨다"고 립서비스를 날리고 "오바마 대통령을 행복하게 해 줘 고맙다"고 인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핵안보 정상회의의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미국인이 56%에 달했을 만큼, 미국 내에서조차 핵안보 회의에 대한 시선이 싸늘했거든요. 이런 터에 이 대통령이 거들고 나섰으니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럴진대 엄밀히 말하면, 이는 '유치'가 아니라 미국이 등떠민 것을 덥썩 받아 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곤란해 하는 기피대상을 대신 떠맡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걸 가지고 대통령은 제 치적인 냥 기자회견을 벌이고, 언론은 또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의 한국 유치는 한국 외교가 올린 또 하나의 개가"(14일자 중앙 사설)라고 동네방네 떠들어댔으니, 이 부끄러움을 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핵안보 정상회의 #이명박의 성과주의#이명박과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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