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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맑음, 가지산으로

 

어제는 비, 오늘은 맑음. 비온 뒤 청신한 하늘빛이 눈부시다. 올 봄은 유난히 더디 온다고 추운 봄이라지만, 어느새 봄은 당도해 지천에 봄빛이다. 다만 조금 더딜 뿐이다. 온 힘을 다해 산허리를 감싸고 위로 더 위로 타고 올라가는 봄이 보인다. 작고 낮은 산들은 이미 산꼭대기까지 유록빛 물결 완연한데, 높은 산, 영남알프스는 멀리서 보아도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옅은 갈색이다.

 

하지만 어느새 산허리를 타고 봄은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있다. 어제 온종일 비가 내려서 오늘 날씨가 과연 맑을까 의구심을 가졌지만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이번엔 다른 코스로 만나려 한다. 만남의 길도 갈래갈래 많기도 하여, 표정도 다양하다.

 

가지산의 봄은 더디올 뿐, 봄이 싹트고

 

밀양 삼량이로 접어들어 다시 삼양교 쪽(석남터널을 지나는 구도로쪽)으로 간다. 구불구불 S자로 휘돌아 오르는 길, 제법 높이까지 올라간다. 제일농원 주차장에 도착, 어느새 오전 10시 50분. 오늘은 좀 늦게 나왔다.

 

등산로를 향해 걸어올라 가기도 전에 먼저 콸콸한 계곡 물소리 온 숲은 흔든다. 비온 뒤 계곡물은 한껏 불어난 모양이다. 계곡을 돌다리를 건너 호박소계곡 길을 두고 왼쪽으로 난 구룡소폭포 길로 간다. 높은 산이라 봄도 더디 오지만 그래도 연둣빛 잎사귀 여기저기 수줍게 내밀고 있고 선연한 분홍빛 진달래도 간헐적으로 피었다.

 

꽤 힘든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오르막길이다. 산길 걷는 동안 이 계곡에서 맞닥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룡소폭포(11:!5)에 도착한다. 넓고 높은 암반을 타고 길고 부드럽게 넘으며 흘러가는 물. 구룡소폭포 앞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나무계단, 돌계단, 바윗길, 흙길 뒤섞인 길을 오른다. 암자가 계곡 옆에 있다. 오래된 움막은 괴괴하다. 왜 하필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과 계곡 길로 쭉 가는 길이다. 계곡을 끼고 물소리 들으며 오르던 길에서 점점 물소리 멀어지고 백운산 가는 길로 접어든다.

 

여기서 백운산 쪽으로 가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서 아랫재로 올라 능선 길을 타고 가지산으로 갈 생각이다. 우리가 가야할 가지산은 등 뒤에 있고 더 멀어지고 있다. 에둘러가는 길이다. 한참 걷다보니 사거리다. 백운산, 가지산, 운문산, 남명초교 네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다. 이곳까지 당도하는데 1시간이 소요되었다. 사거리 안부에서 잠시 휴식하고 다시 방향을 틀어서 백운산을 뒤로한다.

 

가지산 방향으로 길을 간다.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석남터널에서 올랐던 길과 비슷한 경사 높은 오르막길이다. 눈앞에 전망 없고 오직 내가 올라야 할 벽처럼 높고 가파른 산이 버티고 있다. 누가 이 길을 수월타 했나. 높은 산, 특히 영남알프스를 오르는 길은 어떤 길로도 정상까지 도착하는 길엔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고 난해하다.

 

산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네가 노력한 만큼, 거기까지 당도하는 것이라고, 높은 산이 목적인가. 그렇다면 요행을 바라지마라. 한 걸음씩 첫 걸음부터 떼놓으라고. 그리고 한 발씩 한 발씩, 걸으라고. 땀과 수고와 벅찬 숨,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어도 잠시 쉬며 다시 일어나 묵묵히 길을 가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그러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벽처럼 높은 오르막길만 끝없이 보이고 산 정상은 멀고 보이지 않는다 해도 걷고 또 걸어 한발씩 내딛는다면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벽, 그 길은 종래엔 능선 길 내어주며 산정 높은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산정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자만이 안다. 거기서는 경이로움과 장엄함. 설명 안 되는 충일감을.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오르막길에서 이제 능선 길에 올라선다. 낮 12시 40분이다. 여기서 제일농원까지는 2.6km, 백운산은 1.78km, 가지산 정상은 2.6km, 운문산까지는 2.2km 거리다. 이제 반 정도 왔다. 본격적으로 능선길이 시작된다.

 

능선길 걷는 호젓한 기분, 산마루를 가뿐가뿐 걷는다. 힘들게 꺼이꺼이 올라온 등산로에서 힘겹게 올랐던 수고도 잊는다. 주변 산들을 두루 조망하며 막힘없이 푸르게 열린 맑은 하늘과 가지산 하늘 길을 걷는다. 하늘 길에서 만난 봄, 봄 햇살. 가끔 새소리 들려오고 호젓한 산길에 마음 여유로워진다. 가슴이 탁 트이고 시야가 넓어져 가슴 후련하다.

 

조망바위(12:50)에 도착, 지난번에 앉아 쉬었던 높은 벼랑 가에 편편한 바위다. 우리가 앉아 쉬었던 그곳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잠시 앉아 간식 먹으며 휴식하며 산마루에 앉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하산 길로 이용했던 능선길을 오늘은 등산길로 만났다. 하산 길에서 만난 능선 길과 등산길로 만난 능선 길은 또 다른 느낌이다.

 

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그 위용 앞에 침묵으로 답하고

 

호젓한 산마루를 다시 걷는다. 오솔길은 어제 비온 뒤라 꿉꿉하다. 평지 걷는 듯 한 길을 가다가 약간 오르막, 다시 평지, 오르막 이렇게 바윗길, 흙길 어우러져 있다. 이제 저기 가지산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정상 주변 헬기장이 드러나고 우린 곧 헬기장에 도착한다.

 

오후 2시 5분이다. 정상이 바로 눈앞이다. 가지산 정상에 올라 두루 살펴보고 바로 밑에 있는 바위에 앉아 본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연의 경이로움에 할 말을 잃고 하염없이 앉아 있다. 크고 작은 산들이 어우러져 가까이서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1240m)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및 경북 청도군 운문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딸린 산이다. 주위의 우문산(1188m), 천황산(1189m), 신불산(1159m) 등 영남알프스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언제 만나도 새롭다.

 

하산, 오후 2시 55분이다. 이번엔 중봉 능선 길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언제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첫 길, 낯선 길은 약간의 불안과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번 호박소계곡을 따라 등산하고 하산했을 때 중봉 능선 길을 타고 하산한 분들이 있어 중봉길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아주 좋다고 해서 이번엔 기대를 했었다.

 

가지산 정상에서 급경사 바윗길을 더듬어 내려 걸어가서 안부 삼거리를 지나 중봉에 올랐다. 중봉에서 가지산 뒤돌아보고 중봉능선 길을 따라 걷는다. 그때 그분은 뭘 보고 이 길이 좋다 했을까. 가지산 정상에서나 맞은 편 능선 길에서 볼 땐 중봉 능선길이 뚜렷하고 조망도 탁월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중봉 능선 길 걸어보니 조망 없고, 사람 발길 많이 닫지 않은 듯 좁은 길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나뭇가지를 헤치며 간다.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의 차이도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경우를 봐도 그렇다. 인적 없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하산하다가 우연히 중년부부를 만났다. 여유롭게 걷던 그들은 이 길이 아주 호젓하고 좋다고 한다. 역시 좋고 나쁨은 주관적이다. 앞으로는 남의 말만 듣고 가는 것은 없어야겠다. 철저한 자료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 난 뒤에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참 동안 내리막길 계속되던 능선길이 끝나고 급경사 바윗길 앞에 선다. 아으! 수직으로 내리뻗은 바위 비탈 길, 이건 길도 뭐도 아니다. 길 아닌 길을 누군가 길 삼아 오르기 시작하면서 어설픈 길이 되었나 보다. 밧줄 하나 없는 바위 낭떠러지 길, 나무뿌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렸던지 미끄러질 듯, 내리꽂힐 듯한 벼랑길을 더듬다가 나무뿌리라도 잡을라치면 뿌리까지 흔들흔들 한다. 발아래 놓인 바위도 미끄러질 듯 흔들거린다. 위험천만한 길이다.

 

마음속으로 엑스(X)자를 긋는다. 이 길은 한 번으로 족하다. 무조건 남들이 좋다고 해서 쉽게 생각하거나 그대로 받아들여서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험한 바윗길이다. 벼랑 가에 선연한 분홍빛 진달래가 곱게도 피었다. 내려오는 벼랑길을 고꾸라질 듯 아슬아슬 더듬어 내려가다 보니 완경사길이 나오고 완만한 길 앞에 계곡 물소리 들려온다.

 

이제 험한 바위에서 벗어났다. 겨우 마음을 놓는다. 제일 농원이 저만치 보이고 계곡 물소리가 천지를 뒤덮고 있다. 주차장에 도착, 어느새 5시 20분이다.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에 더디 오는 봄, 그러나 부지런히, 힘껏 산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봄을 만났다.

 

산행수첩

 

1.일시:2010년 4월 24일(토).맑음

2.산행: 남편과 나

3.정상에서의 조망:탁월함

4.산행기점:밀양 삼양교

5.산행시간:6시간 30분

6.진행: 밀양삼양교옆 제일농원 주차장(10:50)-구룡소폭포(11:15)-사거리(남명초교, 백운산, 아랫재,11:50)-능선사거리(아잿재능선,12:40)-헬기장(2:05)-가지산 정상(2:10)-점심식사후 하산(2:55)-안부(3:15)-가지산 중봉(3:25)-제일농원주차장(5:20)

7.특징:①삼양-구룡소폭포-사거리-아랫재능선 삼거리:등산로 좋음

      ②아랫재 능서 삼거리-가지산 정상:완경사 오르막길

③가지산 중봉-제일농원 주차장:나무 속에서 산행. 조망 없음. 특히 능선 길 끝에서 제이롱원 주차장까지는 산행로가 급경사이고 위험.


태그:#가지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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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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